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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ug 27. 2021

주말부부를 하며 '(사는 게)  그렇지 뭐'라고 했다가

주말에라도 원 없이 그의 곁에 있 싶단 생각 간절하다. 요새 일요일 회사에 나가야 해서 점심을 먹고 조금 있다 집을 나기 때문이다.


함께할 수 있는 온전한 하루는 토요일뿐인데 그마저도 함께 할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없다. 그 사람 곁에 있을 수 있을 때가.


아이들이 어린 주말부부는 주말이 돼도 함께 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교대로 돌아가며 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과 아빠 껌딱지가 되어버린 첫째, 목적지도 없이 기어서 온 집 안을 탐험하고 다니는 둘째 덕분에 우리는 주말이 되어서도 중간중간 만나며 서로를 그리워할 뿐이다.


잠깐씩 아이들을 교대로 본다거나, 아이를 둘러업고 스치 듯 만나는 그 시간마저도 귀해서 아주 마주치는 두 눈에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더군다나 아빠가 하루정도 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아는 첫째는 금요일 신랑이 오는 오후 11시가 넘는 시간까지 잠을 자지도 않고 기다린다.


저번 주 금요일, 여느 날처럼 불을 끄고 째를 재우고 나왔다. 아이가 자는 방에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30분쯤 후 방 온도는 적당한지 아이는 잘 자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방에 들어갔는데 아이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눈을 뜨고 있었다. 정말 얼마나 놀랬던지. 엉덩방아를 찢고 넘어질 뻔했다.


왜 아직도 잠을 안 자고 있었냐고 조용해서 잠든 줄 알았다고 하니까 동화를 들으며 잠이 오는데 눈을 뜨고 절대 감으면 안 된다고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오 마이 갓!


아빠가 오면 깨워달라 하고 나도 알았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었지만 본인은 원래 한 번 자면 잘 못 일어난다면서 그래서 자지 않고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라고 했다.


방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들 간의 동상이몽이 따로 없었다. 곤한 잠을 자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신랑이 오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오늘이라도 신랑은 내 차지라며 단꿈에 빠져 있었건만.


그날 결국 아이는 신랑이 오고 나서 더욱 흥분을 해서 12시가 돼서도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이는 아빠에게 지극 정성이었다. "주말부부 한다고 힘들지요." 하며 평소에 하지 않던 말들과 행동들로 살뜰히 아빠를 챙겼다. 그런데 안 하는 만 못하다고 했던가 신랑의 곁에서 숨 쉴틈만 주고 아빠를 챙기니 하나하나 다 답을 하고 칭찬을 해주던 신랑이 몹시 지쳐 버렸다.


그렇게 아빠가 매일 재워줄 때가 좋았다던 아들은 그 아빠가 돌아왔는데 새벽 1시가 다 돼서도 자지 않았다.


결국 아이를 재우는 방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얼른 자라는 아빠와 잠이 안 온다는 아들 사이에 투닥거리는 소리였다.


속으로 아이를 놀린다고 '지금도 아빠가 재워주는 게 제일 좋으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주말부부 전 아빠와 아들로 돌아온 것 같아 너무 보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 저런 게 우리 집 평소 풍경이지. 서로를 부담될 만큼 지나치게 챙기는 건 우리 집 답지 않지.'

둘째를 돌보던 방에서 나 홀로 미소를 지었다.




주말부부를 하며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고 했다가 신랑에게 돌아온 대답.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나 또한 주말부부로 인해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주어진 환경이 편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선택이, 이 시간들이 우리에게 슬프지 않은 추억이 되기 위해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우리 주말부부 상황은 좋지 않다. 그의 일이 더 바빠져 일요일 오후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 사실 그 일로 싸우기도 했다. 그 일이 아니더라도 투닥거릴 일은 많았다. 둘 다 평소보다 훨씬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으니 체력이 떨어져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 주째 토요일마다 크고 작은 싸움을 했다. 주말부부를 한 번 해 본 우리는 주말부부에게 싸움은 독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화해를 해도 돌아오는 월요일이면 둘은 떨어져야 한다. 싸운다고 소비한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고 보살펴 줄 상대가 곁에 없는다는 건 외줄을 타는 것처럼 굉장히 아슬아슬하고 고독한 일이었다.


매주 똑같은 강도의 일이 주어지지만 그 전보다 조금은 피폐해진 몸과 마음으로 해야 하니 어느 하나에게도 도움 될 게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걸 기대했는지, 그 기대가 어떤 방식으로 일그러졌는지를 진심으로 공감해주기에 너무 지쳐 있었다. 주말부부를 한다는 건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평소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체력이 떨어지고 성질이 급해 싸움이 되었지만, 싸움은 늘 급하게 끝이 나기도 했다. 서로가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싸웠던 시간 이상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함께 있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주말부부로 인해 다시금 깨달았다.


