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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Nov 21.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앗! 국제 면허증을 놓고 왔다.

 다국적 다인종 다섯이서 시작해서 한 민족으로 셋이 된 우리는 부둣가를 지나는 길에 원맨밴드 공연을 하려고 하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혼자서 밴드 공연이라니...그게 돼? 대체 어떻게 혼자서 그 악기들을 다 연주 한다는 걸까하는 큰 의심과 더불어 혼자서 다 연주가 된다면 그 음악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으로 그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 쪽으로 다가갔다.

 연주에 앞서 친절하게도 그는 어떤식으로 악기를 개조했는지, 그 결과 이렇게 손과 발에 줄을 연결하여 기타, 베이스, 드럼을 모두 연주하며 노래할 수 있다고  불가능해 보이는 퍼포먼스를 실현한 방법을 설명했다.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도 간단히 보여주었다. 와 진기명기 수준이다. 악기를 개조해서 혼자서 동시에 여러 악기를 연주 할 수 있게 만든 아이디어가 기가 막혔다. 아무리 그래도 어려워 보이는데 하며 약간 흥분된 마음으로 연주를 기다렸지만 정작 연주를 보여 주지는 않았고 저녁에 자기가 하는 공연을 보러 오라고 홍보만 했다. ‘아 역시 자본주의의 나라지. 그래. 그리 쉽게 보여줄 수는 없을 거야.’ 라고 인정하며 발길을 돌렸고 이때 쯤 간절히도 생각나는 커피를 마시러 눈 앞에 보이는 시애틀에 1호점이 있다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인 그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딴 데서 먹으면 역시 또 거기냐 라고 할 법한데 여기에서는 나름대로 현지 특산물이다.


 좋은 여행도 피곤함은 어쩔 수 없었지만 시원한 커피숍에 들어와 의자에 앉아 아이스 라떼 한잔을 마시는 것만 으로도 에너지가 다시 생기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밤 9시가 넘도록 해가 훤했다. 아직 오후 4시정도였다. 부지런히 움직였고 충분히 여행한 것 같았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다며 파이팅 넘치게 다음 여정을 계획했다. 이쁘다고 소문이 난 러시안 힐과 성소수자들의 거리라고 하는 카스트로 거리로 가기로 했다. 1시간 정도 커피와 함께 쉰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트램을 타고 이동하여 러시안힐에 도착했다.

     

 사람만 사진발이 있는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여기 러시안힐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사진을 위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파른 언덕에 꼬불꼬불 휘어진 길이 재밌기도 하고 꽃밭도 어디 못지않게 예뻤지만 사진으로 보며 생각한 것 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고 게다가 약간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억지로 과한 화장을 한 사람처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거기에 충실하게 계획해서 만든 느낌이었다. 그래도 왔으니 거기다 일단은 유명하니까 재밌게 사진을 찍었다. 차를 타고 그 꼬불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재밌어 보이긴 했지만 우린 남들 하는 거 구경하는 것으로 그쳤다.     


 러시안힐을 스치듯 지나 우리는 버스를 타고 성소수자들의 거리인 카스트로 거리로 향했다. 버스 실내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버스를 타는 기분이 되게 좋았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를 맞아 준건 CASTRO라고 써있는 커다란 간판과 무지개 모양의 깃발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커다란 간판이 미국스러우면서 멋져 보였고 잘 알지는 못하지만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이 예뻐 보였다. 거리를 걸으며 주위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인 기분이 물씬 나는 동네였다. 현이가 근처 가볼만한 곳을 검색하더니 민망한 쿠키가 판매되고 있다는 쿠키집으로 가보자고 했다.


 쿠키집이지만 화려한 색상의 야한 속옷들도 걸려있고 남근 모양의 쿠키가 판매되고 있었지만 그 동안 제주도에 있는 러브랜드 류의 박물관과 전시장을 다녀 본 나인터라 당황하거나 부끄러워 하진 않았다. 다만 미국사람들의...이하 생략.^^;;     


 와 이것이 바로 미국 문화의 수준인가 싶은 쿠키집을 나와 걸으며 무지개 깃발 보고 마냥 이쁘다 하면서 또 무지개 횡단보도를 찾아 갔다. 횡단보도를 무지개 빛깔로 그려놓은 데에는 유래가 있을 테지만 우리 일행은 그저 이쁘다 생각만 했지 어떤 의미와 상징으로 그렇게 그려놓은 건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조만간 이곳에서 세계적인 동성애자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횡단보도에서 몇장의 사진을 찍고 기념품 가게로 갔다.  특이하고 재밌는 기념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보는 것으로 만족했고 현이와 성연이는 한참을 고르더니 엽서 등을 몇 개 사서 나오는 것 같았다. 길에서 몇몇의 한국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정말 독특한 동네를 구경했다 하는 소회를 뒤로 하고 다시 숙소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 사이 내일 요세미티로 동행하기로 했던 나머지 일행들이 숙소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고픈 우릴 셋은 숙소로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컵라면을 하나씩 사서 들어 갔다.


