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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ug 23. 2021

상을 자주 받아오는 네게 상의 가치를 알려주는 일.

상을 꼭 받아와야지 네가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이번 여름 첫째의 방학기간은 3주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마지막 여름 방학이. 이번만큼은 유치원 돌봄 교실에 단 하루도 보내지 않겠다 다짐했다.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함께 해 줄 수 없는 게 많아 억울하던 차였다.


 내가 그동안 게을러 못 해준 것들이 켜켜이 쌓여 마음이 시렸다.


막상 방학이 시작되기 전 젖먹이까지 데리고 보낼 3주 간의 방학이 조금 두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려움 반가움이 이겼다. 내 새끼 하루 종일 품에 끼고 있는 시간이니까.


그랬던 방학이 수많은 우여곡절과 포복절도, 추억을 남기고 벌써 끝이 났다. 나는 원 없이 아이를 볼 수 있었고 안아줄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좋았다.


이제 우리는 다시 3주 전 일상으로 돌아갔다.


첫째와 함께 있으며 힘들 때도 있었지만 벅차게 좋았는데 유치원에 가니까 조금 더 벅차올랐다. 나도 내가 이런 기분을 느낄 줄 몰랐다. 좋아하고 있는 내가 좀 낯설었지만 사실이었다.


여유가 온몸에서 흘렀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넘쳐흘렀다.


역시 사람은 조금 더 극한 상황을 몸소 겪어봐야만 그 전의 일상이 소중한 걸 알 수 있다. 둘째 하나쯤 돌보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계절이 변하며 평온이 찾아온 듯했다.


아이가 하원 하는 시간, 나는 축척된 에너지로 방학 전보다 더욱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마중 나갔다.





상을 자주 받아오는 네게 상의 가치를 알려주는 일은 가장 늦게 하고 싶다. 아니. 차라리 네가 영영 몰랐으면 좋겠다.



개학식을 끝내고 하원한 아이는 한 껏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서둘러 가방을 찾더니 의기양양하게 "엄마. 이것 봐." 하며 상장을 꺼내 들었다.


상장에 적힌 상장명을 보고 나도 모르게 실소를 할 뻔했다. 하지만 내 앞 서 있는 아이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했으며 몹시 진지했다.


오늘 아이가 받아온 상은 이 유치원에 다닌다면 다 주는 예의 바른 어린이 상이 었다.


아이는 상장을 흔들며

"번에는 뭘 사달라고 할까. 다음 주에 돈가스도 있고, 그때 말한 케이크도 아직 남았는데."라고 말했다.

 

아이의 기대와 설렘을 모른척할 순 없었다. 상장을 받고 마음이 환해진 아이에게 그때마다 비싸고 좋은 것을 사줄 순 없겠지만 동심지켜주고 싶었다. 


"뭐가 좋을까. 탕수육 사줄까? 한 번 골라봐."하고 대답했다.


아이는 상을 몹시 자주 받아온다. 아이가 받아 온 상 중에는 모든 아이들이 공동으로 받는 상들이 대부분이다.


시원 튼튼상, 1년 개근상, 2년 과정을 마쳤다고 수료증서, 예의 바른 어린이상 등등.


선생님들이 상장의 이름을 고민하느라 애쓰신 흔적들이 도화지처럼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적으면서 나 이것부터가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상은 다 같다면서 잘 보이는데 세워두지는 못할망정 서랍에 모아놓다니.


7살이 되면서 방과 후 수업으로 유치원과 연계된 미술학원에 다니며 그래도 뽑혀서 받는 상도 두어 개(정확하게 두 개)를 받아왔다.


처음 미술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나는 몹시 감동해 울먹거렸었다.


그런데 나는 끊자마자 그 상에 대한 정보를 찾아고 있었다. 


같은 유치원에서도 우수상을 여러 명 받았다던데 그럼 전국에는 몇 명 정도 될까 궁금했다. 


상을 받았는데 아이가 대회에 낸 그림을 돌려받으려면 4만 5천 원을 주최 측에 주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상을 받는다는 건 상장이면 상장, 또는 부가적인 상품이나 상금을 는 건데 오히려 돈을 내라니 뭔가 조금 상하기도 했다.


찾다 보니 울먹거림이 쏙 들어갔다. 아이가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는 했지만 그 수가 좀 많았다. 그리고 아이가 그린 그림은 어느새 미술 대회의 인질이 되어 있었다. 내 아이가 그린 그림을 받으려면 액자도 해야 하고 트로피도 해야 했다. 그 금액이 4만 5천 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 아이가 처음 받는 상다운 상인데 그거라도 기념하자 싶어 돈을 냈었다.


