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집아들 Dec 05. 2021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LA로...

 ‘차에서 졸면 벌금 1달러!’ 라고까지 얘기했지만 온종일 숲 속을 발발거리며 돌아다니고 나니 나도 너무너무 피곤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지혜는 ‘그깟 돈 몇 푼쯤이야’라는 듯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에 빠졌고 민정이는 ‘내 피 같은 돈을...’이란 듯이 눈에 핏대 세워가며 입꼬리는 올리고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모르는 척 하고 보기 안타까워(사실 난 조수석에 앉아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기는 없던 걸로 할테니 편히 자라로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잠드는 모습에 나머지 셋은 웃었다.    

 

 가는 길에 휴게소도 없고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중간에 마을로 빠져야했던 덕에 우린 한 번도 쉬지 않고 곧장 샌프란시스코의 우리가 처음 모였던 호스텔로 가기로 했다. 평소에 화장실에 자주 가는 나는 해서 물 마시는 것도 참아가며 버텼다.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돌아오는 길엔 우리의 대화보다는 음악소리가 차 안을 메웠다. 한 숨 자고 일어난 지혜가 이런저런 노래를 계속 틀어주었다. 나는 끝까지 나름대로 네비게이션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요세미티로 갈 때와는 사뭇 다른 다소 지루한 시간을 끝으로 무사히 렌트카를 반납하는 주차장에 도착해 주차를 했다. 사고 없이 무사히 긴 시간 운전을 해준 연호에게 고마웠다. 렌트카 사무소 영업시간이 끝나서 다음날 아침에 반납 절차를 받기로 하고 우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익숙한 호스텔로 다시 들어갔다.    

 

 각자의 방에 다시 짐을 풀고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는 한국을 떠나온 지 며칠이 되지 않았지만 일행 중의 몇 명은 한국을 떠나온 시간이 꽤 오래된 터라 저녁은 한국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엊그제 호스텔에서 만나 친해진 승연이도 함께 6명이서 한국 치킨집으로 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어두운 조명의 시끌벅적한 치킨집으로 들어간 우리는 몇 마리의 치킨과 생맥주에 다시 활기를 찾아 덩달아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식사를 했다. 미국에서 처음 마시는 생맥주. 지치고 메말라 있는 몸에 흘러 들어간 맥주는 곧장 혈관을 타고 스며 들어 내 몸속을 질주하고 세포들을 박동 시켰다. 몇 모금의 맥주에도 취기가 올랐다. 사실 난 한국에서도 치킨을 자주 먹지도 않았고 미국에서 먹는 한국 치킨이 반갑지도 특별히 더 맛있지도 않았지만 함께 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얼마 안되는 시간이지만 처음 발 디딘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만나 함께 다니며 찐한 거품 같은 정이 생긴 듯 했다. 그랬던 이들이 짧은 인연을 뒤로하고 내일이면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나간다. 누구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누구는 다른 어딘가로 떠나가며, 나는 로스앤젤레스로 여행을 이어갈 것이다. 인스턴트 정, 패스트 인간관계지만 함께 하는 동안은 더없는 친구이자 동행이었다. 정신없이 떠들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며칠간의 정을 바로 떼기가 아쉬워 우린 근처의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덕분에 혼자라면 무서워서 들어가 보지도 못했을 샌프란시스코의 펍을 구경했다. 영화에서 보던 그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펍은 밤의 우리를 매료시켰다. 미국의 도시와 펍이 주는 분위기와 여행자라는 신분의 가벼움, 언제 봤다고 그래도 의지가 되는 일행들이 있다는 약간의 안도감이 생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를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밤에 나를 둥실 띄워주었고 나는 가벼운 맥주 한잔으로 그 밤에 올라탔다.     


 펍을 나와 피곤한 현이는 먼저 들어가고 남은 다섯은 다시 기어코 골목에 숨어 있는 술집을 한 군데 찾아내어 한국에서 물 건너 온 n차 문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혼자였으면 아마 저녁 먹고 호스텔에 일찍 들어갔을 텐데 일행이 있던 덕에 밤늦게 까지 용감하게도 돌아다녔다.