 다음날 요세미티로 함께 갈 사람들과 밤 11시에 호스텔 식당에서 모이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간단히 짐을 정리한 후 시간을 맞춰 5층으로 올라갔다. 나를 제외한 4명은 벌써부터 다 모여 있었다. 내일부터 1박 2일을 함께 할 일행들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무슨 마음에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가끔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순간에 쓸떼없이 센 척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세 보이려고 무슨 액션을 취하지는 않는데 약간 그런 마음은 든다. 새로 만난 일행은 지혜와 동갑인 25살의 아주 조용한 성격일 것 같은 민정이, 26살의 듬직하고 수더분해 보이는 인상의 연호였다. 연호와 민정이, 지혜 셋은 오늘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보고 왔다고 했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나라서 생각도 안 해본 부분이지만 미국에 와서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겠다 생각했다. 실제로 그들은 꽤 신나보였다. 다섯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함께할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25살의 조용한 목소리를 가진 민정이 빼고는 다들 한마디씩 했고 내일 아침 8시에 모여 출발하기로 했다.


<셋째날>     

 난 원래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편이지만 이날은 조식을 먹을 시간도 없이 모이기로 한 로비로 나갔다. 요세미티 국립 공원으로 가서 1박을 하고 다시 이 호스텔로 돌아와서 1박을 하게 될 예정이어서 호스텔에 짐을 보관해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지만 하루를 꼬박 보관해 주지는 않는다고 해서 결국 모두의 짐을 싣고 출발해야 했다. 가끔 여성 여행자들이 대한 캐리어를 끌고 다는 걸 보면 와 저 큰걸 저 몸으로 어떻게 끌고 다니지... 보통 아니구라 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우리 일행 중 한 아이도 그랬다. 자기 허리까지 오는 큰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끌 때야 좋지만 종종 들고 다녀야할 때가 있을 텐데 자기 몸보다 큰 저걸 다 들어 올린다 생각하면 좀 놀라웠다.

    

 5명이 모여 예약한 렌트카를 받으러 다행히 숙소 근처에 있는 렌트카 사무실로 갔다. 출국 전에 운전은 나와 연호가 하기로 합의해서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에 가서 7만원인가 하는 거금을 주고 국제면허증까지 발급해 갔다. 렌트카 운전자 등록을 하기 위해 그 비싼 국제 면허증을 내밀었지만 한국에서 쓰는 면허증도 보여 달란다. 왜? 한국에서 쓰는 걸 미국에서 왜? 잠시 뒤로 물러나 의아해 하고 있는 나에게 무슨일이냐며 다가온 지혜가 내 말을 듣고 면허증을 열어 보더니 어깨를 탁 치며 첫번째 면 첫번째 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뿔사!! 나는 국제면허증을 발급 받았으니 당연히 이것만 있으면 될 줄 알고 국내면허증은 안 가져 왔는데(당연히 이럴려고 돈을 7만원이나 내면서 발급 받은 거라 생각했다.) 국내 면허증도 필요하다고 거기 있었다. '한 번 열어서 대충이라도 읽어 볼껄... 망했다! 어쩌지...’ 면허증에 붙은 사진이나 봤던 나를 안타까워하며 당황해하고 무안해하고 있는데 현이와 나이 어린 연호는 나보다 침착하고 대범하게 연호를 주 운전자로 등록하고 캐나다에서부터 국제면허증을 갖고 있었던 현이를 부 운전자로 등록하여 렌트카 인수를 했다. 내 할 일을 미룬 것 같아 다소 민망했지만 보조석에 앉아 열심히 네비게이션이 되는 것으로 미안함을 달래기로 했다.


 주차장으로 안내를 받아 차에 다섯 명의 짐을 꾸겨가며 싣고 부드럽게 출발했다. 복잡한 도심의 도로를 지나며 연호가 꽤나 당혹스러워하며 힘들어 했지만(연호가 운전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와 내가 했으면 확실히 사고 한번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운전 안하게 된 게 모두에게 잘 된 일이었다.) 무난히 도심을 빠져나가 무사히 고속도로에 들어섰고 미대륙의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또 감회가 참 새로웠다. 차로 5시간 정도의 거리. 벅적벅적한 도심의 분위기를 뒤로 하고 우리는 이제 요세미티라는 거대한 자연이 기다리는 곳으로 갈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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