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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ug 25. 2021

솜털 같은 머리를 파묻는 아이. 둘째가 주는 선물.

불과 일 년 전 7월의 마지막 날.

한 여름 단비 같은 둘째가 태어났.


하지만 지금 둘째가 없었던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존재감이 크고, 함께하는 시간이 익숙고 당연하다.


첫째가 이제 일곱 살이니 꼬물꼬물 한 아기가 우리 집에 온 건 정말 6년 만이었다. 그래서 그산부인과에서 나이가 적은 축에 들었는데도 꼭 늦둥이를 낳아 키우는 듯한 착각이 든다. 


주변 사람 몇이 둘째를 낳기 전에 그랬었다. 둘째가 태어나 둘째를 함께 키우는 건 두배만 힘든 게 아니라고 말이다. 아마 열 배 이상 차이가 날 거라고 줬다.


돌이 되기 전에는 정말 힘들긴 힘들었다. 돌때까지 둘째는 통잠이란 걸 자본 적이 없었으니 육아의 강도만 놓고 보면 아마 열배도 더 힘들었어야 했을 거다.  하지만 체감은 열 배지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키우다 보니 첫째를 키울 때의 노하우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그때만큼 울음의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도 않았으니까. 아이를 대할 때 여유란 게 생긴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첫째가 훨씬 잠도 잘 자고 순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는 조금 더 쉬었다.


행복 열 배를 넘어 백 배는 더 커졌다. 둘째가 이렇게 어린데도 첫째와 둘째가 벌써 잘 어울렸다. 그 모습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면서 내가 이 모습을 보기 위해 그리도 힘들 게 이 아이들을 만났을까 싶었다.


특히 요즘 첫째가 부르는 노래에 둘째가 앉아서 팔을 흔들며 흥을 표출하는 걸 보고 있거나, 첫째가 하는 모든 것들을 함께 하겠다고 형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는 둘째를 보고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만큼 나의 하루가, 나의 마음이 꽉 찬다.


나는 둘째가 태어나고 매일같이 이 생각을 다.

'이 조그맣고 예쁜 게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하고 말이다.


우리 둘째는 지금 인형같이 작고 예쁜 시기이다. 가만히 있는 인형도 귀여운데 요리조리 돌아다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는 둘째를 보고 있으면 온 몸이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다.


신기한 게 많은 둘째는 그 작은 눈동자에 세상을 담느라 바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온 집을 누비고 다닌다. 아마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바쁘지 않을까.


이제는 품에 안아들라쳐도 다니고 싶은 데가 많아서 힘 많은 낙지처럼 금방 온몸을 휘저으며 갈 길을 버린다.


그래도 아기는 아기.


놀다가도 꼭 자석에 이끌리듯 꽤나 규칙적으로 다시 내 품에 솜털 같은 머리를 파묻는다.

그럴 때면 나는 모든 걸 다 제쳐두고서라도 둘째를 꼭 안아 든다. 포대기로 들춰 업어준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이리도 따뜻하고 드라운 게 세상에 있을까 하고. 그때면 세상 부러울 게 없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이 풍요롭다.


반들반들 통통한 볼 살과, 밥이나 수박 같은 걸 많이 먹었을 때 볼록 튀어나온 배는 또 어찌나 귀여운지. 요즘은 밥을 먹기 시작해서 그런지 살이 꽤나 여물어졌다.


둘째를 들어 올릴 때 이제는 한 번에 번쩍 든다기보다는 끌어올린다는 표현에 가까울 만큼 번쩍 들기에는 이제 좀 많이 컸다. 그래도 안아 올려 마음먹고 공중에 던져주고받으면 얼마나 예쁘게 웃어주는지 팔 아픈지 모르고 무한반복으로 해주고 싶은 정도이다.


또 그 작고 오동통한 손가락은 어떤지. 둘째는 이제 다른 손가락은 다 구부리고 둘째 손가락만 펴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가자는 의사표현을 한다. 그 손짓에 이끌려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면 장난기 가득한 함박웃음을 짓는다.


세상에나. 둘째 주변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 봄 햇살이 비추 듯 화사해진다. 따라 웃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게 있다면 아기의 커나가는 하루하루 일 것 같다. 어제 봐도 오늘 봐도 내일 봐도 같은 둘째인데 정말 다르다.


어떤 날은 전신 거울을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며칠 후에는 그 앞에 앉아 있다. 또 며칠 후엔 전신 거울을 짚어가며 우뚝 선다. 전신 거울에 붙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는 둘째를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꽃이 핀다. 거울 속에 있는 게 친구라고 생각됐는지 옹알이로 얘기를 나누다 어떤 날은 예뻐 보이는지 뽀뽀 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전신 거울을 잡고 서서 흔들흔들 춤을 추기도 한다. 그리고 거울 속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해맑게 웃는다.


