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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Nov 14. 2021

열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았어?

내가 네 삶을 열었으니 그것조차 내 몫임을.

우리 집 둘째 복숭이가 15개월 걷기 시작하며 집은 하나의 보물섬이 다. 호기심이 곳곳에 가 닿았기 때문이다.


복숭이는 이제 못 갈 곳이 없다. 기어서 식탁의자 사이로도 다니고, 옆에 있는 옷 서랍장을 붙잡고 소파 등받이 위에도 오른다. 책상 위에도 올라오고, 가족들이 저녁을 차리느라 수저를 놓고 반찬을 꺼내는 사이 식탁의자에도 제일 먼저 올라가 서 있다.


밥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입에 밥만 넣어줘도 오물오물 맛있게 먹고 말을 못 할 때는 김통을 붙잡고 흔들기도 했다. 이제는 "이거"라는 단어를 배워서 원하는 게 있으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거"라고 표현을 한다. 맛이 토속적이라 무나물부터 미역국, 곰탕, 계란찜까지 다 잘 먹는다.


배불리 복숭이 밥을 먹이고 겨우 밥을 뜨려 하면 밥 먹는 내내 내가 앉아있는 식탁 의자에 붙어 서서 밥을 받아먹는다.


입에 넣어주면 내가 먹는 속도보다 빨라서 빨리 달라는 채근을 들어가며 밥을 먹는다. 다 먹고 나면 혼이 쏙 빠져서 무슨 반찬하고 먹었는지, 어떤 맛이었는지가 기억나질 않는다.


이제 기저귀 가는 것도 난이도가 최상이 되었다. 자유롭고 짧은 두 다리로 기저귀 얘기만 나오면 쏜살같이 도망가기 때문이다.


걸어 다니는 곳곳에는 이미 떠난 복숭이의 흔적들이 남겨져 있다. 복숭이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꺼낼 수 있는 것들은 다 꺼내어져 바닥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방에는 간장통부터 시작해서 마늘 찧는 절구통, 프라이팬까지. 양푼이도 엎어져 있다.


무언가를 꺼내는 게 복숭이 보다 빠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아주 빠르게 일을 마치고 다른 걸 꺼내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집중력 있고, 집요하게 그곳에 있는 것들을 꺼낸다. 아이들의 옷장에 차곡차곡 개어져 있는 옷을 하나씩 잡아 톡톡 던지기도 한다. 하나씩 톡톡 던지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보고도 못하게 막지를 못했다. 치우는 동안 그 순간을 후회했다. 그냥 막을 걸 하고.


복숭이에게 위험한 것이라고 판단되는 서랍에는 모두 안전장치를 달아 놓았지만 꺼내놓는 것들은 늘 차고 넘친다. 그걸 보며 나는 우리 집에 열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았어?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내가 네 삶을 열었으니 그것조차 내 몫임을 깨닫는다. 어지럽혀 놓은 것들을 줍고, 담고,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면 복숭이는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하루 종일 따라다녀도 내가 늘 늦는 이유이다.


보이는 곳에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 불안감에 휩싸인다. 어지럽히는 것은 괜찮지만 아이가 다칠까 봐 말이다.


복숭이는 얼마 전 양쪽 볼에 연지곤지도 아니고 손톱만 한 멍이 들어 있었다. 뭐든지 밟을 수 있는 건 다 밟고 올라가는 탓에 자꾸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넘어지는 것에 비해 잘 다치지 않던 복숭이가 각자 다른 날 양쪽 볼에 든 멍은 내 마음에도 파랗게 멍을 들였다. 저 작은 아기에게 멍이 웬 말인지. 얼마나 아플까 걱정이 되고 안쓰러워 종종거렸다. 


복숭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지금도 온 집안을 탐험 중이다. 지금은 다행히 멍이 사라지고 뽀얀 아기 볼로 돌아왔다.


이제는 차라리 바로 앞에 붙어서 이 책 저 책 내게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을 그때가 그립다. 하루에 50권을 읽어도 좋고 100권을 읽어도 좋으니 말이다. 사실 지금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긴하지만.


