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쫓겨나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1시가 넘어있었고 형은 일어나 있었다.
“꽤 오래 걸렸네. 수고했어.” 우릴 반기며 형이 말했다. 밥 먹고 노닥거리느라 늦었다고는 말 안했다.
“어떻게 됐어?” 결과를 궁금해 하며 형이 물었다.
“나름 성공했어. 4700바트에 앰프랑 마이크 스탠드까지 샀어.”
“오~~진짜? 그래 왠지 니네가 사올 것 같았어. 근데 진짜 싼데? 그 정도면 성공인 것 같은데?”
“그죠? 잘 샀어. 완전 만족이야.”
“아하하하핫! 잘했어 잘했어. 수고했다야 기특한데.” 형도 결과에 크게 만족하는 듯 했다.
“이제 준비는 다 됐네. 버스킹만 하면 되겠네.”
“퐈이날리...”
“그럼 어제 봤던 그 공원에서 일단 시작해 볼까나.”
“그랍시다!”
“그래. 배고프지? 나가서 뭐 좀 먹고 오자. 나도 배고파 죽을 것 같애.”
“우린 죽을 정도는 아닌데 ㅋㅋㅋ”
*2PM
오후 2시.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숙소 건너 편 길가에 있는 정말이지 현지 느낌 물씬 나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수집 같은 면 요리가 주종으로 보이는 가게로 들어갔다. 문도 따로 없이 안팎의 구분마저 모호한 탁 트인 공간이라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안팎의 구분마저 모호한 탁 트인 공간이니 만큼 당연하게도 엄청 더웠다. 그 더운 날씨에 불구하고 냉방은 띄엄띄엄 서 있는 커다란 선풍기 몇 대가 전부라 사실 이 시간에 뜨거운 면 요리를 먹기에는 극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남자 셋이었다.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유심히 자세히 골똘히 살펴본 후 면발 종류와 토핑 종류를 따로 골라 세 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전략적으로 겹치지 않게 다른 종류로 시켰다. 이렇게 세분되어 주문을 받는 거 보면 허름해 보이는 차림새와는 달리 전문점인가보다.
형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내심 미안했지만 끝까지 우린 따로 아침을 먹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음식이 나왔고 ‘면 요리 따위야 씹지 않고 마시는 거다.’ 라는 걸 보여 주겠다는 듯이 후루룩 해치웠다. 면발의 종류와 그에 따른 식감을 깨닫는 식사였다. 땀을 흘리며 식사를 마쳤지만 여름철 보양식을 먹을 때의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러고 나니 어련하게도 시원한 곳에서의 시원한 커피 한잔 생각이 절로 간절해져 또 길 건너에 보이는 카페로 곧장 향했다.
뜨거운 면 요리를 먹은 후 시원한 실내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있자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실외 테라스에도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 예쁜 카페였지만 노천의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 더웠다.
커피를 마시며 방콕으로 출발하기 전 급하게 열어 둔 페이스북 페이지에 우리들의 간단한 소개와 사진들, 지금까지 열심히 찍은 사진과 동영상들 몇 가지를 올렸다. 행여나 현수막에 적힌 우리의 페이스북 계정 주소를 보고 누군가 장난삼아라도 방문했을 때 아무 것도 없으면 너무 그렇지 않겠냐는 형의 의견이었다. 역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구색을 갖추고 나니 이제 정말이지 거리로 나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만 남았구나 싶었다. 막상 모든 준비가 이루어지고 공연할 생각을 하니 벌써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난 남들 앞에 나서는 용기가 많이 부족했다. 부모님께서 소심한 내 성격을 고쳐 보시려 웅변 학원에 보내시기도 하셨지만 학창시절에 스스로 손을 들고 발표 한 번 하지 않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대학교에 가서 밴드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놀라시며 좋아하셨다. 그렇게 수줍음 많던 자식이 남들 앞에서 기타치고 공연할 정도로 용감해졌다며...하지만 사실 무대에 오르고 공연을 하는 건 내 입장에선 다분히 자뻑스런 멋 부림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실제로는 처음 밴드 공연을 보며 그 멋에 감탄했고 그 멋을 나도 부려보고 싶다는 강렬한 의욕이 솟았고 결국엔 그 멋을 위해 무대에 올라서게 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손이 덜덜 떨리고 두려울 정도로 긴장했다. 하지만 언제나 공연은...무대에 올라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은... 즐거웠고 또한 짜릿했다. 게다가 공연이 주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그런 긴장감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했다.
*4PM
“제군들 준비 되었나?”
“ㅋㅋㅋ 미친놈아”
“하아, 완전 떨린다.”
