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주를 하다
어린 시절엔 어른이 되면 정말 재밌는 일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나이 어리다고 못하는 것도 없을테니 놀거리도 풍성해지고 흥미진진 한 것들이 많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어른도 아닌 대학생이 된 후부터 논다고 하면 술 일색이었다.
*1월 26일
첫 합주를 시작했다. 셋은 합정 근처의 조그마한 합주실에 모였다. 합주실이 작은 건 아니고 합주실에 있는 여러 방 중에 가장 작은 방에 모였다. 합주실에는 드럼세트와 키보드, 마이크 시스템과 기타와 베이스 앰프들이 준비되어 있다. 노래방에 가듯이 방의 크기나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대여료를 지불하고 빌려 쓰는데 전용 합주실을 마련해 놓는 직장인 밴드들도 간혹 있다. 현악기 연주자들은 주로 개인 악기를 준비해 오지만 가끔 나 같이 게으르고 악기들고 다니는 것도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합주실 자체에서 막 굴러 먹던 연습용 악기를 빌려주기도 한다. 간혹 열정적인 드럼 연주자들도 필요와 선호에 따라 자신들의 스네어나 페달을 따로 가져오기도 하는데 그 악기들의 무게와 부피를 감안하면 이는 상당한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 내 입장에선 아주 존경할 만한 멋진 모습으로 보인다.
우리 합주에는 나와 재영이가 각각 통기타와 카혼을 가져왔기 때문에 합주실에서 필요한 것은 마이크 세 개 뿐이었다. 이 정도면 사실 돈줘가며 합주실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데 딱히 모여서 기타치고 노래 부를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피치 못해 합주실을 빌려 모이기로 했던거다. 간혹 한강 다리 밑에서 반주기까지 동원하여 악기 연습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이 때는 너무 추웠다.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연습할 껀 아니니까 작은 합주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통기타와 카혼, 각자의 마이크를 셋팅하고 설레는 마음과 걱정스런 마음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했다.
“자자, 오늘 첫 합주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절망말자.”
“그래. 야 오늘은 그냥 몸 푼다 생각하고 하자.”
“어, 편하게 하자 편하게...”
가장 걱정은 ‘허접한 실력으로 기타와 카혼 두 악기만의 반주로 노래를 들을 만하게 할 수 있을까...’ 였다. 객관적으로 허접한 실력으로...요즘 티비를 보면 아니 티비를 보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혼자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만 봐도 맛깔난 연주와 좌중을 휘어잡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던데 우리는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니까... 많이 아니니까... 뻘쭘하지 않게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까가 참 고민이었다. 지금까지 풀밴드 반주로 Rock음악을 커버하는 합주만 줄창 하다가 노래도 노래지만 신나는 비트에 랩도 많이 들어가고, 다이나믹한 소리가 꽉 찬 풍부한 느낌의 곡들을 미니멀 라이프로 편곡 아닌 편곡을 하게 된 버전을 우리 스스로가 어색해하지 않고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느냐가 첫 시작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걱정이 좀 많았다.
“일단 팝송부터 해보자. 그게 좀 덜 민망할 듯”
“머부터 하까?”
“일단 형이 혼자 다 부르는 노래부터 해보자. 그게 좀 그나마 익숙하니까.”
“그래.”
“이 노래 좋던데 형. 잘 들어본 적 없었는데 이번에 들으니까 신나고 좋던데.”
“그래. 이 노래는 후렴구에 그 부분 딱 보고 고른 거다. 이 부분 같이 떼창 들어가면 분위기 살 껄?”
“그래 이거 분위기 띄우기에 좋을 것 같더라.”
“해보자 그럼.”
부지런히 기록을 남겼다. 사진과 영상들로 열심히 기록했다. 셋이 잘 나오게 핸드폰을 설치부터 하고 버스킹을 향한 그 첫걸음을 걸었다. 자~ 가자~~!! 탁!탁!탁!탁! 재영이의 박자에 맞춰 우당탕탕 쿵짝쿵짝! 일단은 시작했다.
“음.......나쁘지 않아.”(이런 쪽으로 비교적 긍정적인 상민이 형의 자평이었다.)