머리숱이 얼마 없는 복숭이를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에게 머리를 깎였느냐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니요. 한 번도 깎은 적 없어요. 이거 영혼까지 끌어 모은 거예요."라고 농담을 했다.


그런 복숭이가 요새 머리숱이 꽤 많이 늘었다. 나는 가족들 앞에서  "우리 복숭이 머리가 엄청 길었네. 땋아도 되겠어."하고 말한다. 이제 겨우 손가락 마디만큼 자랐는데 말이다. 거기다 아직 모발 숱이 적어 곳곳에 두피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근데 그래서 더 아기새 같고 좋다.


애교가 많은 복숭이는 걸으며 애교를 맘껏 발산한다. 내 뒤로 가 등에 붙어서는 고개를 쭉 빼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럴 때면 진짜 심장이 녹아 없어지는 것 같다. 뽀뽀를 해달라고 애원을 해도 고개를 휙 돌리며 해주지 않다가도 가끔은 먼저 다가와 말없이 뽀뽀를 해준다.


오리 하면 "꽥꽥"하고 화답을 해주고 돼지 하면 "꿀꿀" 대답을 해준다. 사자 하면 "어흥"하고 소리를 내주고, 사랑해요 하면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사랑해요를 해준다.


가장 압권은 걷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알아들으면 알아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하고 대답을 해준다는 거다.


"복숭아 우유 줄까?" 고개 끄덕 "응"

"복숭이 이거 읽고 싶어?" 고개 끄덕 "응"


그전까지는 혼자 질문과 짐작까지 1인 2역을 했다면 이제는 복숭이가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정말 복숭이 육아에 있어 유레카이다.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을 때는 그 대답이 야속하다. "복숭아 그거 하면 안 되지요?" 하면 고개 끄덕 "응"을 해놓고 못 알아듣는 척을 하며 하던 걸 천연덕스럽게 다시 하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 형아,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어디 있는지를 물으면 손가락으로 그 사람을 가리킨다. 복숭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진다.


사실 복숭이는 지금 숨만 쉬어도 이쁠 때다. 복숭이에게 거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복숭이를 보며 7살 첫째의 육아에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나이에 맞게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하지 않았을 때 나는 복덩이에게 복숭이에게 하듯 부드럽고 다정하게 했는지를 떠올려 다. 근데 그러지를 못했다.


양치를 시키고 있는데 움직인다거나 밥을 스스로 먹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먹여달라 떼를 쓸 때 나는 아이보다 급했고, 강한 어투로 말했다.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전 조금 더 아이를 기다려줬어야 했고, 그래도 해야 하면 좀 더 부드럽고 다정하게 해도 좋았을 것이다. 복숭이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감내하고 훨씬 많은 것을 하고 있는 복덩이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면서도 종종 다정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했다.


신랑에게 느끼는 감정도 다르지 않다. 복숭이와 복덩이보다 많은 것을 감내하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가장 쉽게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정말 반성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가을에 색색의 물이 드는 것처럼 반성으로 물들인다는 것은 바꿀 여지가 있다는 것이기에 희망을 본다. 나는 더 부드러워질 수 있고, 더 일관적인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다시 복숭이 얘기로 돌아와 나는 복숭이를 보고 있는 게 너무 좋다. 복숭이는 꼭 20번, 30번 다시 봐도 좋기만 한 애장 하는 책이나 영화 같다. 좋아하는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정도로 많이 봤어도 그때마다 느끼는 감동이 다른 것처럼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감동적이고, 사랑스럽고  보고만 싶다.


솜털 같은 머리칼을 쓰다듬는 게 좋고, 물장난을 해서 젖은 옷을 갈아입힐 때도 힘든 줄 모르겠다. 통통하고 몰캉몰캉한 손이 좋고 짧고 단단한 다리가 좋다. 봉긋한 발등이 좋고 많이 먹고 나면 볼록한 배가 좋다. 반짝이는 두 눈이 좋고 넓적한 앞니가 좋다. 머리보다 숱이 많은 속눈썹이 좋고 커다란 귀가 좋다. 복숭이가 내 아들이어서 좋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 나의 어떤 것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존재. 그게 복숭이어서 좋다.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내게 천국임을 늘 잊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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