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야 쫄지마

악기를 구하다

by 쌀집아들

*4PM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오후 4시경. 결국 우린 재영이의 말대로 구글 지도에서 보이는 가장 가까운 악기점부터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막상 길을 나서니 기분이 나아졌다. 답답한 마음이 좀 가시고 다시 상쾌한 여행자의 기분으로 돌아왔다. 길을 걷던 중 시야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들어왔다.


“저기 가볼까?”

“저긴 관광안내손데 그런 걸 알려주겠어?”

“그래도 가보기나 하자. 혹시 모르잖아.”

“문 연거 맞어?”

“열었겠지 머.”

“머 손해 볼 거 있어?”

역시 여행 안내소였고 두 명의 직원이 있었다. 결과는 뻔해보였지만 그래도 일단 물어는 봤다. 악기를 대여할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있느냐고.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얘기를 나눈 후 딱!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그 곳을 알려주었다. 악기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거기가서 알아보라고.

“오! 거기 맞나봐~”

“어. 거기 맞나보네.”

“잘 찾았네 우리가.”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출동~!”


한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떨며 연습한 노래를 부르며 한참을 걸었다. 멀리 사원이 보이기도 하고 길을 건너고 개울을 지나기도 하다 정면에 길거리 음식점이 보였다.

“우리 저기서 머 좀 사서 입에 물고 가자.”

“그래 좋은 생각이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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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물이 흐르는 작은 하천 옆에 아주 대충, 간단하게 플라스틱 간이 테이블을 펼쳐 놓고 음식 판매대를 열어 놓은 곳으로 갔다. 길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몇몇 음식점이 더 있을 줄 알고 갔었지만 처음 보인 음식점과 꼬치를 파는 곳 두 곳 뿐이었다.

고민할 선택 사항이 없어 오히려 편했다. 메뉴를 보아하니 간식 거리라기 보다는 한 끼 식사용으로 적합해보였다. 간단한 먹거리를 대충 먹을 요량으로 왔던 우리는 얼떨결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야, 잘됐다. 밥 먹자 밥!”

메뉴 중 면류는 재료가 없다고 해서 볶음밥 두 종류와 돼지고기 꼬치를 시켰다. 거기서도 우리 협상의 달인 재영이는 애교 섞인 자태와 웃음 띈 얼굴로 음식값을 깍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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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여기서도 딜 치는 우리 총무 믿음직스럽다.”

“굉장한데? 정말 성실한 아이야.”

“성과 좀 있었어?”

“아니 전혀ㅋㅋㅋ”

“ㅋㅋㅋ여기 쉽지 않다. 아까 통화료도 에누리 없더라.”

“그러고 보니 우리 오늘 먹은 거라곤 6시에 먹은 햄버거가 다네. 그리고 생과일 주스 한 잔.”

“진짜 동남아 여행을 이렇게 빡세게 할 줄은 몰랐다.”

“보통 여자 친구랑 오고하면 과일 엄청 먹고 맛집이랑 이쁜 동네 다니고 할텐데... 진짜 전투적인 여행이다.”

“맞아. 이런 길거리 음식은 여자 친구나 가족이랑 먹기는 쉽지 않지.”

“그렇지.”

“쫄쫄 굶어가며 걷기도 엄청 걷고... 제군들과 함께 해서 기쁘다.”

“하하하. 저 새끼 또 하대해. 너 어디서 그런 거 배웠어? 하하”

“그냥 타고난 싸가지야. ㅋㅋㅋ”

“옆에 편의점 가서 마실 것 좀 사오자.”

나와 재영이는 가까운 편의점으로 음료수를 사러 갔다.

“야 여기 방콕 콜라 있다!”

“사! 사!”

“그래 이거랑 사이다 하나 사자.” 시원한 편의점에서 더위도 식히고 마실 것도 샀다.

입을 축이며 잠시 노닥거리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온통 악기 대여에 신경 쓰고 움직이느라 허기조차 눈치를 못 챘었나 보다. 음식이 나오자 연신 감탄사를 내뿜으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와~ 진짜 맛있다!”

“진짜 겁나 맛있네.”

“근데 이게 얼마야? 45밧 60밧....이야 음료수까지 7천원 정도 돈으로 남자 셋이서 이렇게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네.”

“오~ 가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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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를 여행하는 기쁨 중엔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 국내에서 느낄 수 없는 경제적인 면에서의 편안함과 여유로움은 방콕 여행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전 세계의 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동남아를 지나고 방콕을 지나간다. 수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동남아시아를 선택하게 하는 이유는 나름의 낭만과 멋 뿐 아니라 경제적인 부담을 덜 갖고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는 남자 셋이서 대충 먹고 자니 숙식에 대한 가성비는 더할 것이 없었다.

