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야 쫄지마

유체이탈 마사지

by 쌀집아들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마사지 받는 도중에 잠들어 버리면 시원함을 못 느껴서 아까우니까 절대 잠들면 안돼!’ 라는 것이 나의 평소 소신이었기에 어지간해선 잠을 자지 않는 나였다. 하지만 그날 나를 덮쳐온 잠은 불가항력이란 게 어떤 느낌인지 아주 아주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고 확실히 나의 의지력을 벗어나는 범위에 있었다.


반쯤 뉘어진 의자에 깊숙이 누운 나의 발바닥이 간지러운 듯 짜릿하고, 욱씬 거리는 듯 시원함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최면에 걸린 듯 다른 세계로 정신이 넘어가는 듯 하며 어질어질하다가 몇 단계의 의식 세계를 계단 오르내리듯 넘나들며, 잠과 의식의 경계를 고무줄 놀이하듯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영혼이 육신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정신이 무겁고 흐릿한 중에, 주변은 물감이 물에 퍼지는 듯이 어른거리며 순간순간 보이고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이며 저 사람들은 누군데 나를 보고 웃고 있지?’ 하는 정신없는 정신의 파노라마와 영혼의 여행이 두 시간 동안 펼쳐졌다. 환상을 본 듯 했다. 아찔하니 벼랑에서 떨어지는 듯 하며 주위는 적막이 휘감은 듯 고요했고 공허했다. 내게 다른 차원의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준 그 아주머니는 마사지사가 아니라 최면술사 같아 보였다.


“후아~~~~........!!!!”

마사지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혼백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야! 내 발 온전하냐?” 고개도 가누지 못하고 물었다. 옆의 동지들의 낯빛을 보니 다들 제 정신이 아닌 듯 했다. 두 시간의 발 마사지가 끝난 후의 얼굴들은 개운하다기 보다는 아직 영혼이 육신을 찾아 들어오지 못한 문자 그대로의 얼빠진 모습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이게 바로 유체이탈이겠구나!’ 싶은 매우 희귀하고 희한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정신없이 그대로 뻗어 있다가 가까스로 혼백을 수렴하여 몽글몽글한 고양이 발로 호텔로 돌아갔다.


*11AM


11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체크인을 했다. 코쿤캅!코쿤캅! 여자들은 침대 하나에서 둘이서 자기도 한다고 하지만 남자들은... 일단 우리들은 안 될 말이었다. 남자 둘이 한 침대 한 이불이라니 택도 없었다. 우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머 그런 거다. 그러한 연유로 우리가 예약한 방은 더블베드룸 하나와 트윈베드룸 하나. 역시나 가장 확실하고도 누구나 승복하는 승부 ‘가위 바위 보’로 독방의 주인을 가렸다. 형이 있으니 으레 형에게 양보를 함직도 하지만 우린 그런 거 없었다. 걍 승부했고 승리한 상민이 형이 더블베드룸을 혼자 쓰게 되었다.


“완전 반전 없네.”

“이렇게 돼야 맞지.ㅋㅋㅋ” 형이 좋아했다.

“와 너무 합당해서 할 말이 없다.”

고양이 발 아니 주물럭이 될 정도의 찐득한 발 마사지와 몇 차원을 들락거린 듯 한 깊은 수면 덕이었을까?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후 잠깐의 휴식만으로도 금방 체력을 회복했다. 어쩌면 정오를 향해가는 타국의 햇살과 열기로 인한 설레임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연습한 노래들을 틀어 놓은 채 침대에 몸을 뉘이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회의에 들어갔다. 그 때까지도 확신이 서지 않아 내심 불안한 마음이 있던 내가 보챘다.


“얼른 악기 대여부터 끝내자. 이게 젤 문제잖아.”

“여기 나 아는 사람들이랑 그 때 연락했던 애한테 한번 물어볼게.” 발 넓은 상민이 형이 현지 지인들과 연락을 해보겠다며 얘기했다.

“일단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오는 업체에 싹 연락 해서 견적 내 보자.”


나는 인터넷으로 악기 대여점을 검색해서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악기 대여를 해주는 곳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이도 검색이 되었다. 메뉴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고르기 더 힘들다. 즉석에서 매장의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답답하고 급한 마음에 직접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가진 핸드폰으로 통화 하면 국제 전화로 걸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통화료가 또 많이 나올 것 같아서 호텔 카운터로 내려가 호텔 전화를 빌려 달라고 했다. 너무 흔쾌히 무선 전화기 하나를 건내주는 카운터 직원에게 또 한 번 다정한 인심을 느끼며 전화기를 받아들고 로비에 앉아 전화를 걸어 대기 시작했다. 검색창에 떠 있는 여러 악기점 중에 내 짐작으로 얼추 대여점인 듯 한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메신저 보다 오히려 전화상으로의 대화가 더 힘들었다. 난 시대에 발 맞추지 못하는 걸까? 요즘엔 메신저의 시대인데 말이야... 아무튼 나의 영어 발음과 상대방의 영어 발음이 너무나 각자의 국가에 맞추어진 까닭인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의 대화도 순탄치 않았다. 게다가 서로의 영어 듣기 능력도 전 세계 다양한 영어 발음을 다 들어낼 정도는 아닌 게 분명했다. 어릴 때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고 그렇게 공부하라고 해서 열심히 했었는데 막상 써먹기는 쉽지 않았다.