“그래 첫 연습 치고 나쁘진 않아. 좀 어색해서 그렇지...”(애써 긍정적으로 바라본 나의 자평이었다.)
“노래 자체가 흥이 있어서 좀 만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 같애.”(우리 중 가장 긍정적인 재영이의 자평이었다.)
“그래 코러스를 좀...어떻게...”
“가성으로 해볼까?”
“코러스를?”
“응, 너무 진성으로 해서 못 잡는 것 같기도 하고...”
“난 먼가 떼창 느낌을 내고 싶은데...”
“바꿔가면서 한 번 해봐.”
“일단 생각 없이 몇 번 더 해보자.”
“하다보면 느낌이 올 거야.”
“그래 시작부터 너무 고민하지 말고 생각없이 몇 번 해봐!”
그렇게 긴가민가하면서 연습을 이어갔다. 의심의 마음을 억지로 밀어내며 기대감을 버리고 시작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았고 의외로 할 만 하다는 자신감도 조금은 생겨갔다. 내가 듣던 원곡을 저 멀리로 잊어가고 가까운 빈약한 소리에 익숙해지려 애쓰며 ‘일단 시작하면 절반은 하는 거다.’라는 생각으로 우격우격 이어나갔다.
절규하며 욕하며 노래하고 기타 치고 연습하다 보니 어느 덧 시간이 흘렀다. 말 많은 우리가 중간 중간 잡담도 나누고 하다보면 두 시간은 짧았다. 나갈 시간이 됐으면 나가야 한다.
“야 근데 생각보다 할 만 한데?! 사실 난 오늘 합주하고 나면 다 포기 하고 걍 놀러나 가자. 이런 마음 들 줄 알았거든. 근데 생각보다 잘 나오는데?! 재미도 있고. 너무 기대치가 낮아서 그런가?” 형의 말이다.
“그래. 나도 걱정보다는 잘 나오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마음의 준비를 꽤 하고 왔는데 폭망은 아니네.” 나도 동감했다.
“아직 내가 바빠서 집중을 못해서 그런데 좀 더 연습하면 더 좋아질 거야.” 재영이가 반성했다.
“그래 내가 노래만 좀 더 잘 하면 훨씬 나아질 것 같다.” 나도 반성하고
“그래 점점 더 나아질 거야.” 형이 응원했다.
주섬주섬 악기를 챙기며 첫 합주에 대한 소감을 한 마디씩 했다. 종합해보면 생각보다 할만하겠다는 긍정적인 마음!
“야 합주비 2만원이네. 가위바위보 하자. 어떡 할래 진사람 만원에 나머지 오천원씩 할까 아님 이긴 사람 빼고 나머지 두 사람이 만원씩 할까??”
“이긴 사람 빼는 걸로 해.”
“오호~~좋아. 박진감 있어.”
“이게 남자의 승부지.”
“가위바위보 아~~”
“가위바위보 아~~”
“가위바위보 아~~먼데~~~”
“가위바위보 아~~~”
합주 때 안 맞던 마음들이 쓸떼없이 이런데서 잘 맞았다. 같은 생각들을 혹은 너무 다른 생각들을 한 까닭에 수차례를 거듭한 뒤에야 재영이의 승리로 결판이 났다.
“와 이렇게 이득을 보네.”
합주비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추웠다. 이번 겨울은 유독 추운 듯했다. 지긋지긋하게 기침과 몸살을 달고 지냈다. 진심 더운 나라로의 이민을 생각 할 정도로 힘들었고 고달팠다. 유달리 날씨가 혹독한 건지 아니면 나이탓인지...
*1월 31일
두 번째 합주를 했다. 다들 일상이 바쁜 탓에 연습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연습인 만큼 첫 연습 때보다 합주 분량도 많아지고 기대감도 커졌다.
