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야 쫄지마

아속으로 이동하다

by 쌀집아들

* 1PM


정오가 훌쩍 지나간 시간. 다시 숙소로 돌아와 맡겨 두었던 짐을 찾아 아속역 근처의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타러갔다. 한국에서 가지고 왔던 짐에다가 악기들 까지 보태지니 짐이 곱절로 불어 있었다. 택시들이 우리 앞에 섰다가 우리의 많은 짐 때문인지 그냥 가기도 했다. 더위와 기다림에 지쳐갈 때 쯤 오늘 아침부터 적극성을 발휘한 재영이가 차가 다니는 도로 앞까지 나서 열심히 택시를 잡았다. 나는 그런 재영이의 든든한 뒷모습을 보며 반할 뻔 했다.


“컴온맨~”


마침내 재영이의 성실함은 결실을 거두었고 택시 기사 마음이 변할새라 재영이가 잡고 있는 택시를 향해 부랴부랴 이고지고 달려갔다. 트렁크에 테트리스를 해서 차곡차곡 넣고 뒷자리에 몇 가지 짐을 안고 타고 나서야 짐을 모두 실을 수 있었다.


“와~ 진짜 짐 많네. 그래도 오늘 아침 보람차다!”

“일어나자마자 버스킹 이라니. 진짜 꽉꽉 채워서 하네.”

“머 어쨌든 카오산 로드에서 한 번 했다!”

“재영이 멋있었다! 쫄아 있는데 니가 적극적으로 하자하니까 좀 용기가 생기더라.”

“맞어! 추진력 좋았어!”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많이 해서 좋음.”

“맞다! 나도 이정도로 많이 할 줄은 몰랐는데 뽕 뽑네.”

“어차피 버스킹 하러 온 거니까 열심히 하자.”

“그래, 머 이거 하러 온 건데 양껏 하고 가자.”

“좋아! 좋아!”


막상 일을 벌이고 나서는 오히려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주는 동지들이 고마웠다. 구글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길을 안내하여 목적지에 다다랐다. 또 한참을 차곡차곡 짐을 꺼내어 길가에 올렸다.

방콕 시내는 카오산 로드와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높은 빌딩들이 만들어 낸 빌딩 숲과 도로를 빼곡이 채운 수많은 자동차들 사이의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전형적으로 복잡하고 바쁜 도심의 모습이었다. 번듯하게 차려 입고 바쁘게 움직이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나의 민소매 옷차림이 좀 머쓱했다. 마치 시골에서 농활하던 모습 그대로 서울로 상경한 느낌이었다. 우리의 모습이 마치 바리바리 짐 싸들고 서울에 있는 친척 만나러 온 시골 아이들 같아 보였다. 우리의 눈이 그렇게 순박하지는 않지만...


“야 희한하다. 바로 옆 동네인 것 같은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네.”

“방콕이 이런 동네도 있었구나. 카오산 로드만 있는 줄 알았는데...”

“너무 방콕을 작게 봤네.”

“완전 도시네. 여긴...”

“숙소는 어디야?”

“저 건물이네.”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덩치 큰 건물을 보며 형이 말했다.

“우와~ 건물 완전 멋진데.” 건물 이름도 멋졌다.

“와~~ 진짜 크다. 와 이거 먼데?”

“근데 뷰가 얼마나 멋지면 건물 이름이 대놓고 뷰야?” 기대감을 안고 손에 어깨에 할 것 없이 짐을 챙겨 횡단보도를 건너 공룡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와 시원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시원했다. 지하와 1층에 식당과 카페들이 들어 와 있는 주상복합 건물인 듯 했다.

“여기로 집 주인이 온데. 오빠한테 연락하니 여동생이 가고 있다 그러고 여동생한테 연락하니 오빠가 갈 거라 그러고. 머야 대체? ㅋㅋㅋ”

“완전 친남매네. ㅋㅋㅋㅋ”

“와 여기 엄청 좋아 보인다. 이런 데는 얼마나 할까? 비싸 보이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에 있는 주상복합 그런 거 아냐? 엄청 비싸겠지.”

