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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Jan 30.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미국 미아가 될 뻔한 시계를 구하다.

 뛰었다. 덮어 놓고 뛰었다. 죽어라고 뛰었다. 내 동생이 신혼여행 다녀오며 나에게 사 준 시계였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급박한 마음이 가슴에 휘몰아치니 자연스레 심장 박동이 강하고 빨라지는 것이 느껴지며 몸이 날쌔지는 것 같았다. 내 일생을 통틀어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 그렇게 온 힘을 다한 전력 질주를 일정 시간 이상 끈기있게 해본 적이 없었다. 오래지 않아 숨이 턱에 차고 몸이 무거워지며 전신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이 아파왔지만 멈추지 않고 이를 악물고 뛰었다.


 다행히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그 기사를 찾았고 “땡큐~ 땡큐 쏘 머치!”시계를 되찾은 즉시 바로 돌아 다시 뛰었다. 시간이 2분가량 밖에 남지 않았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에이 그냥 다음 차 타지 머...’ 이렇게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잡생각 집어치우고 그냥 있는 힘껏 달렸다. 바람처럼 재빠르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인파 속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숨이 턱에 찼지만 악으로 버티며 몸을 재촉했다. 이거 놓치면 오늘부터 일정이 완전 꼬인다. ‘진짜 큰일이다. 일정 꼬이기 싫다!’ 라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 달렸고 다행히 버스 시간안에 도착했다. 정말 그 짧은 시간에 온 몸의 전력을 다 짜낸 느낌이었다. 와 내 스스로가 대단해보였다. 거기까지 5분만에 갔다 왔구나...별거 아니지만 큰 일을 극복해 낸 느낌이 들면서 무언가 앞으로의 여정도 잘 해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과 자신감이 들었다.   

  

 생에 첫 후방추돌사고를 LA에서 겪고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됐건 우리는 짐칸에 짐을 넣고 우리의 자리에 앉았고 승연이는 얼음찜질 중이었으며 버스는 출발했다. 내 생에 가장 커다란 아침이었지 않았나 싶다. 버스가 출발한 후에도 우린 아침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아직까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식으로 전개가 될지에 대한 얘기를 한참 했다.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근처로 가서 진료를 한 번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미국 의료 보험이 안 되니 진료비가 솔찬히 나올텐데 그거 다 보상받을 수 있을까? 미국 병원비는 또 엄청 비싸다던데...그래도 일단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할 것 같은데...” 그 사이 승연이의 코는 약간 부어 오르기까지 했다.

 “계속 아파...”승연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면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가보자.”

 “미안해요. 내 코가 이래 되서...”별거 아닌 일에도 잘 미안해하는 승연이는 자기 잘못이 아니지만 괜히 나에게 번거로움을 주는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

 “그게 왜 니가 미안해 할 일이야? 일단 얼음찜질 계속 해보고 병원에 가보자. 설마 병원비 정도는 보상 해 주겠지.”      


 그 사이 얼음은 거의 다 녹아 얼음주머니는 약간 차가운 물주머니가 되어 있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내 얼굴을 향해 내려오는 탓에 점점 추워졌고 목이 아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리를 바꿔 주겠다는 승연이를 만류하고 들고 있던 옷을 목에 감고 모자를 써서 바람을 막아보려 했다. 어찌어찌 우리의 버스는 앞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두어시간을 달린 버스는 단층짜리의 마트가 있고 옆에 주유소가 붙어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휴게소 같은 곳에 25분간 정차 한다고 했다. 앉아만 있기에 좀이 쑤셨던 터라 잠시 몸도 풀고 구경도 할 겸 버스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탄 버스는 1층 뒷쪽에 화장실이 딸린 2층 버스였다. 버스에서 내려 밖으로 나온 우리는 미국 휴게소 구경도 하며 먹을 것을 좀 사기로 했다. 버스의 에어컨 바람이 강했던 것은 바깥이 그만큼 덥다는 반증일 것이다. 바깥은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불고 땀이 날 시간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한 강렬한 태양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마트에서 간단히 군것질거리를 사서 버스에 올라탔고 다시 라스베가스로 향했다. 휴게소에 들렀다가 다시 출발하고 나서는 어느 정도 주위가 익숙해진 까닭인지 주위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고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약간은 친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린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친구사이인 듯 한 미국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 두분이 우리 옆의 두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뒷자리에는 역시나 미국인으로 보이는 남자 5명이 앉아 그 여성 분들과 시작부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가고 있었고 중년 여성들은 반쯤 뒤로 돌아 앉은 자세로 이야기 삼매경이었다. 무슨 얘기를 저리 할까, 나도 영어가 좀 되면 같이 얘기도 하면서 가면 재미있겠다. 라는 아쉬움을 갖고 있던 차였다.     


 “카메라 뚜껑 어디 갔어?” 버스 복도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중년의 백인 부인이 나의 렌즈 뚜껑 없는 DSLR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잃어버렸어요.” 미국에 도착한 첫날 카메라를 메고 다니던 중 어딘가에 부딪혀 렌즈 뚜껑만 날려 버린 나는 대답했다.

 “뚜껑 없으면 빛이 계속 들어가서 렌즈에 안 좋아. 하나 사서 뚜껑 덮고 다녀.”

 “앗, 전혀 몰랐어요.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요.”

 “오 한국?” 이번엔 뒤 자리의 가운데 자리에 앉은 풍채 좋은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한국 가보셨어요?”

 “23살 때 한국에서 미공군으로 있었어.”

 “우와~ 정말요? 몇 년이나 계셨어요?”

 “6년 정도 있었어.”

 “한국 어디에 계셨었어요?”

 “음,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나.”


 난 몸을 약간 왼쪽으로 돌려 앉아 나는 6년이면 꽤 긴 시간이었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를 하려고 애썼고 그 아저씨도 꽤 많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영어가 짧아 다 알아 듣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열심히 듣고 대답하려 노력했지만 절반 이상은 알아 듣지 못했고 정말 통상적인 이야기 외에는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ㅠㅠ 옆에 있던 승연이가 거들어서 그나마 이리저리 얘기를 이어갔다. 뭔가 좀 더 활발하게 얘기해보고 싶었지만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사실 거의 거들 떠 보지도 않았던 내 영어회화에 대한 무관심에 아쉬워하며 더 이상 적절한 화젯거리를 찾지 못한채 우리의 컨버세이션은 저 멀리로 마무리가 되었고 난 다시 스르륵 앞을 보고 정좌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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