돌이켜보면 첫 연습 때부터 마지막 연습 때까지 우리 셋이 제 시간에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는 꼭 한명씩 늦었다. 누구 하나 할 거 없이 돌아가면서 늦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지적하지도 않았고 누구 하나 늦으면 그저 늦는 구나 했다. 난 우리 사이의 이런 점이 괜히 서로에 대한 믿음과 너그러움 같아 보여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연습은 문자 그대로 엉망이었다. 지난 연습에 비해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늘어난 분량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연주와 노래 모두가 엉클어진 듯 했다. 나의 조급함이 만든 지나친 자기 검열에 의한 느낌이었을까 싶어 별 말 하진 않고 굳은 마음으로 억지로 억지로 연습 시간을 채웠지만 많이 실망스러웠다. 가끔 쓸떼없는 걱정을 만들어서 까지 하는 성격인 나는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에 연습할 시간도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급해지고 크게 걱정이 밀려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런 느낌은 모두가 공감하지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합주 시간을 다 채우고 서로에 대한 매가리 없는 응원을 마지막으로 연습실을 나왔다. 매가리 없는 와중에도 연습실 대여비는 칼 같은 가위바위보 승부를 가렸고 매가리 없이 펼쳐 내민 보자기로 내가 승리했다. 어쨌든 가위바위보 이긴 거에 대한 기분은 좋았다.
심란한 마음으로 커피숍에 모여 앉아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원래 두 번째 연습때가 제일 별루야.’ ‘첫 연습 때문에 너무 기대해서 그래.’ 등등의 말들로 위안과 응원을 해댔다. 그랬나 보다. 나만 느낀 건 아니었나 보다. 생각보다 괜찮았던 의외로 잘 나왔던 지난 연습 때문에 다들 이번 연습에 의외로 기대감이 컸나보다. 독한 마음으로 연습해서 다음 연습 때는 잘 해보자는 내용으로 마무리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그래 경사면을 오르듯 걸음마다 상승하는 게 아니라 길이가 긴 계단 면을 오르듯 상승과 정체기의 반복이 성장 과정이라고 누가 그랬던 게 생각났다.
“와 진짜 어떡하지. 이런 식이면 못하겠는데 형.” 모든 마음에도 불구하고 한탄스러운 마음이 깊어 같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는 상민이 형에게 내가 말했다.
“야 너무 걱정마. 이제 두 번째 연습이잖아.”
“근데 오늘 너무 심했다. 위기감과 불안감이 덮쳐온다 진짜...못하는 건 아니겠지?”
“먼 소리야? 무조건 할 거야. 정 안되면 MR깔고 노래라도 한다. 무조건 해야 돼.”
“하.....................그래 좋아. 그런 각오 좋아. 연습 빡세게 좀 해서 다시 봅시다.”
“그래, 걱정 말고 연습해서 보자.”
“네. 들어가요 형.”
*2년 6일
앞서 이용하던 연습실의 제일 싼 방을 빌리지 못해 대체 할 만 한 싼 방을 찾던 중 연남동 어딘가에 위치한 녹음 스튜디오의 작은 방을 빌려 합주실로 이용하기로 했다. 녹음 스튜디오를 연습실로 사용하려니 녹음 스튜디오에 미안하긴 하지만 어차피 그 시간엔 놀려 먹을 공간이라면 머라도 하는 편이 낫지 했다. 가는 길에 건물 사이로 보이는 달을 흘낏흘낏 쳐다 본 탓도 있겠지만 좀처럼 길을 찾기가 힘들어 헤매다 보니 약속 시간에 늦었다. 오늘은 내가 늦는 구나.
스튜디오에 도착해 보니 녹음을 하러 온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멋있고 부러웠다. 나도 내 노래를 만들어서 녹음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지는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욕심만큼 가득하지 않은 열정과 열정을 이겨먹는 게으름 탓에 그저 그냥 그런 거 해봤으면 좋겠다 정도로 머물러 있었다.
녹음 전용실이라 그렇겠지만 방은 아주 좁았다. 남자 셋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준비를 했다. 진짜로 거의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느 때와 같은 수다 삼매경이 적당히 펼쳐 진 후 연습을 시작했다.
“차라리 높거나 몇 키 낮춰야겠는데...?”
“한 두 키 높여봐.”
“한 키 낮은 게 낫나?”
형이 맞추기 힘든 노래는 노래의 키를 바꾸려고도 해보았지만 노래의 느낌이 너무 달라지는 듯 하여 결국엔 익숙한 느낌을 따라 형이 원키를 따라가기로 했다. 역시 오리지날이 제일이다.
