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영 Jun 30. 2021

그가 떠난 날,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인생 2회 차 주말부부 <2>

신랑이 이사를 했다.

결혼을 하고 신랑 혼자 이사를 가다니.


신랑이 가지고 갈 옷들을 챙기고, 집기들을 챙 때였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신랑이 떠나기 하루 전날이 되어서야 주말부부로 살아야 하는 게 실감이 났다.


그전까지는 그토록 씩씩했던 나였는데 숨을 들이쉬기만 했는데도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쏟아졌다. 우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울음을 삼켰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콧물로 코가 다 막히고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할 때 겨우 진정됐다.


가자마자 새로 얻은 집을 청소하고 물건을 정리할 그를 생각해서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길 바랐다.


 계속 내가 한다고 극구 말렸지만 그는 전날 저녁부터 목살 김치볶음, 베이컨 로제 스파게티, 소고기 양파볶음까지 세끼를 직접 음식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음식에는 회사가 끝나 이제 더는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수 없다는 슬픔이 담겨있었다. 우리에게 그가 필요하지만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미안 마음과 함께. 


숟가락, 젓가락 질을 할 때마다 그가 우리를 위해 음식을 해 먹이는 마음을 떠올렸다.


정성 가득한 요리만큼 상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어떨 때는 말보다 만들어 준 음식 한 그릇이 더 강한 울림을 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그는 이렇게 가는 날까지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와의 이별이 더 슬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순간도 투덜대지 말고 잘해줄 걸.


아이 둘을 혼자 잘 돌볼 수 있을까 걱정하는 시간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더 들려줄 걸.


그의 허리를 감싸 꼭 안아줄 걸.


떠나는 날 아침, 둘째와 내가 방을 같이 쓰는데 둘째가 먼저 일어나 칭얼거리자 신랑이 달려와 둘째를 잽싸게 데리고 나갔다. 나에 대한 배려였다.


그때 신랑 곁에 있던 첫째가 그랬다고 했다.


"아빠. 이제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느라 힘들 텐데 내가 동생 볼 테니까 더 자."하고 말이다. 역시 나보다 속이 깊은 첫째였다.


이렇게 예쁜 첫째와 둘째를 두고 가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힘이 들까.


일요일 오후 두 시가 돼서 그는 정말로 갔다.


그가 떠나니 내가 꼭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았다.

 

신랑이 떠나기 전까지는 그를 한 없이 붙잡고 싶은 마음에,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울먹이던 내가 막상 신랑이 떠나고 나니 두 아이들을 혼자서도 잘 케어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앞으로 혼자 둘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매일 하던 일이 그건데 뭐' 오히려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감사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가 주고 간 신랑과 똑 닮은 선물.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이 내 곁에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이들을 가지고 낳을 수 있게 해 준 신랑에게 고마웠다. 나는 그런 아이들 덕분에 신랑과 떨어져 있어도 절대 혼자 일 수 없었다.


아이들은 내게 먼지 한 톨만큼의 부담도 되지 않았다. 나의 축복이고 기쁨이고 내 존재 자체는 될 수 있어도 말이다.


그가 떠나고 나니 내게 소중한 것들이 더 잘 보였다.


곁에 없는 신랑에게 바라는 게 점점 줄어갔다. 나 혼자 해야 할 일들이라 생각하니 웬일인지 고단하지 않았다.


기계처럼 몸이 움직여졌다. 나조차도 묵묵히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설정도였다.


그는 내가 곁에 있을 때도 집에서 할 일들을 찾아서 묵묵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 신랑이기에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거겠지 생각했다.


신랑이 가고 이틀째 되는 날 새벽 세시에 어느 날처럼 둘째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래, 새벽에 한두 번 깨는 것쯤이야.' 통잠이 없는 둘째를 키우며 익숙한 일이라 자연스레 몸을 일으켰다. 둘째를 안아 들어 방을 서성거렸다. 이렇게 조금 돌아다니다 보면 금방 잠이 들겠지. 기분 좋게 오는 잠이 달아나기 전에 함께 잠들 수 있을 거 같아 안도했다.


그런데 큰일 났다.