요 며칠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왔다. 신랑이 출퇴근을 집에서 할 때 날씨가 안 좋은 날 왕복 3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신랑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꽤나 추상적이었다.


때리는 빗방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정작 본인은 100킬로가 넘는 고속도로 차 안에서 그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을 것이다. 주말부부를 하며 오히려 그를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며 그를 더 많이 알게 됐다. 그와 내가 아침, 저녁마다 건강하게 살아서 만날 수 있는 건 기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앞으로도 적어도 일 년에 3분의 1 정도는 주말부부를 할까 싶은 생각도 했다. 이 마음은 순전히 신랑을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왔다.


나는 주말부부가 되기 전 아이와의 외출에 있어서 자립적인 엄마가 못 되었다. 겁이 많고 용기가 부족한 엄마였다.


첫째만 데리고도 잘 나가지 않았다. 첫째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 지레 겁을 먹어버린 것이다.


4~5살 때는 정말 위험하긴 했다. 도로로 갑자기 뛰어가고 손을 놓고 혼자 저만치 가버리는 첫째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커서 말귀도 다 알아듣는데도 나는 변한 게 없었다. 우리의 외출에는 늘 신랑이 함께였다.


그랬던 나였는데 신랑 없이 두 달을 혼자 아이들을 봤다. 이제는 첫째뿐 아니라 둘째까지 데리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오래도 갔다 올 수 있다.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무색할 만큼 벌써 두 달이 흘러있었다. 내 스스로라도 머리를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너무 힘이 들 때면 말을 아끼게 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조금만 힘들어도 종종거리며 달려가 어리광을 부리던 내가 조금만 다쳐도 엄살을 피우던 내가 많이 달라졌다. 힘들다는 말을 건네는 건 지금 당장 달려올 수 없는 신랑의 애간장만 녹일 뿐이었다.


대신 힘들 때면 '다 그렇지 뭐'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나 힘듦은 있고 이 정도 힘듦은 지니고 있다 생각하며 날 다독거렸다. 내가 나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드디어 터득한 것이다. 그게 나의 평화에도 가족의 평화에도 도움이 되는 듯했다.


엄청 힘들었던 날 매일 그랬듯이 신랑이 내게 많이 힘들지라며 위로를 건넸다.


나는 속으로만 되뇌었던 '다 그렇지 뭐'라는 대답을 했다. 최대한 마음을 수련하고 가라 앉히고 순화해서 나온 말이었다.


바로 '에구. 힘들지'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답이 다가 아니었나 보다. 그날 밤 그는 편지로 그 말에 답을 했다. 편지 속에 있던 그 대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 그렇지 뭐, 다 누구나 그렇지 뭐. 그래도 한 명은 예외라고 했다. 다들 그렇지만 나는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않 평생 지금처럼 잘살자고 얘기해주었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편지를 읽는데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거 같았다. 나는 이거면 충분했다. 사는 게 힘들더라도 내가 덜 힘들기를 바라는, 덜 힘들 수 있게 지켜주겠다는 마음을 가진 신랑 하나면 충분했다. 그리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평생 지금처럼 가진 것에 감사하며 서로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신랑의 편지에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나는 요새 떨어져 있는 신랑을 생각하 눈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 혼자서 흥얼거린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걸'하고. 첫 소절밖에 몰라 이 구절만 흥얼거렸던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이 노래의 제목을 찾아보았다. 건전가요이고 제목은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제목을 알고 나서 노래가 더 좋아졌다.


주말부부를 하며 힘들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고단할 때도 있지만 비단 주말부부를 한다고 해서 느끼는 감정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늘 좋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시간을 견뎌내는 힘도 그 시간 동안 서로의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힘도 모두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오늘 밤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 내 마음속 수억 개의 별이 진다고 해도 마지막 별 하나만 지지 않는다면, 내가 소중히 지켜낸다면 우린 여전히 사랑하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얼굴에는 못된 뾰루지가 올라오고 어제, 오늘은 목 침을 삼키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어있다.


'근데 그러면 좀 어때? 입원을 한 것도 아니고 조금 불편하다 말면 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든다.


몸의 아픔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걸 주말부부를 통해서 배웠다.


혼자서 아이 둘을 보려면 아파서는 안 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아픈 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 말대로 될까. 그리고 더 힘든데 더 자주 아플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서 아이 둘을 볼 때 아파도 된다고 얘기하고 싶다. 내가 자주 아프니까.


하지만 아프더라도 정신을 강하게 먹고 마음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우아이를 볼 수 있다.


해보니 웬만큼 꼼짝도 못 하게 아픈 거 아니면 마음이 몸을 이긴다.


그리움이 외로움을 이겼고, 그를 향한 안쓰러움이 서운함을 이다. 사랑은 그 어떤 것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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