오늘의 연습이 끝났다. 지난 연습 때의 황망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어 크게 동요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베버의 법칙’이었던가? 어떠한 변화가 감지되기 위한 자극의 크기는 현재 자극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인생에도 반영 가능할 것 같은 과학 시간에 배웠던 법칙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난 이과 출신이다. 고딩 때 무려 수2와 물리2를 공부한...ㅠㅠ)아무튼 이런 법칙이 생각났다. 썩 만족스러운 연습이 아니었음에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연습을 마쳤다. 그냥 무난해보였다. 무난한 게 최고다. 자꾸 생각해보니 다소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일단은 내가 노래할 때 음을 잘 잡는 것부터 해야 했다. 맞아, 그랬다.
*2월 13일
시간은 흐르고 흘러 네 번째 합주날이다. 태국으로 출발까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주 정도 후에 출발이다. 떠날 생각에 설레기는 했지만 동시에 긴장감도 커져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몇 번 남지 않은 연습. 모인 셋 중에 나만 마음이 급한 것 같았다. 원래가 여유가 있는 성격인 재영이와 딱히 별 걱정하지 않아 보이는 상민이형을 보고 있자니 힘이 나긴 커녕 너무 느긋해 보여 답답했다. 하지만 말은 안 해도 모두가 나랑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 급하게 생각해서 될껀 없지. 다 믿고 가는거지.
마음이 급하건 말건 우리는 으레 계획했던 시간보다 30분정도 지나서 연습을 시작한다. 다 모이는 데도 10분정도 더 걸리고 느릿느릿 이야기를 나눠가며 마이크와 악기를 세팅하고 연습 영상 촬영을 한다고 앵글을 맞춰 핸드폰을 거치대에 설치하고 나면 30분 정도가 지난다. 사실 남자 세 명이지만 셋 다 왠만한 수다쟁이 못지않게 말이 많다. 버스킹 보다는 만담쇼를 준비했어야 하나? 술 한 모금 없이도 세 시간정도는 가볍게 털 수 있는 사나이들이다. 언젠가 밤늦은 시각에 클럽에 가기고 지쳐 커피숍에 가서 커피 한 잔씩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집에 간 적도 있다. 정말 대단한 수다쟁이들이 모였다 싶었다.
연습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패턴이 있어 익숙하게 연습을 시작했다. 재영이가 혼자 노래 부르기로 한 두 곡들로 시작한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노래와 연주에 안정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지만...아니면 듣는 내가 거기에 익숙해 져서 그런지도...
“형이 중간 중간에 코러스 좀 들어와 주고 탬버린 정도만 들어와도 훨씬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 탬버린 구해볼게 내가.” 당장 다음 연습때 가져올 것처럼 몇 번이나 자신 있게 얘기한 부분이지만 아직 준비하지 않은 형의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마트에 주차해 놓은 차를 연습실 근처로 옮겨오면서 탬버린을 사오겠노라며 겸사해서 잠깐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사실은 주차 시간 오바로 주차비가 나올 것을 염려한 처사이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30분가량 지나(이렇게 또 연습시간이 날아갔다.) 돌아온 형의 손에는 아주 귀여운 가방이 하나 들려 있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음악시간 준비물 같은 노란색 가방 안에 탬버린, 캐스터네츠와 트라이앵클이 들어 있었다.
“하하핫!! 형 그 가방 메고 치세요. 완전 귀여운데 그거. 아하하핫”
“완전 사랑스럽네. 아~~딱이다! 노란색으로 모자도 하나 쓰면 좋겠네 ㅋㅋㅋ”
“악기 많네! 보컬도 손 놀리지 말고 이것저것 흔들어 봐봐. 하하핫”
생각지도 못한 귀여운 악기들을 함께 버무려 연습을 시작했다. 탬버린의 찰랑거리는 소리와 캐스터네츠의 딱딱거리는 소리만 더해졌음에도 훨씬 소리가 다채롭게 들려서 좋았다. 역시 소리의 모임이란 이렇게 즐거운 것이다. 다만 탬버린의 날개가 빈약해 차르르~한 맛이 좀 떨어지는 게 아쉬웠다. 상민이 형이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다루는 것이 처음이라 어색해했지만 그래도 노래가 휑한 느낌이 훨씬 덜해져서 다들 만족했다.
