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작가노트.
첫 글은 '고장' 너로 정했다.
10년이 지난 요즘 글을 다시 쓰면서 온 집안을 뒤져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가노트를 찾았다. 찾은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다.
과제로 제출해야 해 특정 기간 동안 매일 써내려 간 작가노트 속의 나는 낯설었지만 무척이나 반가웠다.
내가 그땐 저런 생각을 했다니 신기했다.
작가노트를 지금까지 꾸준히 썼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글과 훨씬 더 우호적이고 친밀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며칠 째, 찾아 놓은 작가노트를 신줏단지 모시 듯하며 하나씩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따라가 20대의 내 삶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문득 30대의 작가노트를 쓰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때와는 분명 조금은 달라진 내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큰 맘먹고 작가노트를 다시 써 보았다. 꼭 처음인 것처럼 떨리고 설렜다.
이제 앞으로 손으로 쓰는 노트에다 작가노트를 매일 써보려고 한다.
그때그때 떠오른 감상과 글감들을 이제 흘러 보내지 않아도 된다. 차곡차곡 쌓아가 볼 것이다.
글과 더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수확의 계절 가을로 넘어온 지금 잘 한 결정이 되면 좋겠다.
이 작가노트가 브런치의 글들과 함께 혹시나 글을 쓰며 방황할 때 가야 할 길을 찾아 줄 한 줄기 빛이 돼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고장
고장 나 버린 걸 거들떠보지도 않는 때가 있다.
내게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이 고장이 났을 때다.
하지만 내가 매일같이 쓰는 게 고장이 나면 그때부터 고장 난 걸 아낀다.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그걸 그제야 바라봐주는 것이다.
성할 때는 성해서 귀한 줄 몰랐다. 성할 때면 성한 게 당연하다 느꼈다. 고장 나 버려 작동조차 하지 않을 때를 염두에 두거나 상상해 보지도 않았다.
문득 마음이 고장 났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인간관계에서 한 때 너무나 소중했던 이와 뭔가 잘 못 되고 있음을 직감했던 일까지도.
마음이 고장 났을 때 고장이 나버릴 때까지 가만 둔 나와 주변 사람들을 원망했다.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화가 났고 설움이 폭발했다.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까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바꿀 수 없는 일어난 일들과 지나간 시간을 원망했다.
인간관계에서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이 관계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봤자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벌어진 일들을 곱씹기만 했다.
하지만 물건이 고장 났을 때는 달랐다. 왜 고장 났는지 원인을 곱씹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고장 난 부분을 고쳐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당연히 고치면 다시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실은 물건보다 마음이 고장 났을 때 더 그랬어야 했다. 관계가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릴 때 그랬어야 했다.
고장이 났다는 건 고쳐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였다. 이제 고치면 된다는 신호. 고치면 새 것처럼 쓸 수 있다는 신호.
그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면 사는 게 괜찮을텐데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가 혹시나 소중한 누군가에게 쓸모가 없어지기 전에, 더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형편없어지기 전에 주변에 고장 난 것들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보다 더 자주 기꺼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그걸 부지런히 찾고 고치다 보면 그나마 덜 형편없는 사람이, 주변에 내가 아끼고 소중하다 여기는 사람들만큼이라도 날 거들떠보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가만있자. 지금 내 곁에 고장 난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6층에 사는데 엘리베이터 수리로 3주 간 엘리베이터를 쓰지 못했던 여름 날들을 보내고, 고장 난 주방 수도꼭지 때문에 이틀간 물이 튀어 물 트는 것조차 두려웠던 이틀을 보내고 쓴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