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야 쫄지마

카오산을 헤매다

by 쌀집아들

택시를 타고 카오산 로드로 향하기는 쉬웠다. 당연한걸. 마치 우리나라에서 강남이나 홍대 가자는 말과 같으니...다만 외국인 우대 택시비 바가지만 조금 뒤집어쓰면 된다.

차에서 잠도 안자고 내내 수다를 떨며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도로를 30분 남짓한 시간을 달려 택시 아저씨가 카오산 로드라고 알려주는 곳에 택시비를 쿨하게 지불한 후 의심 없이 내렸다. 사실 카오산 로드에는 마사지 샵이 즐비하다. 마사지 샵과 라이브 바가 널린 곳이 카오산 로드이다. 다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영업 시작 전이었다.


*6AM


택시에서 내려 굶주린 우리는 우선 뭘 좀 먹고 싶었지만 당연하게도 새벽 6시에 문을 연 식당은 없었다. 우린 카오산 로드는 24시간 언제나 사람이 붐비고 활력이 넘치는 곳일 거라고 마냥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런 무지에 가까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무지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그나마 다행히스럽게도 가까이에 24시간 문을 여는 버거킹이 보여 생각할 것도 없이 들어갔다. 하지만 머랄까. 아이러니 하달까 상황이 좀 의아하달까.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며 먹거리 여행지로 소문난 방콕에 와서 먹는 첫 음식이 미국 프랜차이즈 햄버거라니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다른 덴 문을 안 열었으니 어쩔 수 없지...


“태국에선 역시 버거킹이지.”

“이야~ 태국 햄버거다.”

“오~ 태국 아메리카노다.”

이역만리 태국에서 만난 익숙한 메뉴판을 보고 익숙한 메뉴를 시켰다.

“야! 남자가 너어무 약하다.” 햄버거를 시킨 나와 상민이형과 달리 애플파이와 커피를 시킨 재영이에게 내가 말했다.

“한 입 먹을래?”

“그지? 많이 안 땡기지?”

“아니 맛있는데 니가 너무 부실해 보여서 한 입 주는 거야.”

“피곤해서 그런가 많이 땡기진 않아.”

“오키!”

“먹고 근처 마사지 샵 가서 좀 쉬자. 한숨자고 호텔 가서 짐 풀고 악기 빌리러 가자.”

“체크인 좀 빨리 안 되나?”

“그러면 추가 비용 있겠지.”

“그래도 짐은 맡아 줄 테니까 짐 맡기고 바로 움직이자.”

“그래 오늘 할 일 많다. 악기 빌리고 장소도 미리 좀 알아봐야 되고.”

“마사지도 받아야 되고 하루가 짧다.” 그랬다. 오늘이 정말 중요했다. 사실 하루하루가 소중했지만 오늘 준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일정이 크게 달라지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힘내자. 제군들”

“하하핫 그건 머냐. 어디서 하대하는 말투 배워왔어? 크하핫”

“습관이야.ㅋㅋㅋ”

배를 채우고 각자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역시 햄버거야. 힘이 나네 그냥.”


근처에서 마사지 샵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문을 연 곳은 없었다. 세상은 역시 우리 생각처럼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망했다! 문 연 곳이 없네. 블로그에서 괜히 그 샵에 간 게 아니었네.”

“마사지 천국 방콕이 이렇단 말이야?”

“하긴 24시간 마사지 샵이 많진 않겠지...”

“어쩌지? 대부분 9시에 연다는데 아직 한참 남았는데...?”

우리가 헤매고 있던 시각은 이제 겨우 7시를 조금 넘긴 터였다.

“그럼 일단 숙소에 가서 짐을 맡길 수 있는 지 물어보고 짐 맡길 수 있으면 맡기고 로비 같은데서 좀 삐대다가 나오자. 운 좋으면 일찍 체크인 시켜 줄 수 도 있고.”

“고고.”


