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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n 04. 2021

말을 건넬 그가 곁에 없다_주말부부의 시작.

<1>

의 주말부부 경험이 주말부부를 살아내야 하는 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1년 간 주말부부로  살았던 그때의 이야기를 씁니다.



주말부부의 시작을 알리며.


갑작스러운 취업으로 인해 신랑과 떨어져 살게 됐다.


떨어져 살아야 하는 기간이 언제까지라고 말할 수조차 없, 출구가 보이지 않아 더 아득하게 느껴졌다.


내게는 청천벽력 같았던 그때.

아이의 나이는 고작 5살이었다.


공기처럼, 하늘에 뜬 구름처럼 익숙했던 일상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매일 밤 함께 누워 이야기를 나누던 침대에서 그의 부재를 실감해야 했고, 함께 시간을 보내던 거실 속 풍경 속에 더 이상 그 찾을 수 없었다.


매일 모든 걸 함께했는데,

그와 함께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겪는 것이, 그리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 내가 느낀 주말부부의 첫인상이었다.


그가 없는 이제야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그의 배려들이 보였다.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일들은 사실 그의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함께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시간을 보내주고, 아이 목욕을 시켜주고, 아이와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음 언제든 사러가 주고, 가고 싶은 곳이 있음 흔쾌히 데려가 주고 참 부지런하고 자상한 그였었다. 


당장에라도 고맙다고 얘기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을 건넬 그가 곁에 다.



눈만 뜨면 울었다.


울고 싶어 운 게 아니었다. 나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싶었고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아이 앞에서 나는 강한 엄마이고 싶었다.


신랑이 첫 출근을 하기 위해 짐을 싸서 나가는 날 울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또 가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어제도, 엊그제도 신랑 품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이를 악물고 참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신랑이 달래주면서 그래도 우리가 사이가 좋으니 이렇게 울어주지 아니면 엄청 속 시원해하고 홀가분해했을 거라고 고맙다며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좋은 일만 생각하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내가 제발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신랑이 떠난 사실을 애써 모른 체하며 일을 했지만 문득문득 우울이 찾아왔다. 울지는 않았지만 어떤 표정 지을 수가 없었다. 심연에 빠진 것처럼 다른 사람이 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의 상황을 아는 사람이 한 마디만 건네도 마음속에서는 금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티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눈물이 차올랐다.


첫 출근을 마치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간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마주 보지 못하고 전화로 얘기를 나누고 나니 조금 덤덤해졌다. 정말 오지 못 하는 걸 이제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았다.


지금까지도 나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일까. 오늘도 신랑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진 않을까 기대했던 걸까.


하지만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까지 전가시키고 싶지 안 않다.


그래서 아이가 깨어있을 때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침대에 누웠을 때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침대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거 같다. 베갯잇이 마를 날이 없었다.


나는 하루 종일 덜 마른빨래처럼 쭈글쭈글했다.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는 녹초가 될 정도로 지치는 게 좋아.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는 녹초가 될 정도로 지치는 게 좋아"

할아버지는 이렇게 한마디 하시고는 다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따라잡기가 훨씬 쉬웠다. 할아버지가 걷는 속도를 늦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도 지나 보다고 생각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시절 중-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후 엄마까지 돌아가신 후 조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가는 길에 할아버지가 건넨 말이다.


나는 주인공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급작스레 변화가 닥쳐왔고, 그것에 수긍하고 순응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나는 해볼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야 했다. 아니면 이 슬픔과 헛헛함을 견뎌낼 수 없을 거 같았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집중하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부자연스러울 만큼 큰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며 신이 나는 듯 아이와 놀아줬다.


아이는 다행히 아빠를 그리 오래 찾지 않았다. 생각보다 바뀐 환경에 적응을 잘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니 나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집히는 책들을 마구 읽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쏙쏙 박혔다. 블로그를 개설한 것도 그때였다. 오랫동안 들지 않았던 펜을 들던 순간이었다. 아픔과 고통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걸까.


하지만 문득문득 신랑이 너무 생각나고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미칠 듯이 그리웠다. 용을 쓰고 애를 써도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볼 수 있다는 게,

얼굴을 마주 보며 소통할 수 있다는 게,

퇴근시간이 되면 문을 열고 들어 온다는 게,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다.

하나도 당연한 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100번 이면 100번 다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가 기쁘게 맞아줄걸.  

함께 일 때 잘하지 못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는 그때,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방황하고 있었는데 녹초가 될 만큼 바쁘게 살다 보니 주말부부인 채로도 살아졌다.


그리고 예전만큼 엎어놓고 슬프지만은 않았다.



혼자 잠드는 게 너무 힘들었던 며칠을 보내고 나니, 그가 올 수 없음에 익숙해졌다.


첫날만큼 아프지 않았다.

처음처럼 괴롭지 않았다.

그와 주말에 다시 만났을 때, 그가 곁에 매일 있었음이 기적 같은 순간이었음을 다시 깨달았다.


시간이 나를 도왔다.

시간은 나의 슬픔을 가라 앉혔다.


외지 생활이 힘들겠다는 내 말에 가족들이 보고 싶은 것 빼고는 힘들지 않다는 그의 거짓말이 날 안심시켰고 위로가 되어주었다.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린 덕분에 나는 조금 살만해졌다.

그리움에 꽉 막혔던 숨을, 조금씩 쉬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았다.


연애 때로 돌아간 거 같았다.

사랑하는 그와의 연애가

결혼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아내가 아닌 

그와 나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다시

둘밖에 없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 애틋함이 쌓여 갔다.


주말부부로 첫 주를 보내고 주말에 만났을 때,

나는 앓아누웠다.

그를 만나니 긴장이 풀리고 안심이 됐나 보다.

그동안 그가 해왔던 부분을 나 혼자 채우려니 나도 모르게 용을 썼었나 보다.

많이 아팠었다.


편안함이 몰려왔다. 비로소 일주일 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주말부부를 하는 내내 그와 만나는 1분 1초가 소중했다. 


그 전보다 자주 보지 못하는데도 감사할 일이 많아졌다.


평일의 마지막 날 그가 일을 마치고 향하는 곳이 내가 있는 집이라는 게 감사했고, 같은 하늘 아래 살아있어서 일주일을 기다리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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