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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Nov 11. 2021

이번 연말이 유독 바쁜 이유.

생각해 보면 매해 연말은 바쁜데 이유만 달라질 뿐이다.

내년에 복덩이 학교 입학, 복숭이 어린이집 입소, 복직까지 이번 연말 나는 유독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거기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둘째를 낳고 키우면서 처음으로 일을 오래 쉬었다. 그러면서 나와 꼭 지키고 싶은 약속도 생겼다. 복직하기 전까지 단행본 분량의 동화 한 편과 단편소설을 쓰는 것이다. 브런치에서 에세이를 쓰며 용기와 힘을 많이 얻은 덕 문학의 다른 장르에서도 제대로 된 글을 써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둘째 백일 즈음을 떠올렸다. 잠도 자지 못하고 폐인처럼 살면서도 한, 두 시간 잘 수 있는 그 귀한 시간에 깜깜한 방에서 휴대폰 하나에 의지해 글을 쓰던 그 시절. 


지금은 훨씬 더 여유가 생겼지만 그때에 비해 고롭게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몇 개월 후 하게 될 복직이 내 발등에 불을 떨어 뜨린 것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내 시간이 가장 많은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이제는 잘 쓰고 싶지 않다. 그저 제대로 끝까지 써보고 싶다. 그런데 쓰는 게 정말 즐겁다. 잘하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건 어쩌면 영혼까지도 설레는 일인 것 같다.


또다시 아이가 잠든 시간 머리맡 휴대폰에 의지한 채 떠오르는 것들을 적고, 동화에 힘을 불어넣는다. 40프로 정도 완성됐나? 머릿속에 큰 그림은 거의 그렸는데 아직 써내려 간 분량이 그 정도이다.


글을 쓰는 게 이렇게 즐거운 거라는 걸 느낄 때는 내가 글쓰기에 대가를 바라지 않을 때다. 호기롭게 도전한 공모전에서 줄줄이 낙방을 하고 나는 다시 가볍게 펜을 들었다. 지금이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시기다. 어디 얽매이지 않고 어차피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바라지도 않고 그냥 쓰는 거 자체가 즐거운 시기. 오히려 붙는 걸 기다리던 그 시기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다만 안타까운 건 한 번에 여러 개를 함께 할 만큼 머리가 좋지 못해서 요새 브런치를 자주 올 수 없다는 거다. 내 글을 올리지 않더라도 이웃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게 좋아서 거의 매일같이 들렸지만 지금은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


엊그제 복숭이를 아기띠로 단단히 메고 가파른 골목을 올라 어린이집 입학 상담을 하러 갔다. 한 시간여 상담 후 입소를 결정했다. 자리가 있다고 해서 입소 신청서까지 썼는데 마지막에 입소 대기에 걸어놓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1월이나 2월에 발표가 날 텐데 혹시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에 그러면 저도 다른 곳에 대기를 걸어야겠다고 말했다. 대책을 세워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자 바로 입소 확정이라는 소식을 알려주셔서 큰 숙제가 끝이 났다.


신랑은 그 얘기를 듣더니 내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냐며 놀라워했다. 싫은 소리, 똑 부러지는 소리를 유독 못하는 날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소 원서까지 주어서 그 자리에서 썼는데 대기로 걸어놔 입소 확정이 나지 않는다면. 그렇게 손 놓고 있다가 내년에 복숭이가 어린이집에 못 가게 된다면 그건 복숭이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그럴 때는 어린이집에서도 입장을 명확하게 표현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복덩이는 졸업 여행이 문제였다. 졸업 여행이 정해졌는데 갔다고 했다 안 간다고 했다 안 간다고 했다 이제 또 간다고 한다. 며칠 동안 그랬다.


내가 복장이 터져하니 그걸 지켜본 엄마가 슬쩍 얘기를 건넸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훨씬 더 했다고 말이다. 한 번도 한 번에 결정한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엄마의 말에서 한 번도까지는 좀 심하지 않았나 싶지만 그래도 그 말이 복덩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됐다. 그런 날 키운 엄마도 있는데 뭘 하고 말이다.

 

며칠 전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실 큰 유리창에 앵구 전두로 트리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늘 앵두 전구의 은은한 불빛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기억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이는 곁에서 내가 뜯어놓은 테이프를 때에 맞게 건네주었다. 게임을 멈추고 만들어야 하는 게 맘에 안 들었던 복덩이도 막상 만들어져 반짝이는 트리를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트리는 복덩이와 복숭이 만큼이나 반짝이고 예뻤다.


홈트는 지금 3주째 정말 컨디션이 안 좋았던 날 그날 하루만 빠지고는 계속 유지했다. 이제 땀구멍이 열려서 4분 정도만 해도 몸이 한 껏 따뜻해지고 8분 정도 후부터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눈으로 들어가려는 땀을 연신 쳐내기 바쁘다. 홈트를 할 때도 이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둘째가 다칠까 봐 피하면서 하느라 늘 정신이 없지만 그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이 감사하다.


그런데 어제 백신 2차를 맞으며 2주간 무리한 운동을 삼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당분간 홈트와는 작별이다. 이틀째인 오늘 하루만도 타이레놀을 3~4개나 먹었다.


복덩이와는 재미있는 사립초등학교 일화가 더 늘었다.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려던 마음을 완전히 접고 복덩이에게 사실을 털어놨었다.


"복덩아 사실은 복덩이가 견학 던 그 학교에 복덩이 보내려고 했었어. 근데 복덩이가 공부 지옥이라고 하고 싫어해서 안 가기로 했어."하고.


나는 복덩이가 정말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복덩이는 내 예상과는 완전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엄마. 안돼. 나 거기 꼭 가야 해."


나는 너무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 가야 더 훌륭한 사람 될 수 있잖아. 공부 많이 하니까."


복덩이가 표현만 안 하지 생각을 이것저것 많이 하고 있구나 깜짝 놀랐다.


내 욕심이 다시 고개를 들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아니야. 복덩이. 거기 안 가도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 될 수 있어. 그러니까 걱정 마."


복덩이는 그제야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이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고, 그래서 더 신비롭고 귀하다.


얼마 전에는 또 복덩이가 복숭이는 꼭 그 사립초등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둘 중 하나는 똑똑해야 한다면서.


동생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다 못해 공부까지 다 하게 해 주려는 복덩이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복덩아. 어쩌지. 저번에 복덩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복숭이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혼내준다 했잖아. 그래서 같은 학교 가야 하는데 우리 복덩이도 같이 그 학교 다녀야겠네."하고.


그러자 복덩이가 엄청 놀라며

"엄마 그러면 공부 제일 안 하는 학교 복숭이랑 같이 갈 테니까 찾아줘"하고 말한다.


이렇게 자주 말이 바뀌어서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아이가 더 자주, 더 반복적으로 한 말들을 떠올린다. 그게 아이의 진심일 테니까. 그 결과 우리 개구쟁이 복숭이는 아직 공부가 정말 하기 싫은 게 맞다.


내년에는 밤마다 육아에 대해 덜 후회하는 엄마가, 일상에서 주는 감사함은 더 많이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연말이 늘 바쁜 이유는 한 해를 무탈히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내년을 맞이하는 설렘을 다른 때보다 더 많이 느껴야 해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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