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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Nov 20. 2021

주말부부, 겨우 백마를 끌고 온 왕자가 자고 있다.

첫째 둘째 나는 다 깼는데.

요즘 아들 둘 육아가 혼자서 너무 벅차다.


위드 코로나로 접어들며 엄마의 연수원은 다시 문의 전화와 예약 전화로(과장을 조금 보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그건 이제 엄마의 얼굴을 보기가 다시 어려워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 주도 월요일에 잠깐 얼굴을 본 게 마지막이다.


신랑은 계속 이제 끝이 보여간다는 말로 막바지 위로를 하지만 실상은 더 바빠졌다.


설상가상 주말부부로 지내는 게 11월 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내게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었겠다며 12월까지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그걸 듣는데 정말 분노와 짜증이 하늘까지 솟구쳤다. 전화 너머에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길.)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힘들다는 말로 다 담을 수도 없는. 


며칠 전부터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하루는 자고 일어났더니 입술이 다 찢어져(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입을 벌리는 것조차 따갑고 아팠다. 하루는 일어났더니 혓바닥에 혓바늘이 다 돋아있었다. 입이 멀쩡했던 어느 날은 둘째가 고개를 들다 입술을 박아 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이때가 정말 제일 아팠다.


요즘 둘째는 정말 하루에도 옷을 네, 다섯 번씩 갈아입는다. 강아지도 아닌데 휴지를 보면 다 뽑아서 찢어놓고 뚜껑이 덜 닫힌 물티슈를 발견할 때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나게 뽑아서 여기저기 던진다. 근데 그 모든 건 정말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서 허무하게 결과만을 볼 때가 많다.


형이 마신다고 떠놓은 물을 쏟아서 온 몸을 흥건하게 적시는 건 여사고 자신의 물통마저 잘 마시다 내가 잠시 한 눈 팔기 무섭게 뚜껑을 열어 쏟아버리고 그 자리에 엉덩이를. 아... 


그리고 형이나 내가 먹는 건 다 맛을 보려고 하는데 평소에 먹던 게 아니면 물고만 있을 뿐 씹어 삼키질 않는다. 근데 문제는 물고 있던 침이 가득한 음식을 언제 어디서 뱉을 줄 모른다는 거다. 따라다니면서 닦고 치우는데 그럴 때면 정말 팔이 두 개로도 모자라다.


냄비란 냄비는 다 끄집어내고 가지런히 정리된 탁자 위 물품들은 가차 없이 쓸어서 던져버린다.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복덩이의 학용품들이 꼭 내 모습 같아 치우면서도 눈물이 난다.(진짜 운다는 건 아니다. 아이가 둘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는데 가뜩이나 보호자는 나뿐인데 내가 울면 될까. 속으로 운다. 나는 매일 요즘 속으로 운다.)


원래 엄마가 집에 있을 때는 내가 첫째를 재우는 동안 둘째를 봐주는데 그게 정말 이렇게 큰 지 몰랐다. 역시 없어봐야 안다고 엄마의 그 빈자리가 태산같이 크다. 엄마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이 말을 해서 엄마가 올 수 있다면 밤을 새우고라도 할 수 있지만 이제 겨우 정상궤도에 들어선 연수원을 보며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그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느라 고단하고 힘든 엄마를 알기 때문이다. 나도 철이 들긴 들겠나 했는데 자식을 낳아보고 기르는 동안 아주 조금은 나도 철이란 게  것 같다.


아빠는 사실 존재 자체는 든든하기 그지없지만 육아에 있어 없는 것과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비빌 언덕이 기댈 곳이 없. 힘이 들고, 고돼도 결국은 다 내 몫이다.


열두 시가 넘게까지 아무리 재우려고 애를 써도 자지 않던 첫째는 내가 자야 한다는 소리만 해도 적반하장으로 나보고 나쁘다고 한다. 둘째 복숭이처럼 본인도 자기가 싫다면서.


그럴 때면 정말 맘 같아서는 잠 안 오는 둘은 신나게 놀아라고 하고 나 혼자서 편하게 자고 싶다. 하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정말 가끔씩 아이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제발 그만해 달라고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라 그래 봤자 먹히지가 않아 아예 포기를 달고 산다.


