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을 가다
*11PM
야심한 시각. 재영이와 나는 인터넷에서 뻔질나게 봐왔던 방콕의 유명한 클럽 거리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게 봐온 이름의 클럽 중 하나로 들어갔다. 꽤 비싼 입장료인 300바트(심지어 no free drink)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구에서부터 한 남자가 무슨 컨셉인지 나는 잘 모르는 은빛의 갑옷을 입고 몽롱한 붉은 색의 후광을 받으며 포토 존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청년 재영이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굳이 줄까지 서서 사진을 찍은 뒤(찍는 김에 나도 뒤이어 찍었다.)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들어갔다. 유명한 클럽이라 그런지 규모도 상당했고 내부 시설도 화려했다. 높은 곳에 마련된 DJ 부스에서 열정의 DJ들이 열띤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었다. 춤을 추는 스테이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테이블이 펼쳐져 있었지만 빈 테이블은 찾아 보기 힘들었고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술을 마시며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야! 여기는 테이블을 잡아야 될 것 같애.” 마땅히 스테이지도, 서 있을 곳도 없는 까닭에 테이블 사이 공간에 우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일행들끼리 모여와서 보드카 같은 술을 한 병 시켜 놓고 어울리는 곳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현재 우리 예산과 상황에 보드카를 병으로 시키는 건 맞지 않았다. 대충 어정쩡하게 놀다 나가기로 했다. 잘 모르지만 비싼 입장료에 맞게 DJ들은 꽤 수준이 있었던 것 같다.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그런 류의 음악을 전혀 모르는 나까지도 흥이 나게 했다. 간간히 잘게 잘린 종이를 공중에 쏘아 뿌려 흥을 돋우기도 하고 대형 화면에서는 화려한 영상이 내내 돌아가는 등 손님들이 지루해 하지 않게 여러모로 신경 쓰는 듯 했다. 어쨌든 입장료도 내고 들어 왔고 클럽의 분위기도 좋아 맥주 한 병씩을 손에 쥐고 시간을 좀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그닥 신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숙소 가서 그냥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을 흐느적 거린 우리는 오전 1시경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 잘까도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지나는 밤과 시간은 아쉽기만 했다. 그 즈음 상민이 형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야?
-이제 옮길꺼임. 올꺼임?
-응, 어디로 갈껀데?
-위치 보낼께요
-오케이. 지금 출발
-우리도 바로 출발
-ㅇㅇ
*(3.4) 2AM
사실 인간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제정신인 인간들이었다면 들어가서 자는 게 당연지사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피곤한 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편의점에서 기어이 에너지 음료도 한 병 사서 마셨고 부실한 저녁으로 지금까지 버틴 탓에 허기도 져 이것저것 집어 먹어 배까지 채웠다. 이렇게 급 재충전을 한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과 밤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다시 클럽으로 향했다.
우리가 찾아간 클럽은 호텔 안에 있었다. 호텔 안에 있는 클럽을 가본 적이 없는 우리는 위치가 여기가 긴가민가했고 입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호텔 입구 주위를 쭈뼛거리며 서성이다 몇몇 사람들이 들어가는 뒤를 따라 들어가니 그제야 클럽 간판과 입구가 보였다. 별게 다 반갑다며 우리도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갔던 클럽의 야박한 인심에 비해 이곳은 후했다. 100바트 입장료에 free drink도 무려 2개!
“야~ 여기 인심 좋네~!”
“아까 거기는 너무 했다.”
“난 2병 다 먹지도 못할 것 같은데?”
“남으면 나 줘!”
“어, 일단 열심히 먹어 보고. ㅋㅋ”
후한 인심에 흡족해 하며 진동의 근원지로 빨려 들어갔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분위기가 주는 설레임과 흥분감을 느끼며 들어간 곳은 아까의 클럽보다 조금 더 어두웠지만 마찬가지로 춤을 추기 위한 스테이지는 없었고 겨우 무릎 정도 높이의 테이블이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다. 역시나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먼저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었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재미와 어색함, 피로와 취기가 범벅이 된 몸으로 공감하기 힘든 음악을 공허히 뒤좇았다.
어둠을 진동시키는 음악과 그 속에서 큰 움직임 없이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무표정하고 어떤 이는 언짢아 보이기도 한다. 조금 뒤 상민이형이 도착했다. 셋이 모여 음악을 듣기보다는 분위기를 구경하며 비스듬한 경사가 있는 난간에 기대어 시간을 좀 보낸다 싶었는데 갑자기 실내가 화악 밝아졌다.
“엥? 머야? 이거 머야?”
“머야? 끝난 거야?”
“그런 거 같은데?”
“진짜가?”
오전 3시 영업이 종료되었다.
“벌써? 네 시까지 아니었어?” 오로지 블로그의 정보에 의존하는 우리의 예상과 다른 조기 종료에 당황했다.
“머야~~아직 쿠폰도 한 장 남았는데...아~~~~ 아까워~~~ 열심히 마실걸.” 입장할 때 받은 음료 교환 쿠폰 2장 중 한 장이 아직 내 주머니에 남아있었다. 야심차게 마신 에너지 드링크와 허기를 달래려 먹은 소세지들의 보람도 헛되이(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힘이 솟지는 않았지만) 클럽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 요새 빨리 닫나봐. ㅋㅋㅋㅋ”
“들어가자. ㅋㅋㅋㅋ”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고 가자.” 바로 옆의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다.
“역시 한밤중엔 아이스크림이지.” 편의점 앞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는데 한 남자가 물끄러미 우리를 보더니 전단지 한 장을 내밀었다. 빨간 바탕에 선정적인 사진이 실려 있는 전단지다.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충 보니 성인 안마 시술소 머 그런 류의 전단지 인 듯했다. 무심히 손을 젓고 우리는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밤 늦은 시간 고요하고 어두운 밤거리를 터벅터벅 걷노라면 비흡연자인 나도 담배 한 개비가 참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한다. 차들로 붐비던 도로 위도 한적해지고 가끔 고개 들고 있는 가로등과 어두운 골목길이 주는 운치와 어깨의 피로감은 한 손에 든 캔 맥주 하나 혹은 손가락 사이에서 살며시 연기를 피워대는 담배 한 대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간 이런 분위기엔 딱히 말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말을 참 많이 한다. 취해서 말을 하기도 하고 적막한 밤 나지막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부지런히 샤워를 마치고 더운 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무너져 내릴 듯한 피로를 느끼며 잠이 들었고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보니 재영이는 그 와중에도 먼가를 좀 하겠다며 노트북을 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