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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Apr 10.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시카고의 잠 못드는 밤

 늦은 시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우리의 방을 안내 해 주고 시카고에 대해 몇 마디 얘기도 나누어준 덩치 좋고 인상도 좋은 남자에게 고마웠다.     


 스트 하우스는 여자 층은 2층, 남자 층은 3층, 4층에는 밤 11시까지 개방하는 식당 겸 휴식공간이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배도 부르고 설레는 마음에 그냥 자기엔 이 밤이 너무 아까워 동네 한 바퀴를  걸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배정 받은 침대에 배낭던져두고 나왔다.     


 게스트하우스 계단을 내려와 건물을 나와 우측으로 돌아가니 집들이 주욱 늘어선 길 끝에 큰 도로가 보여 길을 따라 걸었다. 얼굴에 와 닿는 시원한 밤 바람에 술 기운이 달아나며 상쾌해졌다. 대부분의 집들은 불이 꺼져 있었고 도로 반대편에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레스토랑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어 밤 거리의 고즈넉함을 더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밤이었다. 나에게 시카고의 첫 인상은 바람의 도시 였다.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아 시작 했던 길의 반대편 길을 따라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2층인 내 자리에 누워서 봐도 천정이 굉장히 높은 방이었다. 침대가 푹신하니 편했고 린넨의 촉감이 좋았다. 나무로 된 천정에서는 무슨 소리가 났다. ‘와 무슨 쥐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나네.’ 라는 생각을 끝으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한밤 중 잠결에 인기척을 느꼈다. 방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나 보다. 한참 부스럭 거리더니 코를 굉장히 심하게 골면서 잤다. 여행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랜만에 불면의 밤을 보냈다. 대학 밴드부 합숙 때 옆에서 코를 심하게 골던 후배 한 명이 떠올랐다. 그 땐 후배라 발로차서 깨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했었는데 이번엔 속절없다. 그의 그로울링 사운드한 번 사로잡히니 헤어나올수가 없었다. 어둠속에 누운채로 좌로 우로 뒤척거리다 늦은 새벽 지쳐 잠들었다.  때문인지 오히려 아침에 일찍 잠이 깨었다.     


 밤새 힘들었던 것 치곤 그래도 피곤하진 않았다. 게하의 2층 스폰지 침대가 나랑 잘 맞는건지 시카고의 공기가 나랑 맞는건지...


 일찍 움직여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올라갔다. 큰 창을 통해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보였다. 넓은 테이블에 잠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좀 있으니 승연이가 올라왔다.  붙잡고 앉아 힘들었던 밤을 하소연했다. 이럴 때 나의 괴로움을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어제 밤에 완전 헬이었어.”

 “왜요?”

 “새로운 백인 남자가 엄청 늦게 들어와서 사부작 거리는 통에 잠을 깬대다가 코를 너무너무너무 심하게 골아서 계속 못 자다가 진짜 마지막에 지쳐서 잠들었어. 여행 와서 이런 적 처음이야. 전에 스페인에서는 천둥 번개가 칠 때도 세상 모르고 잤던 난데...어젯밤은 정말 어마어마했어.”

 “방 바꿔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그래 가지고 남은 며칠 어떻게 자?”

 “그 사람 오늘 바로 나가진 않겠지? 나 코고는 소리 트라우마 있어서 진짜 스트레스 받는데...”

 “그래, 이따 얘기해서 바꿔요.”

 “근데 여기 색다르더라. 삐거덕 거리는 소리도 나고 쥐가 뛰어 다니는 것 같애.”

 “여기가 목조 건물이래요. 그래서 그런 소리가 날꺼예요.”

 “오, 목조라니 색다른데. 마음에 든다 여기.”

 “저도 여기 너무 마음에 들어요. 도시도 마음에 들고 게스트하우스도 마음에 들고.”

 “완전 시카고 러버됐네.”     


 조식을 끝내고 마음 먹은 김에 카운터로 내려가 어제 상황을 설명하고 방 교체를 부탁했다. 상황을 들은 직원은 흔쾌히 방을 바꿔 주었다. 새로 배정 받은 방으로 배낭을 옮겨 놓은 뒤 시카고 구경을 하러 나갔다.  


 버스를 타고 시카고에 있는 해변으로 향했다. 사람들로 붐빈 버스를 타고 40분 가량을 이동해 해변가에 도착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그저 시카고라는 도시에 해변이 있다는 것이 이유없이 색다르게 다가왔고 여느 해변과 같은 운치를 즐겼다. 이제는 익숙해 진 원반, 럭비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람들과 선탠하는 사람들... 각각의 여유를 만끽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느린 걸음으로 해변가를 거닐다 이내 빠져나와 점심식사를 해결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시카고 도심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시나 더운 날이었고 작은 공원을 가로 질러 걷다 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벤치에서 잠시 쉬어가려 앉았다. 벤치에 앉아 쉬던 우리 쪽으로 자전거를 탄 백발 곱슬머리의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호기심 많은 할머니겠거니 하고 무심하게 앉아 있었는데 승연이가 할머니를 맞이했다.     


 나를 빼놓고 할머니와 승연이 사이에 생각보다 꽤 긴 시간 대화가 오갔다. 무심하게 있던 나도 얘기가 길어지며 자연스럽게 옆에 껴 무슨 얘기하나 들었다. 할머니께서 시카고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도 해주고 유명한 축제와 가 볼 만 한데를 소개해주기도 하며 동네 아줌마를 만난 것처럼 의외로 정답게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가 끝날 때 쯤 셋이서 기념사진도 찍고 사진을 보내 주겠노라고 말뿐인 인사와 형식적인 이메일 주소를 받아는 왔지만 나중에 진짜 사진을 보내줬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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