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메탈리카

by 쌀집아들

전날 밤엔 비가 많이 왔다. 비를 좋아하는 나로썬 언제든지 비가 오면 환영이었고 기분이 좋았다.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를 피해 처마 밑으로 달려가 하늘을 올려다 보며 비 내리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물론 급하게 움직여야 할 때만 아니라면 말이다.


어제 밤이 그랬다. 시내를 구경하다 눈에 띄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오던 길에 봐둔 테라스가 있는 바에서 해변 쪽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 하고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해야겠다 계획했다. 나는 계획을 잘 세우는 편이 아니지만 계획을 세운대로 잘 실행되지 않으면 기분이 많이 나빠진다.


저녁을 먹고 나오자 마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다 금새 굵어졌다. 근처에 있는 리조트의 처마로 들어가 숨었다. 괜찮았다. 운치 있었다. 적도의 소나기라…금방 그칠 꺼 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이내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았다. ‘지금 움직일까?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완전히 그치면 움직일까?’ 한동안 고민하다가 웬만하길래 길을 나섰다. 계획했던 테라스가 있는 분위기 좋아 보였던 바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이내 다시 빗줄기가 강해졌다. 뚫고 가려고 했으나 점점 더 굵어졌다. 앞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비를 피할 만한 곳이 있었다. 넓었다. 뛰었다.



폭우가 오듯이 비가 내렸다. 순식간에 도로에 물이 고이고 차 들이 지나가면 물 세례가 나기 시작했다. 비 내리는 소리가 시끄럽기까지 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그런지 발리 사람들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곳 사람들은 대부분이 담배를 핀다. 아주 자유롭게...식당에서 밥 먹다가도 피운다. 옆자리에 사람이 있던지 말던지...비를 피하며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담배를 입어 물었다. 금새 비 대피소는 너구리 굴이 되었다. 비를 피하려면 나의 폐를 내어주어야 할 판이었다. 옷은 말리면 금방이지만 신발이 젖는 게 싫어 버텼다. 비는 한참 동안을 계속 내렸다. 잦아 들 기미라곤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루해진 나는 그냥 뛰기로 했다. 사실 조금만 가면 되니까…


큰 결심을 하고 뛰었다. 첨벙 첨벙 거리며 바로 떠도 비가 들어가진 않을 텐데도 굳이 실 눈을 떠가며 비를 헤쳐 나갔다. 온 몸에 걸쳐 전반적으로 젖긴 했지만 바에 도착했다. 밴드가 연주하고 있었다. 메탈리카의 음악이다. 메탈리카는 영원한가 보다. 깡마른 체구의 기타리스트가 인상적이다. 가슴까지 머리를 길렀다. 기타를 메고 있는 몸매가 위태로워 보일 지경이다.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 준다. 비가 쏟아지는 밤 옷이 젖은 채 뛰어 들어간 바에서 멋진 연주를 들으니 멋지다. 젖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레몬 맛이 나는 현지 맥주 한 병을 주문하고 밴드 연주가 정면에서 보이는 해변가 쪽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운치 있는 멋진 밤이다. 메탈리카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들을 한다. 우리나라 스쿨밴드 내지 직장인 밴드에서 많이 커버하는 노래들이다. 또 한번 사람들의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구나 싶다.


비를 맞고 뛴데다 술도 들어가고 시간도 늦어지니 피로가 몰려온다. 비는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고 있다. 적당히 타이밍을 맞춰 계산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