“내가 이거 열심히 연습해올게.” 탬버린이 잘 어울리는 형이 얘기했다.
“네. 훨씬 좋네. 많이 채워주는 느낌이 나니까 연주 부담도 덜하고 억지로 채우려고 오바 안하게 되고 훨씬 신나고 한결 수월하네.”
“좋아좋아. 분위기 좋아. 할만해 할만해.”
진작 들여놓았으면 더 좋았을 작은 악기들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확 피어났다.
늘 가던 카페로 가서 앉았다. 모이면 할 말은 많았다. 대부분은 쓸떼없는 수다에 불과한 얘기지만 나름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 또 명분이 되어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남자 셋이 카페로 들어 가게 된다. 셋이서는 술집으로는 잘 안 간다.
떠날 날짜가 다가오면서 생각해볼 우선 과제는 악기를 직접 가지고 갈 것이냐 현지에서 조달할 것이냐 였다. 마이크 같은 작은 것들이야 가방에 넣어 간다고 하지만 기타와 카혼은 추가 수화물로 해야 할 것이었다. 우리의 형편과 경제 관념에 맞게 저가 항공을 타고 가는 탓에 추가 수화물 비용이 꽤나 비싸 왕복 수화물 비용을 지불하게 되면 현지에서 저렴한 악기를 사는 것 보다 비쌀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는 건 또 그렇고 현지에서 악기 대여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방콕에는 라이브바도 많고 종종 인터넷에서 버스킹 하는 영상도 많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악기점들이 활성화 되어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처럼 저렴하게 악기를 빌릴 수 있는 악기 대여점이 여러 군데 있을 거라고 우리끼리 결론을 냈다.
발이 넓고 전 세계에 지인들이 분포되어 있는 상민이 형이 방콕에 있는 지인들에게 악기 대여점에 대해 문의를 부탁했다. 지인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심지어 현지 악기 대여점 직원과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연결을 해줬다. 진짜 신기했다.
“야 얘가 방콕 악기 대여점 직원이래. 한번 물어보자.”
“오 좋아 좋아.”
“일단 우리가 머가 필요하지?”
“기타랑 카혼이랑 앰프...”
“마이크는 4개?”
이왕 빌리는 거 죄다 현지에서 빌리기로 했다.
“기타가 잭이 연결되는 걸로 하면 마이크 3개면 되죠. 기타 마이킹을 안 해도 되니까.”
“그리고 나랑 재영이는 마이크 스탠드도 있어야 돼요.”
“간단한 건 들고갈까? 자잘하게 많이 필요하네.”
앰프에 연결되는 기타와 카혼과 앰프, 마이크 3개와 2개의 마이크 스탠드를 죄다 대여해야했다. 그렇게 문의하니 15000밧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얼마야?.....머?거의 50만원인데? ㅋㅋㅋㅋㅋ” 의외의 가격에 웃음이 낫다.
“이 새끼 완전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야? 외국인이라고 일단 막 던지는 것 같은데?”
국내 대여비랑 비교해서 터무니 없이 비싸 보여 웃음이 났다.
“비싸다고 좀 깎아달라고 해봐요.”
“예산이 얼마냐고 물어보는데?”
“예산을 말하진 말고 일단 깎아달라고 해봐요.”
10000밧으로 가격이 내려갔다.
“머야 이거. 한 번에 확 내려가네. ㅋㅋㅋㅋ 이 봐, 이거 일단 던졌네. 외국인이라고 하니까 얘들이 일단 던지는 거야.”
“일단 친구들이랑 상의 해본다고 했어.”
그러자 9000밧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머야 이거. ㅋㅋㅋㅋ”
“자꾸 예산을 물어보네.”
“먼 자꾸 예산 타령이야. 일단 다시 연락 주겠다고 하고 끊읍시다.”
그렇게 일단 현지 상인과 대화를 마쳤다.
“머지? 저쪽 시세가 저 정도 인가?너무 쎈데...”
