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영 Jun 27. 2021

엄마 나 유치원에서 숙제 안 하기로 유명해.

너만의 색이 있는 아이라 다행이야.

7살 첫째 아이가 유치원 다녀와서

밝게 인사를 하 말했다.


 "엄마 나 우리 유치원에서 숙제 안 하기로 유명해."고 말이다.


전혀 기가 죽지도 주눅 들지도 않은 당당한 말투에 무슨 좋은 내용을 말하나 하고 순간 속을 뻔했다.


내가 다그치면 아이가 움츠들어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을까 봐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춘 채 태연한 척 연기를 며 물었다.


"응? 복덩아, 그게 무슨 말이야?"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 속에는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어색할 만큼 밝은 목소리로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 그래도 지금 당황스러운 말을 들어서 전화드릴려던 참이 었어요. 복덩이가 숙제를 안 한기로 유치원에서 유명하다고 해서요."하고 말이다.


사실 선생님께 쓰기 연습시켜주세요 같은 문자를 받은 적 몇 번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단순히 유치원에서 그날 배운 걸 반복 학습하라는 건 줄 알았다. 아이가 숙제가 있다는 말도, 숙제 검사를 한다는 말도 오늘 게 처음 말했기때문이다. 


그렇게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선생님께서도 호탕하게 웃으시며 복덩이가 유치원에서 쓰는 연습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셨다. 아마 그래서 숙제가 있다고 얘기를 안 했나 보네요 하고 덧붙이셨다.


매일 약식이지만 숙제 검사를 했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게 정말이었다니!

 

그런데 우리 복덩이는 그때마다 노트를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유치원이니 어느 정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숙제 검사를 할 테고 우리 아이는 자기 차례를 그렇게 어물쩍 넘겨버린 것이다.


혹여나 복덩이가 잊어버렸든 자의로든 숙제 내용을 전달해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선생님께서 매일 문자로 내용을 보내주신다고 했다. 우리 복덩이 같은 친구가 더 있거나 간혹 안 가져오는 친구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반 전체에 이제 매일 보내겠다고 하셨으니 말이다. 선생님도 복덩이가 노트를 계속 꺼내지 않으니 궁금하셔서 내게 전화를 걸었던 거였다며 재미있는 일화를 들은 것처럼 즐거워하셨다. 아이가 무척 귀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우리 복덩이는 쓰는 게 다른 친구들보다 느리지만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해내고 만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고 얘기해주어도 괜찮다 꼭 끝을 낸다는 거였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긴장된 마음 풀렸다.


그때 번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 복덩이는 대체 누굴 닮아서 저런 행동을 했을까였다.


신랑은 학교 다닐 때 상장을 너무 자주 받아서 어떤 날은 꺼내지도 않았다고 할 만큼 공부를 잘했었다. 게임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밤늦게까지 게임을 즐겨하기도 했다. 공부하는 법을 터득해서 남들보다 짧은 시간 공부해도 효율이 높은 사람인 셈이다.(부럽다) 그런 신랑을 닮았으려나?


나는 려서는 미술, 커가면서 글쓰기 렇게 두 가지에는 소질이 있어 그 상장은 그래도 꽤 받는 편이였다.  그렇다고 신랑처럼 많이 받는 건 절대 아니었다. 받아올 때마다 탕수육을 먹는다거나 축하를 받았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시험기간에는 교과서 속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숨겨 보다 걸려 압수를 당할 만큼 책을 즐겨 읽었다. 공부는 중간 정도였다. 야간 자율학습은 빠지는 게 일이었다. 세상에는 공부 말고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았다. 가장 마음이 맞는 친구와 마음을 맞춰 야간 자율학습을 빠졌다. 그리고서는 동네를 걸어 다니거나 분수대에 가서 미래의 우리 모습을 상상하고 서로의 꿈을 얘기하며 놀았다. 그게 그때는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꿈을 이루려면 공부가 어느 정도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점은 간과한 채 미래를 이야기하다니. 지금 복덩이만큼이나 엉뚱했던 것 같다.


복덩이의 행동은 내가 느끼기에 너무 기발하고 엉뚱한 행동이었고, 또 그때마다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어물쩍 넘겼을 배포가 남다르다는 느낌도 받았다. 적어도 예민하거나 소심하지 않은 아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내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단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숨기고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있었지만 우리 복덩이는 그리질 않았다.


될 아이는 될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뭐라도 될 아이.


고슴도치 눈에도 자식은 다 예뻐 보인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부모는 아이에게 무런 조건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이를 통해 배웠다.


숙제는 지금부터 착실하게 해 가면 됐다.


남들보다 적는 게 느려서 스트레스였던 아이에게 왜 여태껏 말을 하지 않았냐고 다그칠 생각 없었다. 쓰는 게 남들보다 느려서 속 끓였을 아이가 조금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이들만의 속도가 다 다르니 괜찮다고 다독거려주고 싶었다.


복덩이는 이제 겨우 일곱 살.

내가 할 일은 숙제는 꼭 해서 가야 하는 것이라는 숙제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복덩이가 쓰는 걸 어려워하지 않게 곁에서 독려하고 함께 쓰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함께였다.


우리 복덩이의 숙제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그 후로는 매일 나와 때로는 신랑과 숙제를 착실히 해가고 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주로 보려고 한다. 티 없이 밝고 활짝 잘 웃는 복덩이가 너무 좋고 동생을 때리거나 싫어하지 않고 놀아주고 돌봐주기도 하는 복덩이가 고맙다.


어른들을 보면 모르는 분이라도 인사를 하고, 누구 앞에서도 쌈바댄스를 추고 노랫가락을 뽑는 복덩이가 자랑스럽다.


할머니의 텃밭에 가면 한 낮 뙤약볕에도 집에 가져가야 한다며 끝까지 고추나 가지를 따고, 놀이로 도토리를 주우러 갈 때도 두 주머니가 가득 차도록 집중해서 줍는 복덩이가 좋다. 엄마는 내게 복덩이가 끈기가 있고 책임감이 있다며 자랑하셨다.


나는 복덩이가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바르게 자라기를 바란다.


하지만 도덕이나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만의 색이 있는 아이로 개성있게 자라나기를 바란다. 어떤 식으로든, 뭐든 다 괜찮다. 공부는 취미가 없다고 해도 좋고 하루 종일 곤충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좋다. 달리기가 너무 좋다며 그걸 평생 하고 싶다고 해도 좋고,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해도 좋다.


나와 신랑을 닮은 복덩이 대신 복덩이 만의 색으로 복덩이의 인생을 마음껏 활보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티 없이 잘 웃는 사람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복덩이의 마음만 활짝 웃고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복덩이 행복하면 나는 그걸로 됐다.














 



아이는 대답을 하는 대신

작가의 이전글 7살 아들에게 어버이날이라 바라는 건 나쁜 짓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