 몸이 푹 들어가는 소파에 앉는 방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아주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카페 같은 분위기였다. 그 점잖은 분위기에 얼마 안가 밀어 두었던 피로와 고단함이 별안간 찾아 들며 급격히 졸음이 쏟아져 몸을 눌러 왔다. 그 무게를 견뎌낼 재간이 없어 주문한 병맥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하고 술집을 나왔다.    

 

 깊숙이 들어온 샌프란시스코의 밤, 골목에서 피어오르는 붉으스름한 연기의 매캐한 마리화나 향을 맡으며 불꺼진 도시를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처음 만나 사귀게 된 동행들과 서로 ‘그간 즐거웠네~ 반가웠네~ 또 보세~’ 인사를 나누고 부지런히 샤워를 마친 후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스위치를 껐다.                              


 LA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떠나는 아이들은 먼저 간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는 진심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마음으로 하는 약속인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한 번 만나자.’는 말을 인사치레로 서로 주고 받았다.     

 나와 지혜는 LA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지혜는 거기 살고 계시는 친척집으로 간다고 했다. 미국에 친척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여행기간이 길지 않아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길면 시간 아깝다는 생각과 나이를 생각해서 너무 피곤할 것 같으면 돈으로 바르자 라는 취지하에 차로 이동시간이 6시간 이상일 경우에는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면 멋진 해안 도로를 타고 간다던데... 좀 아쉬웠지만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친척집으로 가는 지혜와 같은 비행기라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오후 비행까지 시간이 좀 남아 승연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종종 갔었다는 공원에 셋이 가서 잠깐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승연이는 샌프란시스코에 온지 2주일 정도 되었지만 더 머무르기로 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엽서 문구에서 보던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말이 진심으로 묻어나는 아이였다.   

  

 공원 잔디밭에 문자 그대로 멋대로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니 생활에서 묻어나오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아무렇게나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니 낯섦이 지배적으로 다가왔다. 난 스스로가 항상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 그래야만 하는 사람. 항상 어디엔가 구속되어 있고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답답함을 느끼는 나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으로 떠나오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도 독보적인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나라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떠나오는 날 나는 그렇게나 좇던 자유 속으로 던져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깨달았다. 무형식, 무규칙으로 칠갑이 된 공원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나 자유로움이 만연한 이곳에서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마음속의 굴레를 만들고 지나간 일들이란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오히려 지나친 해방에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전혀 신경 쓰고 걱정할 거리가 없는 상태가 되어 가슴에 순풍이 드나드는 상태가 되니 오히려 내가 나를 가둘 거리를 만들어 냈다. ‘나는 완벽한 자유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은 아니구나!’ 라는 걸 깨달았고 오히려 ‘구속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상태를 즐기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지혜와 나 승연이 이렇게 셋은 걔 중 깨끗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사람 수가 적어진데다 아침이라 그런지 어젯밤 여럿이서 떠들며 이야기 할 때보다 좀 점잖은 이야기가 오갔다.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한 것들, 이리저리 겪었던 일들, 평소의 자신과 떠나온 자신과의 차이점등. 이야기 끝엔 결국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예 가십거리로 소재가 넘어갔지만 상쾌한 아침 공원의 평화로운 그림이었다.  

   

 공항으로 향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지혜는 또 자기 몸보다 더 큰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여행 온 뒤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왔다고 했던 승연이는 한동안 일행이 생겼다가 다시 혼자가 되려니 여간 서운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런 승연이의 배웅을 받으려 지혜와 난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갈 때부터 난관이었다. 자기 몸뚱이 보다 큰 캐리어를 짐으로 꽉 채워 왔는지 지혜는 계단을 만날 때마다 낑낑거렸다. 젠장, 그래도 며칠간 동행했던 사이인데 모른 척 내 갈 길만 갈 수 없어 내가 나서 도와줬고 이걸 끌고 다닐 생각을 어떻게 했지 싶을 정도로 남자인 내가 들어도 꽤 힘겨운 무게였다. ‘야! 니 어떻게 왔니?’ 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공항에 도착할 때 까지 몇 번이나 계단이 있었고 지혜도 미안했는지 에스컬레이터를 만나면 자기가 더 반가워하는 티를 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도착한 공항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점심으로 간단한 면 종류의 음식을 먹고 우린 비행기에 올랐다.      


작가의 이전글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