“캔 유 렌트 어 뮤지컬 인스트루먼트? 예~? 렌트! 뤤트! 인스트루먼트 뤤트! 낫 세일! 뤤트!렌트!”

잘 안됐다. 얘기가 어려웠다. 입모양도 손,발짓도 없이 전화로 각자가 외래어로 대화를 하려니 못할 짓이었다. 간혹 영어를 편하게 구사 하는 직원을 찾아 바꿔주는 가게는 양호한 편이었고, 몇 번이고 ‘rent’라는 단어를 아주 정성스러운 발음으로 수차례 외치다가 청자와 화자 모두가 지쳐 끊는 경우도 있었고, 어쩌다 대화가 수월하다 싶으면 판매만 할 뿐 대여는 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수차례 통화를 했다.

“아~놔 힘들어. 말이 너무 안 통해. 말이 통하면 렌트는 안 해준다 그러고...생각보다 빌릴만한 데가 없네. 전에 연락했던 애한테 결국 해야하는 건가?” 수차례 통화에도 별 소득이 없자 지친 나는 포기했다. 나는 참 포기가 빠른 남자다. 누구는 포기를 배추 셀 때나 쓴다고도 하던데...

통화를 마치고 호텔 직원에게 고마워하며 전화기를 돌려주니 통화목록을 확인 한 카운터 직원은 고마워한 내가 무안할 정도로 다정하면서도 간결하고 절도 있게 통화당 50바트로 계산하여 통화비를 청구했다.

“아니 무슨 한 통화에 50바트씩이나...너무 하네 이거~~” 해봤자 소용없었다. 다정하면서도 간결하고 절도 있는 그 직원은 차분하면서도 상냥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에누리 없이 통화료를 지불했다.


“성과 좀 있어요?”

“있어봐! 지금 여기 저기 얘기해 보고 있는 중이야.” 내가 전화로 얘기를 나누는 동안 온라인 메신저로 얘기를 나누던 형이 얘기했다.


이미 오후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뾰족한 수는 없었고 예상보다 돈지랄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었다.

“일단 나가서 알아보자. 부딪혀 보면 머가 나와도 나오겠지.” 전화통과 노트북을 붙잡고 깨작대고 있는 게 답답했는지 재영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어디로 나가야 되는지를 지금 알아보는 중이야. 어디 악기점이 모여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무작정 돌아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재영이의 말이 너무 막막해 보인다 생각하며 내가 잘라 대답했다.

“몇 군데를 알아보고 대충 견적보고 가서는 확실히 딜 쳐서 준비를 해와야지. 무작정 가서는 답이 없어.” 형이 내 말에 보탰다.

“이렇게 앉아서 알아보는 것 보다 일단 나가면 수가 생기지 않겠어?”

“아니 답답한 소리 하지 마. 그러니까 어디로 나가야 하는 거냐고?”

“어디든 일단 적당한 동네로 나가서 물어보면 돼. 뭐든 있을 거야.”

“하아...너무 막연하잖아 그건.”

“대충 주위 검색해보고 방향만 잡아서 나가보자.”

“이 더위에 일단 돌아다니자고?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 답이 안 나오잖아. 계속 이런 식이면 하는 거 없이 시간만 갈 거야.”


그건 그랬다. 몇 시간이 지나도 일에 진척이 없어 답답한 마음만 더해질 뿐인데다 생각과 다른 상황에 성질 더러운 나는 스물스물 짜증이 올라왔고 흐르는 시간에 비례하여 짜증이 더해갔다.

한참의 시간을 소비한 몇 통의 전화와 형의 온라인 메세지를 통해 나온 결과는 당황스러웠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상당한 액수를 악기 대여비로 써야했다.


“어쩌지? 생각보다 비싼데?”

“예산을 너무 초과하는데?”

“어쩔 수 없다. 그럼 술값을 좀 줄이고 대여비로 돌려야지.”

“그래 어차피 우리가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많이 먹지도 않잖아.”

“애초에 많지도 않았지만 더 줄이자.”

남자 셋의 동남아 여행인데 클럽과 술이 빠진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머무르는 4일 중에 두 번 정도 클럽에 가서 보드카라도 한 병 시켜 놓고 마시고 놀며 우리의 공연을 자축하고자 예산을 잡아 두었던 술값의 일부를 악기 대여비로 돌리기로 했다.

“그래 술 한 번만 먹지 머. 어차피 우린 술 많이 마시지도 않잖아.” 사실이 그랬다. 술 보다 커피 마시며 수다 떨기를 더 잘했던 우리 세 사람이었다. 어쩌다 술을 먹게 되면 두 당 만원 정도씩이면 나와 상민이형은 너끈히 밤을 세울 수도 있었고 그나마 재영이가 좀 마시는 편이었다.


“그래그래. 그거 머 중요하다고. 그럼 술 값 줄이고 악기 대여비 예산을 좀 늘리자.” 큰 결단이 내려졌다. 땅!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