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와 함께 한 첫 버스킹
다른 선택사항은 없었다. 악기들을 챙겨 도망치듯 공원 밖으로 나갔다. 공원 자전거 주차장은 도로에 인접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머무를 공간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나가기 바쁜 곳이었다. 한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거 완전 도로 지나는 차들 보면서 해야 되네. ㅋㅋㅋ”
“진정한 길거리 공연이다.”
“아무것도 안 들리겠는데? ㅋㅋㅋ”
“야 완전 마음은 편해진다.”
“이건 머 거의 면벽 수행 느낌이네.”
사실 혼자 벽보고 노래 하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문자 그대로 길거리 공연이었다. 한 쪽 길거리에서 짱 박혀 판을 깔았다. 현수막은 펼치지 않았다. 허공에다 노래한다 생각하니 확실히 마음은 편했다. 이곳은 정말 경범죄이상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누구도 머라 할 것 같지 않았다. 차도 옆이라 자체 소음이 시끄러워 볼륨도 적당히 올려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한 번 일을 당하고 나니 긴장이 확 풀리고 몸도 한결 부드러워진 듯 했다.
장소를 옮겨 다시 한 번 대차게 시작하려 했지만 이번엔 앰프에 연결한 마이크가 말썽이었다. 무선 마이크가 앰프에 연결이 안 됐는지 무선 마이크를 통해서는 앰프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머야? 왜이래?”
“아! 아! 진짜 안 나와?”
“어, 안 나와.”
“머지? 왜 소리가 안 나지?”
당췌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작동법을 자세히 듣고 왔었어야 했는데 쉽게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우리 중 이런 기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억측과 신빙성 없는 주장만 서로 우겨댔다. 무엇 때문이니 이것 때문이니 저것 때문이니 각자 남자들 특유의 기계 전문가인 듯한 말을 했다.
“여기 연결 퓨즈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그래. 숙소에 있으니까 내가 가서 가져 올게.”
“그런 게 있었어?”
심지어 형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러 숙소에 다시 갔다 오기도 했다. 하지만 형이 가져온 퓨즈로 형이 무언가 뚝딱뚝딱 해보아도 앰프는 묵묵부답이었다. 할 수 없이 앰프에서 소리가 나는 유선마이크 하나와 핸즈 프리 마이크 그리고 형이 한국에서 가져온 자체 스피커가 내장 된 블루투스 마이크 하나로 공연하기로 했다.
“이야 이거 제대로 써 먹네~!”
“이거 안 가져 왔으면 어쩔 뻔 했냐?”
“진짜 형 큰일 하나 했다.”
“참, 구성이 아기자기허다!”
“아,아, 근데 이거 소리 거기서도 들려?” 블루투스 마이크로 말을 하며 내가 물었다.
“어, 잘 들려.”
“ㅋㅋㅋ 됐네, 그럼.”
최종 우리의 그림은 알록달록한 빛도 나오는 야외 행사장에서 쓰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이는 앰프를 중심으로 가장 우측에 핸즈프리 전화기 같은 마이크를 귀에 꽂고 카혼 위에 앉아 있는 재영이와 아동용 탬버린과 유선마이크를 각각 한 손에 들고 앰프 옆에 선 상민이형 그리고 그 옆으로 내가 내장된 스피커에서 에코 빵빵하게 아련한 소리가 나오는 블루투스 마이크를 마이크 스탠드에 까지 꽂고 기타를 매고 선 모습이었다.
“야!야! 다시 상쾌하게 시작하자.”
“가자~~!!”
다시 심기일전하여 시작했다. 기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다시금 우리의 길거리 공연이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관객은 방콕의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사실 구경하며 서 있을 공간도 마땅히 없었고 주변 소리가 시끄러워 우리 노래가 잘 들릴 것 같지도 않았지만 상관 없었다. 그저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며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고 지나가는 차 안의 사람들의 순간적인 시선이 우리의 관객이 되어 주었다. 그나마의 고정 관객은 도로 건너 가게 앞에 나와 우리를 봐주는 상인들이었다. 머 들리는 건 없었을 것이고 왠 놈들인가 싶어 눈요기로 구경이나 했을 것이다. 관객이 없으니 마음이 더없이 편해졌고, 긴장감이 사라진 마음속엔 편안함과 즐거움만이 들어찼다.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것도 없었고 공연이 진행될수록 신이 났다. 비록 우리가 기대하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방콕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오랜 시간 생각해왔으나 망설여왔던 해외 버스킹을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에 도우너처럼 어깨에 맨 기타를 타고 솟구쳐 오르는 듯 기분이 좋았다. 신났다. 다른 수준의 자유로움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야 괜찮아?” 한동안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없는 것에 실망한 상민이 형이 내게 물었다.
“어 난 재밌는데.” 난 환한 얼굴로 대답했던 것 같다. 분명히.
“거짓말. 사람이 이렇게 없는데도?”
“괜찮은데 머 꼭 관객이 있어야하나?”
생각 없이 즐거워하는 나와 재영이와는 달리 형은 기대했던 그림이 안 나오는 것에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 그간의 준비가 허망하게 끝나 버리는 것 같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연은 이어졌고 간간히 어떤 노래는 그냥 넘어가자는 말도 나왔지만 어차피 아무도 안 듣는데 곡을 넘어가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럴꺼면 공연 접고 말지.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진행했다.