불을 켜지 않아도 둘째가 다니는 곳은 자체 발광이 될 만큼 아기에서는 이토록 반짝반짝 빛이 난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는데 빠르기는 어찌나 빠른지 축지법을 배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요즘은 짚고 서서 서랍을 다 여는 통에 우당탕탕 소리가 집 안에서 가시질 않는다. 무거운 서랍들은 진작에 테이프를 다 발라놨다. 장난감 서랍 두 개를 열어 이 쪽 서랍에 있는 장난감을 다른 서랍으로 톡톡 담기도 한다.


대체 저건 언제 어디서 배운 걸까 싶은 것들도 많다. 둘째가 가지고 놀고 있는 걸 주세요 하며 손을 내밀었을 때 둘째는 "힝"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휙 돌렸다. 삐졌다는 표현 같았다. 삐졌다는 데 왜 그걸 본 사람들은 다들 껌뻑 쓰러지는 건지. 그걸 보려고 가족들이 서로 앞다투어 둘째에게 주세요를 할 만큼 그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말도 잘 못하는 그 작고 귀여운 게 힝이라며 고개를 돌리다니. 의사표현을 이리 귀엽게도 할 수 있다니.


아기 때는 늘 그렇듯 언제 어떻게 새로운 걸 배우고, 그전에 하던 걸 하지 않게 될지 몰라 그 시기 시기가 더 애틋한 것 같다. 우리는 둘째가 질릴 만큼 주세요를 하며 둘째를 귀찮게 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둘째는 더 이상 힝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위험한 걸 만지려 할 때 "안돼"라고 말하면 고개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든다.


'아니. 지금 누가 고개를 가로저어야 할 상황인데 저 작은 생명이 저렇게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단 말인가.' 당하는 나는 대응도 못하고 눈만 껌뻑인다.


그리고서는 눈치를 보는 척만 하고 다시 하던 걸 강행한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 그걸 손에서 떼어놓거나 또다시 안된다고 주의를 주면 그때는 뒤로 발라당 누워 버리거나 다가와서 기분이 상했다는 표시를 한다고 두 팔을 들어 려 퍼덕거린다. 반항의 의미로 다리를 빨며 침을 묻힐 때도 있다.


이런 모습이 첫째에게는 전혀 없던 모습이라 어쩌면 더 새로운지도 모르겠다. 첫째에게는 없던 깡을 조그마한 둘째에게 발견하는 건 늘 놀람과 신기함의 연속이다. 


그런데 어떤 모습을 하건 작고 앙증맞아서 몹시 귀긴 하다.


가족들 터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순둥순둥 한 첫째가 당하기 십상이니까.


첫째는 동생을 잘 챙기는 성품이고 다정해서, 둘째는 체급 차이가 커 깡을 실현하지 못해 절로 사이가 좋을 수밖에. 깡 대신 애교로 무장한 둘째가 첫째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줄 것이다.


둘째를 키우며 어쩌면 제일 신나는 일은 둘째와 장난을 칠 때이다. 목을 간지럽히면 까르르륵 웃으며 뒤로 목을 젖힌다. 그건 계속 이 장난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서 몇 번이고 더 반복한다. 둘째는 이렇게 어린데도 개구쟁이이다.

옆구리를 살짝만 간지럽혀도 까르르르. 발 뒤꿈치를 간지럽혀도, 다리를 벌려도 까르르르. 아기는 조건 없이 활짝 자주 웃어준다.

 

숨 쉬듯 웃는다고 할 만큼 까르르 소리 내서도 소리 없는 함박미소로도 많이 웃어주는 둘째가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감사하다 느끼는 나날들 보내고 있다.


아무래도 더 작고 어린 생명에게 손이 많이 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첫째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훨씬 더 의젓하게 많은 것을 해내고 있는데도 늘 더 호들갑스럽게 대하는 건 둘째였기에 그러면서 종종 혼도 나는 첫째였기에 나는 쉽게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아까웠다. 하루하루 다르게 커나가는 이 시기에 둘째의 기록이 남지 않는 것은.


그래서 이제 앞으로는 첫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둘째에 대한 글을 덜 쓰는 걸로 풀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다. 첫째에게 울컥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으로 바는 게 좋을 거 같다. 그걸 첫째가 더 원하기도 할 거 같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며 다가오는 오늘은 매일 처음이라 아이들을 대할 때 시행착오를 겪도 한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내게 귀하지 않은 자식은 없다. 그저 두 아이는 내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존재들이.


더 많이 사랑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며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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