역시 사람도 기계도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고 또한 중요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의 쉼이 다소 예리하게 날이 섰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약간의 응어리가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역시 배가 불러야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재영이 말대로 나오길 잘했네.” 상민이 형이 말했다.

“사실 아까 호텔에서 이래저래 알아볼 때 재영이 엉뚱한 소리하는 것 같아서 좀 욱 했었는데 니 말대로 나오길 잘했다.”

“그래 아까 좀 그런 것 같았어. 근데 둘이 막 알아보고 있으니까 더 정신없을까봐 그런 것도 있었고. 딱히 내가 더할게 없어 보이더라고.”

“그래. 시간은 가는데 되는 건 안 보이고 이러다 엎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니까 나도 좀 그랬다. 암튼 머. ㅎㅎㅎ”

“그래그래,ㅎㅎㅎ”


다소의 불편했던 심기와 순간을 서로 이야기하며 서로 간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을 응어리를 풀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순간순간의 상황에 혼자 너무 옹졸하게 군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꽉 찬 배와 마음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남았지?”

“이제 금방 나올 것 같은데?”

“와~ 덥긴 덥다.”

“한창 더울 때잖아?”

“담달엔 여기 물총싸움 축제도 열리잖아.”

“맞어. 거기도 가보고 싶은데. 엄청 재밌다던데.”

“담달에 한 번 더 고고?ㅋㅋㅋㅋ”

덥다 덥다하며 걷다보니 멀지 않은 정면에 기타들과 음향 장비들이 널려 있는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야야 다 왔네. 저기다 저기.”

“오~ 저기 기타 보인다!”

“오~ 저기 맞나 보네.”

도착했다.

“기타 많네~”

“여기서 충분할 것 같은데?”


크게 한시름 놨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악기점이 한 군데, 길 건너 맞은 편에 몇 군데가 더 보였다. 곧장 가까운 가게로 들어갔다. 다행히 사장님과 영어로 얘기를 할 수 있어서 편했다. 악기 대여 문의를 하니 자기들은 판매만 한다며 건너편 가게에서 대여를 할 수 있을 거라시며 감사하게도 같이 가서 얘기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친절한 사장님을 따라 길 건너편의 악기점으로 갔다. 그곳의 사장님과는 영어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나마 더듬더듬 할 수 있는 외국어인 영어가 무용지물이 되었으니 같이 와주신 사장님이 아니었으면 정말 난감할 뻔 했다. 그 분을 가운데 두고 영어와 태국어가 오갔다. ‘앰프와 마이크, 기타와 카혼을 하루 3시간씩 3일간 빌려 주세요~’ 라는 내용으로 두 언어가 오갔고 우리끼리는 또 들뜨고 답답한 마음에 흥분하여 각자가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통에 현장은 마치 국제 경매장 같은 분위기로 한참을 와글와글했다. 정말이지 국제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야!야! 쓸떼 없는 얘기하지 말고 좀 있어봐!”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고 상민이형이 말했다.

대여점 사장님이 제시하는 가격은 우리의 예상 견적을 훨씬 웃돌았다. 한국에서도 악기대여료는 대부분 일 단위로 책정된다. 3시간을 빌리든 한나절을 빌리든 악기대여료는 사실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견적에 당황한 우리는 대여료를 좀 깎아달라고 떼를 썼고 한동안 설왕설래한 후 대충 어느 정도 이상의 가격협상은 더 어렵겠다 싶어 우리끼리 다시 의견을 모았다.

“일단 몇 군데 더 가보자.” 역시 이럴 땐 ‘둘러보고 올께요~’ 전략이다.

“응, 저기 몇 군데 더 보이니까 가보자.”

“내가 저쪽으로 갈게. 너넨 이쪽으로 가봐.” 형이 탐문 방향을 지시하며 말했다.

“좀 둘러보고 여기서 다시 만납시다.”

“오케이!”


나와 재영이는 길을 따라 내려가고 형은 다른 쪽에 보이는 악기점으로 향했다. 좀 걸을까 하는데 파격 할인 중이라는 표시가 붙은, 딱 봐도 험한 세월을 보냈을 것 같은, 길 가에 나와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기타가 눈에 확 띄었다. 이퀄라이저가 장착된 기타인데다 소리는 둘째 치고 일단 가격이 좋았다. 어차피 ‘나 따위가 소리에 신경 쓴다고 그 소리 다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타 소리라는 게 결국 내 손가락에 달려있지. 그래도 저 이퀄라이저는 먹겠지?’ 생각하고 가격 위주로 살펴보았다.


“야 이거 괜찮을 것 같은데...일단 가격이 괜찮아.”

“한 번 쳐봐.”

“쓰읍...한 번 봐 볼까나...”