“최대 얼마까지 생각해?”
“전 하루에 3만원 정도 생각했는데 3일해서 9만원내지 10만원.”
“일단 우리가 어느 정도 예산을 생각하고 쟤들이랑 쇼부치는 게 나을 것 같애.”
“그래 3만원은 너무 적은 것 같고 4만원....5만원?!”
“5만원. 3일해서 15만원?”
“그래 15만원 적당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정도 빌리려면 들긴 할 거야. 사실 우리나라에서 빌려본 적 없어서 모르지만.”
“자잘한 것들은 챙겨갈까? 마이크랑 잭. 이런 것들은...왠지 하나하나마다 돈 달라 그러면 얼마 안 되도 좀 짜증날 것 같은데.”
“그래 일단 각자 있는 거 있으면 가져 와보자. 마이크도 있으면 구해서 가져가 보고...”
“무겁거나 부피가 크지 않으면 있는 것 들은 다 챙겨 가보는 걸로 하자.”
발달된 문명의 혜택으로 실시간으로 외국 현지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탄했다. 어쨌건 가장 기본적인 문제였던 악기 대여점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대답은 찾은 것에 만족하며 집으로 향했다.
*2월 20일
설 연휴를 보내고 다시 모였다. 오늘을 포함해서 남은 합주는 이제 세 번이었다. 연습에 박차를 가하는 의미로 오늘부터 연습시간을 3시간으로 늘였다. 재깍재깍 모여서 수다 시간만 줄여도 30분은 더 연습할 수 있었지만 우린 연습시간을 늘이는 방법을 택했다.
저녁을 못 먹었다며 상민이 형이 피자를 사왔다. 파인애플이 많이 들어간 하와이안 피자. 역시 상민이 형은 단 걸 좋아하는 게 다시 한 번 확실해 졌다. 연습실 바닥에 앉아 콜라와 피자를 먹으며 또 한동안 수다를 떨고 있자니 대학 시절 동아리 방에 모여 놀던 생각이 나며 어려지는 기분이 들어 평소보다 더 활기차게 수다를 떨었다.
“연습 많이 했지? 이젠 가사도 다 외울 때 됐다.”
“나 진짜 많이 들었다. 귀에 인이 박힌 다는 게 먼지 알 것 같다. 진짜 그 어느 때 보다 최고로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다 외운겨?”
“그 정도로 열심히 했다는 거지.”
“인생 결과다.ㅋㅋ”
“그건 그렇지.”
“연습만이 살 길이다.”
“죽으러 가는 거 아니잖아.ㅋㅋㅋ”
“개기냐?ㅋㅋ”
“비장하게 하자. ㅋㅋㅋ”
목표는 열정을 낳고 열정은 에너지를 가진다. 단어에 에너지를 상징하는 열이 들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에너지로 인한 움직임은 스스로를 젊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다.
든든한 배로 연습을 시작했다. 배부름이 주는 여유로움 때문인지 연습은 순조로웠고 어려워하던 랩 부분을 재영이가 무난하게 넘어가기도 했으며 상민이 형의 탬버린과 캐스터네츠도 자연스러워졌다. 둘의 말에 의하면 나의 코러스를 비롯하여 노래도 처음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실제 공연에서 노래의 순서를 정해 순서대로 연습을 했다. 버스킹은 사실 이런 정해진 틀 없이 상황에 따른 관객의 분위기와 호응에 따라 이리저리 다양하게 오가며 부르는 것이 맛이고 멋이겠지만(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 같았지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준비해서 떠나는 우리의 버스킹에 어느 정도의 틀은 필요했다. 순조로웠다. 각자 기량의 차이로 노래의 수준과 만족도가 달라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다소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3시간도 훌쩍 지나갔다. 계획했던 연습을 마치니 10분이 채 남지 않았다.
연습이 끝나고 역시나 늘 가던 카페에 모여 앉아 공연에서 할 만한 재밌는 이벤트들이 더 없을지 생각했다. 전부터 나온 얘기지만 촬영하고 있는 영상과 사진들을 잘 편집해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려보자는 얘기와 가기 전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공연할 때 판때기에라도 적어 앞에 세워 놓으면 좀 있어 보이니까 부랴부랴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연습도 잘 됐겠다 떠날 날짜도 다가오자 신나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쏟아냈다.