그러다 준비한 노래의 중반을 넘어갈 즈음 운명처럼 나타난 한 명의 소녀 관객! 뚜둔!! (정말 이 자리를 빌어서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감사했다고 얘기하고 싶다.) 어디론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우리의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이 우리를 향할 때의 그 짜릿함과 감동은 정말이지 열세의 전장 상황에서 때마침 나타나 준 지원군 같기도, 커다란 시련과 마주하고 길을 잃은 검객에게 마음의 눈을 띄워 준 은인과도 같았다.
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혼자서 박수까지 쳐주었다. 아아~~ 그 감격과 고마움이란...
“야야, 소녀 관객 왔으니까 얼른 아이돌 노래하자.”
“두 유 노우 케이팝?” 나의 물음에
“저 한국 사람인데요.” 그녀가 답했다.
“아 한국분이시구나.”
“야 누가 봐도 한국사람인데!”
“ㅋㅋㅋㅋㅋㅋ”모두가 웃었다.
“잘하시네요. 팁 박스 놔요. 제가 팁 넣어 드릴께요. 한 분당 20바트 씩!”
“와우 감사합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차마 못 놨던 건데...”
“놔요. 어때요.”
그녀의 응원에 힘입어 부랴부랴 기타 가방을 앞에다 열어 펼쳤다.
“너무 큰 걸 펼쳤네.” 펼치는 손이 부끄러워 내가 말했다.
“혼자 여행 오셨나 봐요.”
“네 여기 공원에서 석양 보러 왔어요.”
“아~ 여기 석양 보는 데구나. 우린 전혀 몰랐네.”
그녀는 정말 기타 가방에 팁을 주었다.
“와~ 진짜 고마워요. 정말”
“너무너무 감사해요, 정말.”
“진짜 큰 힘이 된다.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우리는 그녀를 보며 공연을 계속 했고 부분 부분 같이 부르자고 하기도 하며 넷이서 함께 놀았다. 완전 신나게 논 건 아니었지만 도란도란 하고 사랑스러운 풍경이었지 싶다.
“잠깐 석양 보고 다시 올게요.”
“네네 다녀오세요. 꼭 오세요~~하하”
그렇게 그녀는 석양을 향해 날아갔다.
“진짜 천사다 천사!!”
“뭐라도 해드리고 싶다. 진짜.”
“구세주다 진짜.”
신기하게도 그녀가 잠시 머물고 간 이후로 간간히 잠깐씩 발걸음을 멈추는 행인이 생겼다. 길 가던 발걸음을 우리로 말미암아 잠시 멈추게 되고 우리에게 시선과 관심을 보여주는 것에 우리는 희열을 느꼈다. 게다가 근처에서 우리 공연을 보던 몇몇 상인들이 우리에게까지 와서 팁 박스를 채워 주고 가기도 했다. 현지인들의 그런 호의에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석양 어땠어요?”
“늦었어요. 여기 공연 보느라 좀 늦었어요.”
“아 너무 미안해요 정말.” 정말 미안했다. 민폐를 끼친 것 같았다.
“아니예요. 내일 다시 오면 되죠.”
공연을 계속했다. 몇 곡을 더 들은 그녀는 이제 가겠노라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매일 여기 나와서 하시는 거예요?”
“아니에요. 오늘 처음 나왔어요.”
“아~ 멋져요. 잘 하시네요.”
“고마워요. 괜히 꼴 사납게 보일까 걱정도 했는데...”
“아니에요. 보기 좋아요 정말. 한국 사람들이 여기서 이러는 거 보니까 뿌듯하네요. 앞으로도 재밌게 잘 하세요. 전 이제 가 볼게요. 공연 잘 봤어요.”
“아 정말 정말 고마웠어요. 당신 아니었으면 우리 공연 못 했을 거예요. 복 받으실 거예요. 남은 여행도 잘 하세요~!”
“하하하 고마워요~!”
어디선가 날아온 그녀는 우리의 시작을 완성시켜주고 홀연히 떠나갔다.
그녀가 떠나고 이미 해가 기울어져 있었다. 큰 빈자리를 느끼며 남은 곡을 끝냈다. 그리고 그 성취감이란....그 뿌듯함과 벅차오르는 흥분과 감동이란...그 곳의 공기와 소음과 불빛들과 사람들... 그 정황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구름에 오른 듯 한껏 취했다.
“아~~최고다~~~!” 짝짝짝! 우리는 박수를 치며 첫 공연을 마무리했다.
“수고했다~~!”
“야~ 진짜 너무 재밌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히야~~”
“어땠어?” 형이 내게 물었다.
“완전 좋았는데?! 기분 최고다 진짜.”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형은 그래도 약간 부족하다 느낀 것 같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가능하면 난 밤새도록 이런 황홀감에 젖어 있고 싶었다.
격앙된 기분으로 악기를 챙겨 숙소로 돌아왔다. 땀에 젖어 있었고 숙소로 돌아오자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다. 간단히 몸을 씻고 침대에 뻗었다.
“와 진짜 피곤하다. 우리 잠깐 쉬자.” 몸을 감쌌던 쾌감만큼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그대로 쓰러져 잠에 곯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