쫄보야 쫄지마

공항에서 길을 잃다

by 쌀집아들


현지 시각으로 새벽 4시쯤 방콕에 도착한 우리는 철저한 사전 조사와 빈틈없는 계획을 세운 지략가를 일행으로 둔 덕분에(재영이) 공항 근처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을뿐더러 우리 같이 애매한 시각에 도착하는 여행객을 위해 잠도 자고 갈 수 있게 해준다는 마사지 샵을 미리 검색해 두었다.(재영이가)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공항 도착 후 호사롭게 마사지를 받고 아침까지 잠을 잔 뒤 카오산 로드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웬걸 우리는 시작부터 길을 헤맸다. (공항 안에서도 길을 헤맬 수가 있나?) 우리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것은 블로그의 방문기였는데 블로그에서 안내해주는 ‘구름 다리를 따라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길’을 당췌 찾을 수가 없었다. 공항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구름 다리는 보이는데 그 구름다리로 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공항직원에게 손짓으로 질문하고 손짓이 대부분인 안내를 받았지만 손짓이 대부분이었으니 정확히 어떻게 가라는 지 알 수 없었다. 반사적인 고개 끄덕임만 하고 돌아섰다. 유심칩을 구매한 재영이(역시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는 지략가)가 핸드폰을 여덟 팔자로 그려 가며 길을 찾으려 애썼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20180301_051103.mp4_000007094.png

“재영이처럼 성의 있게 이렇게 위치 찾기 하는 애는 처음 봤다.”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정확히 여덟 팔자내지 뫼비우스의 띄 모양으로 핸드폰을 돌리는 재영이를 보며 형이 얘기했다.

“저기 맞는 것 같은데 저거.” 핸드폰에 머리를 쳐박고 있던 재영이가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눈으로 응시하며 급기야 두 번째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쪽으로 호텔을 통해 들어가서 밖으로 빠져 나가야 하니까...”

“이쪽 맞나?”

잠시 의심에 찬 의견 교환을 했다.

“이쪽 맞나보다. 가자.” 확신에 찬 재영이의 말이다.

“그래 가보자 일단. 좀 헤매면 어때?” 따라나서며 내가 말했다.

“그래 이게 다 여행이고 모험이지.” 여행과 모험을 즐기는 형의 얘기다.

우린 기운차게 걷기 시작했다. ‘남자 셋이서 좀 헤매면 어떠랴.’ 싶었지만... 여행이고 모험치고는 쓸떼없이 바보스러웠고 남자 셋이서 공항 안을 빙글빙글 헤매는 건 좀 어땠다. 공항 안에서만 무려 30분 가량을 헤매고 있었다. 지친 몸에 배낭까지 매고 같은 자리를 배회하며 조금은 지쳐갈 무렵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철문이 보였다.

“어? 저거 아니야?”

“야야! 저거네”

“맞네! 왠지 저건 거 같은 느낌이 온다. 확 온다!”


숨은 그림처럼 벽과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 눈에 띄지 않던 그 철문이 하나 보였다.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 철문을 열자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자 블로그에서 봤던 사진과 닯은 곳을 찾았고 마침내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와우! 겨우 찾았네.”

“와~겁나...”

“머야? 누가 문을 숨겨놨어?”

“벽이랑 같은 색으로 칠한 놈 누구야? 일 편하게 하네.”

“그러고 보니 그 직원이 잘 가르쳐 준거네. 우리가 못 알아 들어서 그렇지.”

“친절한 사람이었어.”

“그래, 진정성 있는 직원이었다.”

“아 진짜 기쁘다! ㅋㅋㅋ”

힘들 것도 없는 걸 아주아주 힘들게 입구를 찾아 그 문제의 구름다리를 걸으며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밖을 보았다.

“이야~~~~여기가 방콕이네. 여기가 로컬이네.”

“야~ 저기가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인거 아니야?” 공항 구름다리를 지나며 보이는 어둠 속에 있는 동네를 보며 재영이가 말했다.

“쓰읍....거긴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 아무리 봐도 사람 사는 동네는 아닌 것 같애.”

“아 사람 사는 데는 아니구나.”

“ㅋㅋㅋㅋㅋㅋ” 다 같이 웃어 제꼈다.


구름다리를 건너 어느 호텔의 입구를 지나 밖으로 나온 우린 상쾌한 새벽 공기 속으로 들어가 길을 걸었다. 낯선 공기가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사실 썩 맑거나 유쾌한 공기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퀴퀴한 냄새마저 그곳의 정취가 느껴진다 생각했다. 그저 아무래도 좋았다. 이 여정이 꿈만 같았다.


“저쪽인가 보다. 시내 같은 느낌이 나. 편의점도 있는 것 같고.” 우리가 걷는 앞으로 불빛이 많아져 보였고 그 불빛들을 향해 더 걸어갔다.

“근데 어디까지 가야돼? 얼마나 가야 돼?” 불빛 속에 들어온 후에도 한참을 더 걷다 매사에 제일 먼저 불만이 생기는 내가 말했다.

“이 다리 일단 건너가야 될 것 같은데.”

“진짜 걸어갈 수 있는 거여? 꽤 멀어 보이는데 그냥 차라리 어차피 숙소가 카오산 로드 근처니까 그쪽으로 가서 마사지 받고 자자. 거기도 머 한군데 없겠어?”

“그럴까? 어차피 많이 걸어가야 될 것 같으니까... 카오산 로드에 설마 마사지 샵 하나 없겠어?”

“그게 나을까나?”

“그래 머 그러자.”

“그래 설마 24시간 하는 데가 여기 한 군데 뿐이겠어?”


하지만 이때의 설마는 정말로 설마였다. 그 블로거가 괜히 거기를 추천해 준 게 아니었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충고를 따랐어야했다. 하지만 그 땐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다리를 건너던 중 ‘방향을 바꿔’ 택시를 잡아탔고 그 길로 오전 내내 고생과 방황을 하게 된다.

이전 06화쫄보야 쫄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