기타를 들어보며 내가 관심을 보이자 직원들이 옳다구나 싶었는지 적극적으로 추천하기 시작했다. 한 직원 아저씨는 직접 연주를 해서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마음속에 슬그머니 결심이 서고 있었다. 우리한테 아주 적절한 기타였다.

“야 씨, 나보다 훨 잘 치는데? 섭외하자ㅋㅋㅋ”

“소리 나쁘지 않은데?”

“이건 그냥 사도 되겠는데? 샀다가 나중에 팔아도 남을 것 같애.”

“그럼 차라리 그럴까? 기타만 하나 사놔도 훨씬 편하긴 할 텐데.”

“진짜 나중에 팔 수 만 있으면 나이스 할 텐데.”

“머 이정도면 운반료라 생각하고 사도 될 사이즈인 듯...”

구매의사가 가득했지만 결단을 미루며 주위를 보니 가게 안쪽에 카혼도 보였다.

“야 저기 카혼도 있네. 한 번 봐봐.”

“오~~” 가게 안쪽으로 들어온 재영이는 카혼에 앉아 툭탁툭탁 몇 번 두드려봤다.

“소리 괜찮은 것 같은데?” 이정도면 우린 정말 소리에 그리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닌 거다.

“어. 뭐 이 정도면 쓸 만한 것 같은데...”

“그래, 어차피 길거리에서 하는 거고 우리가 소리에 크게 신경 쓸 건 또 아니잖아.ㅋㅋ”


내가 보기에 약간 격앙된 듯 한 직원들의 눈이 똥그랗게 커지며 우리에게 더 적극성을 보였다. 나는 일단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가격을 물었다. 카혼은 1000바트, 기타는 1700바트에 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외국인 바가지 가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쳐도 그리 나쁜 가격은 아닌 듯 했다.(호구!호구!) 3일 동안 원 없이 쓸 수 있다는 장점까지 생각해보면 빌리는 것 보다 차라리 합리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호구의 자기 합리화 지경까지 이르렀다.) 구매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 갈 때쯤 상민이형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왔다.


“어떻게 됐어?”

“여기 카혼이랑 기타 합해서 2700바트에 살 수 있을 것 같애요.”

“우리가 예산을 3일 렌트비에 15만원 정도로 잡았으니까...일단 저 정도 사는 건 괜찮은 것 같고.”

“그래? 그럼 엄청 괜찮은 거 아니야? 사실 나중에 샀다가 잘하면 팔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거든.”

“맞어, 그렇기는 해.”

“그럴 수 있으면 너무 좋지. 나중에 여기 다시 가져와서 반값에만 넘겨도 이득일 것 같은데...”

“근데 얘들이 그렇게 바보들일까?ㅋㅋ”

“하긴 그래.ㅋㅋㅋ”

“머 아무튼 나쁜 가격은 아닌 것 같애.”

“그래 그럼 사는 걸로 할까?”

“음....그래 그럼 좀 더 딜을 해보자.”


딜을 하려는 정황상 우리가 을이었다. 외국인에다가 악기가 필요했던 건 우리였고 다른 가게를 더 찾아가고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막상 기타를 사려했더니 기타 가방과 기타 스트랩은 별도 구매.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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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얘들 설마 했는데 진짜 이러네.”

“하나하나 다 따로 팔 줄 알았어.”

“아~~~스트랩 챙겨올걸...생각은 했었는데....아~~~~” 생각은 했지만 챙겨오지 않은 나였다.

“그래도 피크는 가져왔다.ㅋㅋ”


기타를 사용하려면 필요한 사소하고 기본적인 그 모든 것들의 가격을 포함해서 거래를 해야 했다. 싹 합쳐서 3300바트를 부르는 사장에게 2700바트부터 시작해서 결국 여러 마디를 왔다 갔다 한 이후 너무 예상된 가격이지만 3000바트에 합의를 보았다.

“이정도 가격이면 선방 한 건가?”

“그래 머...이정도면 됐다.”

“외국인 바가지 생각하면 이정도면 뭐...”

“만족 할 만하다.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그래, 개운하진 않아도 이정도면 됐다.”

“그래그래 잘 했어. 너네들 이러는 거 보니까 뿌듯하다야. 하하핫!!”


사실 택시비만 봐도 외국인에겐 현지인보다 일단 3배 정도 더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악기를 사는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지 상황에 약한 외국인에다가 심지어 우리가 급한 상황이라 현저히 불리한 입장에서 시작한 거래다. 뒷맛이 좀 찝찝하고 그래도 뭔가 좀 당한 것 같은 기분은 들었지만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악기를 구했다는 큰 산을 넘은 안도감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신나게 상인들과 함께 인증샷까지 남긴 후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