“영상은 일단 만들어 두면 나중에라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테니까 만들자.”
“그래 두고두고 남겠다 그건.”
“페이스북도 하나 해놓으면 좋아. 지금 찍는 영상이나 사진도 바로 올려놔도 좋고.”
“SNS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 답군.”
“굉장한데? 그런 것 까지 생각하다니 박수가 절로 나옴.”
“근데 보통 성실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뜻은 너무 가상한데 이거 과연 마무리 될까?” 매사에 부정적인 내가 얘기했고
“하면 되지!” 뭐든 적극적인 재영이가 얘기했다.
맞다! 어려울 건 없다. 하면 된다 하면. 하면 되긴 하는데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풍성한 아이디어들을 나누고 있자니 뿌듯했다. 다들 의기투합하여 열정을 보여주니 감격 그 비슷한 기분마저 들었다. ‘역시 동지들이 있어서 좋구나. 여러 사람이 모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나오고 행동력이 올라가는 구나. 역시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야 되는 구나.’ 라는 깨달음이라고 하긴 거창하지만 그 비슷한 느낌이 퐁퐁 샘솟았다.
*2월 23일
여섯 번째 합주를 했다. 무난한 합주와 순조로운 진행. 우리 실력에서 더 나올 껀 없겠다 싶은 완성감. 가서 심한 망신은 안 당하겠다는 안도감. 우리 스스로의 연주와 노래에 대한 익숙함. 그 익숙함이 주는 오만함. 오만함이 가져온 편안함과 안정감. 모든 것이 안정적이다 라고 느껴질 때의 안도감과 안도감이 주는 행복감. 멤버들의 모임과 대화가, 연주와 노래가 그리고 부끄러운 굳은 살이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일찍 준비를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긴 했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는 민첩함이 돋보이는 우리의 준비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본질적으로 우리 만족과 재미를 위해 떠나는 버스킹 여행이니 만큼 우리가 한껏 즐길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뭐가 더 없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했다. 알바생이 우릴 알아보지 않을까 할 정도로 꾸준히 찾아간 카페에서 작전 회의를 했다. 말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아직 누구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일들이 비로소 진행됐다. 재영이가 즉석에서 밴드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고 각자 소개글을 올리기로 했다.
*2월 27일
출발하기 바로 전날이자 마지막 연습이다. 마지막 허들을 넘는 마음으로 마지막 리허설이다 생각하고 연습을 진행했다. 준비한 곡의 순서대로 3시간을 꽉꽉 채워 연습을 마쳤다. 뿌듯한 연습 시간이다. 그동안 쌓였던 합주실 마일리지로 한시간 연습실 대여비를 계산한 덕에 뜻하지 않게 승부의 시간이 왔다. 이긴 사람은 면제 나머지는 만원씩!! 모두 최선을 다해 싸웠고 오늘은 상민이 형이 이겼다.
“이야~~우리 너무 사이좋은 거 아니야??”
“그니까. 마치 짠 듯이 사이좋게 나눠 먹네.”
“진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는데 그림 짜증나게 잘 나왔네.”
“야~ 나 오늘 못 먹었으면 울 뻔했다.” 상민이 형의 말에 모두 웃었다.
“그동안 수고 했어 형. 재영이도.” 길을 걸으며 말했다. 마지막 연습이라 생각하니 괜히 뭉클하고 뿌듯했다.
“사실 이제 시작이지.”
“맞아. 이제 시작이지.”
“와 시간 진짜 빨리 간다. 처음 얘기 나오고 몇 달이나 남아서 언제가나 했는데...후딱가네.”
“진짜 순식간이다. 벌써 내일이야.”
그 짧은 사이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처음 얘기가 나오고 석 달정도 되는 시간. 그 사이 불꽃을 피우듯 했던 연습시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이 알 수 없는 감흥으로 새삼스러웠다. 당장 내일 밤이 출발인데 아직까지도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일 공항에서 봅시다들.”
“그래 들어가. 내일 보자.”
“짐 잘 챙겨서 보자.”
나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