“쫄지마, 괜찮아.”
“그래, 쫄지 말자. 대충 해도 돼.”
“그래, 너무 잘 할려고 하지마. 적당히 할 만큼만 하면 돼.”
“재밌게 하자, 재밌게...”
“그게 제일 중요하지.”
“다 챙겼지?”
“가자!”
전투에 임하는 전사가 무기를 챙기듯 우리는 각자 손에 손에 악기를 챙겨 들고 비장한 마음으로(일단 나는 확실히...) 숙소를 나섰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마련한 기타와 카혼, 앰프와 마이크와 한국에서 가져온 탬버린과 캐스터네츠까지 들고 어제 저녁에 봐 두었던 숙소 옆 공원으로 향했다.
기타 가방을 메고 있으면 마치 내가 정말 뮤지션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할 때가 있다. 악기를 몸에 지니면 전혀 다른 내가 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좋았다. 악기는 나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주는 아이템 같다고나 할까. 히어로들의 변신 수트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각자 악기들을 한아름 안고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안으로 삐질삐질 걸어 들어가니 한산한 분위기와 넘치는 여유로움은 우릴 완벽한 외부인으로 만들었다. 뻘쭘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슬쩍 주위를 훑어 보다 적당해 보이는 한 쪽 구석으로 자리를 정했다. 관객이 없다고 생각해도 떨렸고 있다고 생각해도 떨렸다. 너무너무 떨렸다.
“아~~~~너무 떨려서 어찌 할 수가 없다.”
“야 우리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쫄보처럼 말이야.”
“그래 쫄보가 되지 않기로 했는데...천성은 어쩔 수가 없네.ㅋㅋㅋ”
‘그래, 쫄보처럼 쫄아서 이 좋은 시간을 만끽하지 못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나는 굳게 마음 먹었다.
어버버한 정신으로 부시럭 부시럭 악기를 꺼내고 꼼지락 꼼지락 자리를 세팅하고 있는 우리에게 공원 관리인이 지나가며 마이크 사용은 안 된다는 의미인 듯 손짓을 주었다.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위 아래로 크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여기 마이크 쓰지 말라는데?”
“볼륨을 줄이면 안될까?”
“생목으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생목은 안 돼. 너무 힘들어.”
“어떡하지...아무래도 쓰면 안 될 것 같은데...”
관리인의 손짓 하나에도 걱정이 크게 생기며 동공이 흔들리는 듯 하면서도 몸은 부산스레 움직였다. 멀찍이 벤치에 앉은 몇몇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인지 한심하게 보는 눈빛인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우릴 쳐다보는 듯 했다. 그 눈빛과 표정 하나에 내 몸과 손은 굳어져 가고 가슴은 방망이질을 쳐댔다.
준비해 온 현수막까지 바닥에 펼쳐 준비를 마친 후 우리 셋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설레고 긴장된 미소와 응원과 신뢰의 눈빛을 나누었다.
“크아~~~~~~~~~~~~~~ 시작해볼까?”
“아하하하핫! 시작하자!”
“화이팅!!”
마침내 우리가 꿈꾸었던 첫 진동이, 첫 울림이, 첫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를 휘감은 극도의 긴장감을 뚫고 기타 소리가 시작되고 난 웃음이 빵 터졌다. 무언가 껍질이 깨어지는 듯 하며 가슴이 활짤 열리는 통쾌한 웃음소리가 행진의 시작을 울리는 빵빠레처럼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크핫핫핫!’
하지만 노래가 시작된 후 채 몇 소절이 지나기도 전에 종전의 관리인이 멀리서 부터 손사레를 치며 우릴 향해 급히 다가왔다. 거의 뛰어왔다. 아주 강력하게 공연을 제지하는 제스쳐와 함께 왔다.
“머야? 왜? 딱히 소란스럽지도 않았는데 왜?” 우린 모두 입을 모아 ‘와이?와이?’라고 했고 관리인은 머라 머라 알 수 없는 몇 마디를 했다. 그리고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남자 셋을 향해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낸 듯 했고 재영이가 그를 따라갔다. 이어 상민이형도 그 쪽을 따라나섰고 나는 황망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오래지 않아 돌아온 형은 관리인의 말이 공원 펜스 넘어 길가에서는 문제 없다고 했다고 했다.
“여기 공원 안은 안 되고 밖으로 나가야 되나봐.”
“아~~글쿠나.”
“자전거 주차장 같은 곳에 약간 공간이 있는데 완전 길가긴 한데 할 만 할 것 같애.”
“그쪽으로 옮깁시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