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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Mar 27.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라스베가스의 마지막 밤.

 열 받아서 다시 카지노로 갔다. 몇 번 지나쳐오고 게임도 전날 경험했던 터라 처음보다 훨씬 익숙한 느낌이었다. 호텔마다 카지노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게임판인 이 라스베가스에서 난 하나의 게임용 말에 불과했고 그 거대한 판의 흐름에 나도 따라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여러 가지 게임이 많았지만 역시 경험이 있는 게임으로 몸이 이끌렸다. 카지노어, 블랙잭, 소 울음 소리가 나는 머신... 


 그저 게임판 위에 있다는 사실을 즐기기로 했고 소액배팅으로 게임을 이어갔다. 물론 내심 큰 한방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애써 욕심이라 타이르고 처음에 기준을 두었던 10만원 가량을 탕진 한 뒤 헛헛함을 안고 일어났다. 카지노를 비롯해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은 호텔이었다. 잠시 로비에서 쉬다 간다는 것이 쇼파에서 잠이 들었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 호텔 종업원이 와서 나를 깨웠다.      


 “Sir, blur blur blur.” 머라고 하는지 확실히는 못 들었지만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Okay, sorry.” 나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승연이가 없었다. ‘어디 간거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봤다. 호텔 안에 회전목마 주위 구경을 갔나 싶어 근처를 찾아보고 혹시 다시 게임을 하러 갔나 하고 카지노장을 쓰윽 훑어 보기도 했지만 돌아다니면서 찾기에는 너무 큰 규모였다. 답답해 하고 있던 중에 승연이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고 근처에서 만났다.      


 “어디 갔었어? 자는 걸 혼자 두고...”

 “오빠 너무 곤히 자길래 좀 자라고 뒀어요.”

 “배려심 쩐다야. 호텔 종업원이 깨워줬다. 좀 부끄러웠지만 당당해지려 했지.”    

 

  우린 호텔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대충 구경을 마치고 다시 카지노로 들어가 하릴없이 이리저리 다른 사람들이 게임하는 것을 구경하고 시간을 보냈다.      


 “담에 돈 많이 벌어서 백만원 정도 시원하게 게임하면서 놀았으면 좋겠다. 아까 그 남자 봤지? 10만원짜리 칩으로 게임하는 거. 하긴 돈을 그렇게 칩으로 바꿔 놓으니까 이게 다 그냥 칩이지 돈이 아니더라.”

 “오빠도 아까 내가 그만하라고 했을 때 그만했으면 됐을텐데 괜히 자꾸 해가지고 다 잃었잖아요.”

 “괜찮아. 10만원 정도는 게임비로 쓰고 가야지 생각했었어. 근데 아깝긴 하다. 어제 잃은 것 까지 만회할 수 있었는데...넌 그래도 20만원 정도 땄잖아. 엊그제 공연 공짜로 본거네. 우와!”

 “히힛! 그러게요. 운이 좋았어요. 재밌네요 카지노. 담에 또 오고 싶다.” 

 “큰일이야, 이런 데 재미 들리면 신세 배려.”

 “그 정도 안 해요, 그냥 재미로 하는 정도만. 헤헷”     


 카지노에 대한 품평회를 하며 우린 카지노를 빠져 나왔고 저녁 식사 메뉴를 탐색하던 중 근처에 미국에서 유명한 버거 중 하나 인 고든 램지 버거가 있대서 거기를 찾아갔다. 햄버거 가게라지만 패스트 푸드 가게라기 보단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의 매장이었다. 고든 램지 본인인 듯 한 사람이 버거를 뽐내고 있는 커다란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며 자리를 안내받아 앉았다.     


 쇠고기가 들어간 버거를 주문했다. 주문 한 버거가 한 상 차림으로 거하게 나왔고 미국이란 나라의 햄버거 시장에 대해 놀라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오오! 이건 다른 거랑 좀 다른데!’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풍부한 고기의 맛과 육즙이 만족감을 주었다. 그냥 햄버거라기 보단 뭔가 요리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 첫 입의 맛에 감탄하며 여기저기 널린 햄버거를 이렇게 특화한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며 식사를 했다. 하지만 처음처럼 풍부하고 강한 맛이 지속되다 보니 약간 질리게 되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 매력을 유지하기는 다소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강한 느낌의 미국 햄버거를 경험한 기분은 확실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밖으로 나와 거리 구경을 했다. 햇빛이 사라지고 더위가 다소 가라앉은 덕에 걸어 다닐 만 했다. 여전히 보이는 거리의 다양한 악사들과 밤을 수놓은 화려한 건물들, 그 사이로 간간히 날아가는 헬기들, 왁자지껄한 사람들... 그새 익숙해진 낭만이 눈을 흘러 지나갔다. 게다가 라스베가스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더 멋져 보였다.      


 “난 왠지 여기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애.”

 “왜요? 담에 다시 오면 되지.”

 “몰라, 왠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 왠지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 

 “오늘 마지막 밤인데 맥주 한잔 하자!”

 “좋아요. 한잔 해요!”     


 가끔 너무 진한 화장을 한 사람을 보면 슬퍼 보일 때가 있었다. 아주 진한 화장을 한 광대같이 애닳아 보이는 밤 얼굴을 마주하며 우린 맥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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