카오산 로드 근처의 호텔에서 2박을 한 뒤 아속역 근처에 있는 에어비앤비에서 2박을 하는 것이 우리의 숙박 일정 이었다. 인터넷으로 호텔을 예약 할 때부터 자칭 카오산 로드 전문가인 재영이가 자기가 전에 가본 곳이라고 했다. 아는 길이라며 자기만 따라오라고 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당차게 우리를 인도해 주는 재영이의 뒷모습이 든든했다.


공항에서와는 달리 든든한 인도자 덕에 손쉽게 호텔에 도착했다.


“오~ 장재영이~”

“나만 믿으라 했지?”

“역시 카오산 로드 전문가!”


한 번의 길 헤맴도 없이 호텔에 바로 도착한 우리는 로비에 보이는 소파에 산뜻하게 배낭을 내려 놓았다. 호텔 프런트에는 내 생각엔 더위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과감한 노출 의상을 입은 여직원이 앉아 있었다. 우리 셋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다가가 ‘싸와디카~~압’, ‘야 아침이니까 웃자!’ 하며 예약 확인을 부탁했다. 몇 분이 지나 그 필요 이상으로 과감한 노출 의상을 입은 여직원은 우리 이름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예약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인쇄된 예약증을 갖고 있던 내가 예약증을 건네주었고 그 예약증을 잠시 본 직원은 우리가 예약한 곳은 여기가 아니라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지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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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가 아니네.”

“야!야! 카오산 전문가!”

“여기 아니야?”

“머야, 카오산 로드 전문가! 머야 머야~”

“아 여긴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내가 전에 와본 데는 여기야.”

“니가 와본데 말고 우리가 가볼 곳으로 안내하라고~~!”

“아 쏘리쏘리!ㅋㅋㅋ다시 이동하자.”

“와 진짜 힘들다. 잠깐만 쉬었다가 가자.”

“그래 10분만 앉았다 가자.”


우린 로비에 마련된 소파에 철푸덕 쓰러졌다. 많이 지쳐있었다. 잠깐...정말 잠깐만 머뭇거린 후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어디로 갈래?” 호텔에서 나가는 길은 우리가 들어온 길과 그 반대편으로 나가는 길로 두 갈래였다.

“저쪽인데 걸으면 15분 정도 걸린데. 택시 타면 5분이고.” 손가락으로 대충 방향을 가리키며 재영이가 말했다.

“어떻게 택시 타면 5분인데 걸어서 15분이래?”

“몰라. 꼬부랑길인가 보지.”

“15분이면 당연히 걸어야지.”

“그래 잠깐만 앉았다가 걸어가자.” 나는 소파에 파묻혀 고개를 뒤로 젖혀 앉아 무거운 다리를 느끼며 말했다.

도착과 동시에 시작된 강행군이다. 공항에서부터 이미 5천보는 걸은 것 같았다. 적절한 타이밍의 휴식과 음식이 생명을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중요한 요소란 걸 몸소 깨닫는 중이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직원이 약도를 보여주며 알려 준 곳으로 움직였다. 친절한 태국 사람들이다.

“가자.”

“야! 이쪽이래.”

“괜찮아. 이쪽으로 가도 돼. 나만 믿고 따라와.”

“아니 현지인이 이쪽으로 가라는데?”

“야! 나 카오산 전문가야. 이쪽으로 가도 되니까 따라와.”

“아 놔! 나는 카오산 전문가 보다 카오산 현지인이 더 믿음직스러운데...”

“야! 빨리 와 그냥.”

“전문가래잖아. 가보자.”

“아니, 이미 한 번 당했....”

“아 빨리와 그냥~”

“가자가자!”

“아....아닌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추진력과 자신감을 겸비한 재영이의 ‘약진 앞으로’ 정신에 우린 결국 그의 뒤를 따라 갔고 나가는 길에 돌아보니 내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과감한 노출 의상을 입은 그 여직원이 ‘왜 내 말 안 듣냐?’ 하는 얼굴로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당신 말을 못 믿어서가 아니야.’ 라는 의미로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주었지만 내 뜻이 잘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