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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n 24. 2021

7살 아들에게 어버이날이라 바라는 건 나쁜 짓이었다.

2021년 5월 8일은 평생 기억에 남을 특별한 어버이날이다. 이 날 나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떤 날이라도 일방적으로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희생을 바라서는 안 된다.

어떤 날이라도 가족 성원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 권리가 있다.




7살 첫째 아들 어버이날 하루 전날 유치원에 다녀오더니 아주 특별한 선물을 가져왔다.


선물은 총 다섯 개였다.


효자손, 명품가방, 효도쿠폰, 비타민 음료, 믹스커피.


우선 효자손에 효자라는 문구와 함께 네이션 그 속 아이의 사진 붙어 있었다. 무 기발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효자손이 가려운 곳을 긁어줄 때마다 우리 아들 생각 날 테니 어버이날 선물로 이보다 좋은 게 있을까.


나도 내년 어버이날 선물로 부모 현금에 것까지 얹어 드리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명품 핸드백 모양을 인쇄해 코팅까지 한 가방에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적힌 효도쿠폰들이 들어 있었다. 심부름 하기, 안마해주기, 휴대폰 안 하기 등등. 


명품백을 보고 뿜을 뻔했다. 내 아이가 일곱 살 때 첫 명품백을 받다니. 너무 빠르지 않은가.


선생님들의 고민이 담겨있고 그걸 오리고 붙였을 아이의 손길까지 더해진 선물들에 웃음이 피었다.


아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효도쿠폰을 주며 지금 당장 다 써보라고 했다.


나는 그 쿠폰 하나하나를 아이가 직접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귀하고 아까워서 단 한 장도 쓰질 못했다.


비타민 음료에도 아이의 사진이 붙어져 있었다. 

아이가 나의 비타민인데 비타민 음료에 아이 사진까지. 어떻게 내가 이걸 마시겠어. 이 비타민 음료도 박제 각이다.


믹스커피도 고이 포장되어 있었다.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게 아이들이라면 당장의 무기력함과 피로함을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는 해주는 게 달달한 커피 한잔이라는 걸 알았을까. 내 마음에서 달달한 커피 향이 났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잔뜩 받아서 가슴이 벅차올다.


아이가 가져온 선물이 하나라도 제대로 담기지 않을까 봐 각도를 달리 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얼굴부터, 팔, 몸통 할 거 없이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숨이 막히도록 꼭 안았다.


어버이날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건 그 선물들이 발단을까...


다음날 눈을 뜨면 어떤 하루가 내게 펼쳐질까라는 설렘에, 오늘이 이 정도인데 내일은 아이가 말을 얼마나 잘 들어줄까 하는 기쁨에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어버이날 눈을 뜨고 나서

'아... 내가 이러려고 오늘을 기다렸나...'라는 탄식과 속상함이 절로 나오는 일들이 벌어졌다.


신랑과 나는 어버이날 우리가 좋아하는 바다에 가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 함께.


바다에 가자는 말을 들은 아이가 말했다.


"차를 그렇게 오래 타야 하는데 왜 거기를 가야 하는데" 라며.


절대 본인은 가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왜 엄마 하고 싶은 데로만 다 하냐"말도 덧붙였다.


속이 상했다. 오늘은 어버이날인데...


겨우 설득해서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서도 아이 불만은 계속됐다.


바다에 가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드니 사사건건 다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와 신랑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아이에게 어버이날을 언급해봤자 나아지는 건 없이 신랑과 나만 초라해졌다. 


어제 내게 최고의 선물을 가져다준 그 아이와 동일인물이 맞나 싶다.


체념보다 무서운 게 기대와 그 기대가 무참하게 외면됐을 때 분노 표출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에게 평소보다 서운한 감정을 짜증이나 화로 되받아치고 있었다.


아이의 투덜거림을 어디 흘러 보내 지도 못할, 모른 체하지도 못할 좁은 차 안에서 듣고 있자니 더 속이 상했다.


바다에 도착한다 해도 상황이 나아지는 게 있을까 싶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드디어 파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음이 벅차올랐지만, 이제까지 싫은 티를 낸 아이 앞에서 드러내 놓고 좋아할 수 없어 눈치가 보였다.


그때 차가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커다란 공터가 보였다. 그것도 바닥이 아주 잘 정돈된.


"바로 저거다."


우리는 트렁크에서 상시 대기 중인 아이의 킥보드를 꺼냈다. 아이는 어느 곳에서보다 신나게 킥보드를 탔다. 햇빛도 아이의 질주 본능을 막을 수 없었다. 30분을 탔는데도 방금 꺼내 탄 것처럼 에너지가 넘쳤다. 킥보드를 타자마자 아이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었고, 그제야 나의 표정도 환해졌다.


나중에는 아이가 너무나 만족해하면서 바다에 또 오자고 할 때 난 신이 나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이는 킥보드를 실컷 타고, 우리 부부는 아이가 킥보드를 타며 신나 하는 것도 실컷 보고, 바다도 실컷보고. 둘째는 역시 상시 대기 중인 유모차에 앉아 까꿍놀이를 하고 있었다. 둘째도 밖에 나와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늘 발단은 아이가 가져온 선물이 아니고 일방적인 내 기대 때문이었다는 걸 말이다.


특별한 날 더 싸우게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늘 겪어보니 정말 그랬다.


그건 아마 상대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해주면 해주었지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상대의 희생하는 건 바라는 건 옳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아이는 이제 7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인데 그 아이에게 욕심을 부리다니. 이건 다 내 탓이다.


사실 아이는 이미 태어나며 어버이날 본인이 할 일을 다 했다. 아이가 없다면 어버이날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아이도 부모도 함께 행복한 하루를 만드는 것.

그게 두에게 장 특별한 날이다. 특별한 날은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매일을 가장 특별한 날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바뀌어야 했다. 상대가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아이의 말과 의견에 귀 기울여주고 아이의 마음을 보살필 줄 알아야 된다.


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감히 어버이날을 바랄 수나 있었겠어라는 마음. 너의 존재만으로 매해 어버이날은 그 어떤 날보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다.




너의 키가 훌쩍 크고 마음이 부쩍 자란 후에도 꼭 기억할게. 내가 어떻게 어버이가 될 수 있었는지 말이야. 네가 있었기에 어버이날이 특별한 날이 될 수 있었단 것도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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