그러고서 한 달쯤 후에 또 상과 관련해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속지 않으리 다짐했지만 대상이라는 말에 또다시 나는 나도 모르게 울먹이고 있었다.


'아. 하늘이시여.'내가 어쩌면 그림 천재를 낳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착각 했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열린 미술대회 작품들이 미국에 전시된다고 했다. 전시를 해놓은 것을 보러 갈 수 있는데 가려면 얼마를 내야 하는지 돈이 적혀 있었다. 미국이라 수천만 원이었다.


우리는 괜찮았다. 굳이 미국까지 가서 보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럴 돈도 없었다.(또르르)


한국 우리 집에서 우리 아이의 그림을 보려면 또다시 액자와 트로피를 받아야 했는데 이번에는 대상이라 그런지 그 비용도 더 비쌌다. 무려 6만 원이었다. 왜 아이가 상을 받아왔는데 자꾸 생각지 못했던 돈이 줄줄 새는 느낌이 드는 걸까.


며칠 전 실물로 도착한 우수상 트로피를 본 지라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이번에도 6만 원을 부쳤다.


아이의 우수상 그림은 우수했다. 예술의 세계는 모두 우수하고 지극히 주관적이다. 중간중간에 낙서 자국 같이 느껴지는 게 몇 군데 있었다는 건 비밀이다. 전체적인 그림은 좋았다.




상을 꼭 받아와야지 네가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어떤 상을 받아오던, 또 상을 받아오지 않은 날도 똑같은 표정으로 활짝 웃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느낀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곧 한자시험이 있다고 알려줬다. 백자 조금 넘는 걸 다 외워야 한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험을 꼭 보겠다고 했다. "내가 상장을 받아오면 엄마가 좋아하잖아" 하며 말이다.


숙제도 하기 싫어서 굳이 먼저 숙제 있다는 말도 안 하는 아이인데 내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100개나 되는 한자를 외우고 시험을 보겠다니.


나는 펄쩍 뛰며 아니라고

"복덩아. 복덩이가 상을 안 가져온 어제도, 엊그제도 복덩이가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엄청 반가워하면서 달려 나갔지? 엄마는 복덩이가 상을 안 가져와도 너무 예쁘고 언제나 사랑해."라고 말했다.


내가 말해 놓고도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저런 대답을 생각해냈을까 뿌듯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한자시험을 붙어 상을 받아와서 날 더 기쁘게 해 주겠다는 말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했다.


내가 아이의 상을 보고 그동안 너무 티 나게 기뻐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받아온 상들 덕분에 밀린 빚을 갚듯이 갚아야 할 선물들이 주마다 걸려있다. 다음 주말에 돈가스, 그다음 주말에 케이크. 그걸 다 갚아나가기 전에 또 상장을 받아오지 않을까 살짝 두렵기까지 하다.


아이는 받아온 상장마다 다름 알지 못한다. 이름을 지어 모두에게 주는 상과 몇 명만 받는 상도 다름을 알지 못한다. 상은 어떤 상이든 다 최고로 좋은 거, 잘한 일,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여긴다.


아이는 그래서 상장을 받아오면 보상을 고민하고 고르느라 바쁜데 상장에 적힌 상 이름을 보고 헛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의 동심을 망가뜨릴 수 없는, 아이에게 가장 큰 동심을 선물해야 할 존재 바로 엄마이다. 헛헛한 웃음은 재빨리 숨기고 아주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려야 한다.


상장을 가져온 아이의 어깨가 으쓱해질 수 있게.

아이의 그림이 인질이 되어 뒤에 돈을 보내야지 아이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까지 아이가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가 두 손 가볍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날 버선발로 뛰쳐나가 더 반갑게 아이를 아 주어야 한다.


이게 어쩌면 백 마디 말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네가 노력하지 않아도, 네가 무언가를 가져오지 않아도 엄마는 사랑을 주는 거라는 걸 알려주는 방법으로 말이다.


무언가를 해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받아서가 아니라 네 존재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아이로 커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하원 하는 아이에게 더 활짝 웃으며 두 팔 벌려 맞아줄 것이다.


나는 복덩이가 상을 받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경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걸 하고, 힘들면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여유를 부릴줄도 아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나는 언제나 나의 행복보다 복덩이의 행복이 우선이다. 복덩이가 받은 상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더라도 행복한 사람이면 좋겠다.


상의 다름을 모르는 네가, 순수한 네가 

내가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이라는 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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