겨우 둘째가 자기 직전까지 가면 첫째가 자기 싫어 둘째를 깨우고 첫째를 재워야 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가 시끄럽게 형의 잠을 쫓는다.


그러다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나면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거처럼 몸이 고단하고 쑤시다. 다리 한쪽은 저리고 감각이 둔하기까지 하다. 이번 주는 컨디션이 자꾸만 떨어져서 타이레놀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홈트를 할 때도 안 빠지던 살이 다 빠지고 있다. 물론 그때 했던 운동 덕분에 기초대사량이 높아져서 일수도 있지만 둘째를 따라다니며 하는 뒤치다꺼리의 강도가 점점 최상을 기록하는 요즘이라 살이 빠지는 이유가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루빨리 다시 홈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은데 홈트를 하고 몸살이 나면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다는 걱정에 2차 백신을 맞은 후 자꾸 홈트를 미루게 된다.


언제쯤 이 일상이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설까. 우리 신랑은 언제쯤 집에 올 수 있을까. 다 까마득해서 멀미가 날 지경이다. 정말 맘 같아서는 그런 슬픈 소식을 알려준 신랑에게 두 아이를 모두 맡기고 오고 싶다. 당해봐야 내 심정을 알 테니 말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이쁜 두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육아 앞에서는 신랑이래도 별 수가 없을 것이다.


홈트 동작 중에 주먹을 뻗는 동작이 있다. 실제로 치는 것처럼 힘을 주라고 하는데 그때 누군가를 떠올려야겠다. 이번 글만큼은 신랑이 바빠 보지를 못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다. 날 고단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건 아이들인데 그 화는 모두 신랑에게 돌아간다.


그런 신랑이 금요일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계속 자고 내일 오라던 내 톡을 보고 전화가 왔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쳐서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울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지, 쉬게만 해줘야지 몇십 번을 되뇌었다. 이번 주는 그에게도 더 독했던 한 주였기 때문이다. 특히 어제는 무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 내일 오라는 내 말을 만류하고 하루 못 잔 것쯤은 티도 안 날 수 있다는 신랑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웠다.


비록 내가 바라는 백마 탄 왕자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가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날 돕기 위해 온다는 게 백방 위로가 되었다. 그는 정말 티가 거의 안 나게 나와 같이 아이들을 돌봤다. 몇 번이고 얼른 자러 가라 했지만 그는 그러질 않았다.


살면서 나 자신보다 더 아까운 존재가 내 삶에 나타난 건 신랑이 처음이었다. 그게 이제 아가들한테로 가버렸지만 신랑이 극한의 상황에 처할 때면 안쓰러움과 안타까움과 아까움은 말로 다 표현이 안 된다. 존재 자체가 너무 귀한 사람이다.


그다음 날 아이들은 9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나 깨웠다.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재빨리 신랑이 자는 곳을 빠져나왔다. 세상모르고 자는데 그 모습이 또 예뻐 보일 건 뭐람하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가 늘어지게 자는 모습이 좋았다. 내가 있는 이 집이 그에게 언제나 안락하고 편안한 곳이기를 바란다. 집은 그런 곳이어야 하니까.


여기까지만 적으면 평소에도 내가 헌신적이기만 할 거 같지만 반전은 지금부터다. 주말부부 후 토요일에 제일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대부분 나다.

신랑이 한 주 동안 두 아이를 돌본다고 힘들었을 거라며 배려를 해 준 덕분이다. 나는 그 덕에 다시 힘을 내서 두 아이를 혼자서도 돌볼 힘과 여유가 생겼고, 날 생각해주는 그를 그가 힘들 때 챙길 만큼 어른스러워질 수도 있었다.

 

자면서 숨을 내쉴 때 푸를 자꾸 찾는 신랑이 귀여워 보이는 건 또 자고 있는 얼굴을 오밀조밀 뜯어봐도 지겹지 않은 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와 함께인 지금 내 마음의 앵두 전구에도 불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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