“이런데 살면 진짜 살만 하겠다. ㅋㅋㅋ” 쓸떼 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자니 학생 같아 보이는 여자애가 우리 쪽으로 왔다. 결국 오빠가 이겼나 보다. 사실 나도 여동생이 있지만 항상 나보다 여동생이 훨씬 어른스럽고 너그럽게 져주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린 마중나온 여학생과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따라 나섰다.


특이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10층에서 내려 새하얀, 정말 새하얀... 그림 하나 걸려 있지 않고 장식이라고는 없는 게살 같이 하얀 벽이 주욱 이어진 긴 복도를 따라 한참 구불구불 들어간 후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 까지 올라가는 구조였다. 건물 덩치가 커서 그런지 복도가 꽤나 깊숙했다. 바깥에 1층에서 바로 20층까지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도 있다고 했는데 건물 내부로 들어오면 이런 루트로 와야 한다고 했다. 집을 안내해 주고 몇 가지 주의할 것을 알려주고 인사를 하고 집주인은 돌아갔다.


“이야~~~~여기 죽인다~~~!” 20층이라 전망도 너무 좋았고 큰 방과 작은 방으로 방이 두 개, 깔끔한 주방과 욕실, 널찍한 거실에다가 다소곳이 놓인 예쁜 4인용 식탁까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주인의 퇴장과 동시에 우린 에어컨부터 틀었다. 더운 나라의 고급 빌라라 그런지 거실뿐만 아니라 방마다 에어컨이 달려 있었다. 방마다 파워 냉방을 시작했다.


난 무엇보다 방마다에 있는 개방감 좋은 창문이 마음에 쏙 들었다. 큰방은 발코니와 연결 되는 전창으로 바깥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고, 작은 방에도 큼지막하고 시원한 창문이 나 있었다. 안전의 문제로 창이 있어도 개방각이 제한되어 있거나 창살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 큰 창이 완전히 개방 되는 것이 색다르면서도 막상 창문을 확 열고 내다보니 몸이 쑥 빠져나가는 게 좀 무섭기도 했다. 아무튼 다들 숙소에 크게 만족했다. 탁월한 형의 선택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이야 진짜 좋네! 완전 맘에 든다.” 다들 감탄하며 집 구경을 했다.

“와 진짜 여기서 한 달 정도 살고 싶다.” 큰 방의 발코니로 나갔다. 주변 도심의 전망이 저 멀리까지 눈이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왔다. 건물 이름에 뷰를 넣을 만했다. 야경이 기대 되는 뷰였다.

다시 우리에게 결전의 시간이 왔다. 집은 넓고 좋았지만 방은 2개. 큰방에 킹사이즈 침대가 있었지만 우리 모두는 남자들 둘이서 정답게 한 침대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의견에 결연한 표정으로 동의했다. 역시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내어 한 명은 거실 한 구석, 집안에서 가장 침침한 곳에 놓인 소파베드에서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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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승부는 언제나 그랬듯 냉정했다. 형이고 동생이고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 남자들의 승부는 안면몰수하고 하는 거다.


“가위바위보!”

“아싸~~”

“아씨...쫄리는데....”

“야 빨리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보!보!”

“예~~~~”

재영이가 일등 내가 이등. 방콕 시내에 있는 수많은 방들 중에 후기와 사진을 검토하여 신중히 하나를 선택하고 예약을 하고 집주인과 연락해 우리를 인도했으며 게다가 가장 연장자인 상민이 형이 삼등.


“크핫핫핫핫핫핫핫핫핫핫핫핫!!”

“아핫핫핫핫핫핫핫핫핫핫핫핫!! 아이고 배야~~” 우린 웃었지만 형은 진심 짜증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요 양보는 없었다. 썩은 얼굴로 거실에 짐을 풀며 투덜투덜 불평 불만을 털어 놓는 형의 말을 들은 체도 없이 나는 작은 방에 재영이는 큰 방에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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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오늘만 거기서 자고 내일 이 방으로 들어와요.” 미안한 듯이 내일 하루 일찍 귀국하는 재영이가 말했다.

“안 되는데? 내일은 내일의 가위바위보를 해야지. 승부는 승부다. ㅋㅋㅋㅋ”

“야 너무한 거 아니냐?”

“ㅋㅋㅋㅋ농담이야 형. 내일 저 방 써요.” 그래도 형은 기분이 영 좋지 않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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