안아주지 않으면 울며 다시 잠들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물도 먹여보고, 기저귀도 갈아보고 업어도 봤지만 다 통하지 않았다. 밥도 당연히 먹여봤다.


오랫동안 안아주다가 팔이 아파 잠깐 내려놓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안겨서 이를 으득으득 갈고 있었다. 또다시 이가 나는 모양이다.


3시부터 시작된 싸움은 팔이 저릿하고 아픈 통증과 함께 동이 트고도 남 7시에 끝이 났다. 이 떨어져 나갈 것 같고 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신랑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살 때는 애가 이렇게 울고 내가 고생하는데 어떻게 깨지도 않고 자지 하며 순간이었지만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예 신랑이 없으니 그 원망도 갖지 않게 됐다.


아이가 어린 집에 변수가 있는 건 당연하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이 마음을 간직했다 그가 돌아오면 지금처럼 그에게 헌신적으로 잘해줘야지.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그에게 덜 바라고 더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했다.


어제는 헤어짐이 아쉬워 눈이 퉁퉁 붓던 내가 오늘은 이리도 장점이 많은 주말부부 매니아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인생은 늘 그랬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일방통행은 없고 늘 주고받았다. 곁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잃은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는 5개월을 보낼 거다.


그런 의미로 나는 그동안 신랑과 떨어져 있을 때 어떤 식으로 긍정적인 성장을 해나갈지 고민했다.


그에게 금요일 저녁 다시 만났을 때 1.5킬로를 빼면 만 오천 원을 달라고 했다. 그 돈으로 함께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거라니 도루묵이 되는 거 아니냐며 쿡쿡 웃었다. 이렇게라도 그를 웃게 할 수 있어 좋았다.


시켜먹는 날은 치팅데이라서 그런 거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평소에도 내가 이리 다정하고 친절하게 말했을까 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주말부부때는 말을 참 예쁘게 하게 된다. 서로에게 힘나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곁에 있지는 못하지만 늘 어떤 걸 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가장 주기 쉬운 게 힘나는 말, 예쁜 말이었다.


그가 가고 일요일부터 지금까지 즐겨먹던 빵을 필두로 간식을 모조리 끊었다. 보이차로 허기를 달래고, 피를 맑게 했다. 빵을 밥처럼 달고 살던 내게 이런 결단력이 생길 줄은 나도 쉬이 짐작하지 못했다. 금단현상이 찾아올 때마다 그와 다시 만나게 될 날 그에게 더 예쁘게 보여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여자였다. 그와 연애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가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떠올렸다. 그는 가족들과 다 함께 잘 살기 위해 실력을 키워야 했고, 돈 벌어야 했다.


나도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쉼 없이 하기로 했다. 나는 그가 없을 때 글에 더 집중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했다. 그게 그를 떠나보낸 슬픔을 잊는 방법이자 다시 활력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나도 그처럼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웬일인지 그가 없는 빈자리는 크지 않다. 아마 내 머릿속에 그가 떠난 적이 한순간도 없어서일 것이다. 그는 물리적으로 우리 곁을 떠나 있지만 언제나 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해준 것은 많이 없지만, 우리 가족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가 느끼기만 한다면. 그래서 한 밤중에 불 꺼진 방에 들어가더라도 항상 그를 생각하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외롭지 않다면 우리는 늘 함께하는 것이다.


보고 싶은 걸 하루 참는 건 버틸만하다. 그가 없는 헛헛함을 하루 느껴야 하는 거라면 견딜만하다. 고작 그걸 4일을 하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이런 마음이면 5개월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있을 것이다. 새해가 되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함께 살 수 있 것이다.


그와 떨어져 있을 때 그동안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찾아 기록할 것이다. 다시 그와 만나 매일 함께 산다 해도 잊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그를 통해 삶을 배운다. 그는 내게 늘 배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오늘도 내 삶에서 그를 만난 것에 감사한다. 그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된 것도 여전히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다. 그와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올여름, 가을. 그에게 지나치게 의지했던 것도 그에게 가졌던 욕심도 털어내기에 좋은 기회이다. 그가 돌아왔을 때 나는 잔소리는 덜 하고 힘나는 말은 더하는 좀 더 현명한 아내가 되어 있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나 유치원에서 숙제 안 하기로 유명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