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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Nov 22. 2021

아무것도 못해줬다는 말을 쓸 줄 모르는 신랑.

그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야.

신랑은 결혼기념일이 되기 일주일 전부터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해 보이고, 안절부절못해 보였다. 내게 뭘 받고 싶냐는 말을 인사처럼 건네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갖고 싶은 것도 그래서 받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내 결혼 생활에서 나는 더는 가지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신랑에게 내 마음을 말했다. 자기만 옆에 있으면 충분하다고. 물리적 거리만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건강하게 내 곁에 살아있어 줌에 감사했기 때문이다.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말보다 진솔하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랑은 거의 매일같이 같은 질문을 했다. "뭐 받고 싶어?"


연차에서 밀린 신랑은 결혼기념일에 월차를 쓰지 못했다. 대신 바로 다음날 화요일에 월차를 써서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결혼기념일 날 신랑은 비록 일을 끝내고 와야 했지만 밤 12시 장문의 편지가 카톡으로 전송되었다. 편지만큼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벅차올랐다. 더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드디어 대망의 결혼기념일 날 저녁이 되었다. 신랑은 케이크를 사 오겠다고 했고 나는 예전에 받은 스타벅스 쿠폰을 써서 커피와 조각 케이크로 축하를 하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결혼기념일에도 케이크를 살 돈으로 억척스럽게 우리 아가들 내복하나 더 사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랑은 지친 몸을 이끌 겨우 집으로 왔다. 일만으로도 피곤했을 텐데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왔으니 기운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애써 웃어 보이는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그런 그에게 든 해주고만 싶었다.


"오늘은 자기 생일이나 마찬가지야 자기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해."고 말했다.


사실 나도 이것저것 선물을 고르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신랑에게 제일 필요한 건 옷이었다. 그런데 막상 정할 수가 없는 게 내 옷을 고를 때도 나보다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잘 고르는 신랑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돈을 부쳤다.


신랑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가 날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돈까지 받아버려서.


그의 안절부절은 더 심해졌다. 내가 받는 것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자기를 만나 떤 하루도 특별하지 않은 하루는 없었고 매일이 축제 같아서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마음이 꽉 다면서 말이다. 자기가 내 신랑인 것만으로도 나는 빈틈없이 행복하다고도 말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 위해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는데 나는 괜찮다며 그가 술을 편하게 마실 수 있게 해 주었다.


서로 배려하는 모을 보며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도 서로를 아끼는 이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으.


그렇게 결혼기념일의 밤이 여느 날과 같이 저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클라이맥스는 모두 다음날에 일어났다. 마치 그날이 결혼기념일인 것처럼.


나 대신 아이 유치원 보내느라 신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덕분에 는 귀하디 귀한 아침잠을 더 잘 수 있었다. 그의 노고로 인해 너무 편안했고 일어나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이 개운했다.

 

그 후 우리는 함께 바빴다. 정말 감사하게도 복숭이를 봐주셔서 우리끼리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출을 앞두고 집 청소를 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그는 집안 청소를 했다. 집이 깨끗해지는 동안 내 마음도 점점 가벼워지고 깨끗해졌다.


신랑은 한참 전부터 결혼기념일 준비로 분주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큰 백화점에 가서 옷도 사주고 싶다고 하고, 밥도 먹고 디저트도 사주고 싶다고 했다. 빵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조차 우연히 그곳을 갔을 때 먹음직스러워 보였다면서. 그런데 나는 정말 어렵게 얻은 이 자유를 건물 안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가장 규격화된 백화점에서.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싶었고, 자유로이 천장 없는 곳을 찾아 누비고 싶었다. 지그재그로도 걷고 통통 뛰어보고도 싶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뷔페에 갔다. 코로나에 아이가 어리다 보니 정말 정말 오랜만에 음식점을 가는 거라 여러 가지를 맘껏 먹고 싶었다. 식은 맛있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맛있었던 걸 추천해주기도 하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그 후 나는 신랑과 등산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학생 때 가족과 여러 번 가봤던 등산로 그를 데려가고 싶었다. 어쩌면 그를 몰랐던 시절의 나조차도 공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근처 세차장에 미루고 미뤘던 실내세차를  맡기고 걸어갔다. 그런데 내가 워낙 길치라 등산로 입구를 찾는 게 자꾸만 헷갈렸다. 거기다 생각보다 멀어 30분 가까이 걸었어서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이미 힘이 다 빠졌다. 


힘이 다 빠진 이유는 가는 길에 너무 기분이 좋아 노래가 절로 나오고 자꾸만 웃었기 때문이다. 그와 대화 중에 숨만 쉬어도 까르르 웃는다고 걸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와 단 둘이서 평일 대낮에 이렇게 손을 잡고 걷는 게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는 등산로 입구에 있는 바위에 앉아 피톤치드 잠시 마시고는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세차하는데 시간이 걸려 카페에 갔다. 케이크와 아메리카노 세트를 시켜서 앉아 있는데 그곳이 천국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맞은편에 있고 달콤한 디저트가 있으니까. 


우리는 깨끗해진 차를 타고 집 근처 옷가게에 들러 아이들 옷을 사고 우리 옷도 샀다. 내가 준 돈을 이렇게 다 써버리는 거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신랑은 돈을 쓰면서도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신랑이 주문해놓은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커다란 황금 장미 한 송이가 나무처럼 있었고, 그 앞에 반지를 끼워주며 한쪽 무릎을 꿇은 신랑과 꽃다발을 든 채 손을 내민 신부가 유리병 속에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그게 너무 귀하고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우리 거실에 있는 웨딩 액자에 있는 포즈와 같은 건 우연이 아니겠지. 지금도 카카오톡 뒷배경에 우리 결혼사진을 해놓은 신랑의 진심이 이 선물에서도 느껴져서 정말 감동을 다.


신랑은 이렇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만 이면서 계속 아무것도 못해줬다며 어쩔 줄 몰라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하면 그런 신랑 순수한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회사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 신랑은 내게 계속 착하다고 했다. 착해서 이렇게 별 거 아닌 일들에도 기뻐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모른다. 내게는 그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다 별 거였다는 걸. 정말 1분 1초도 버릴 게 없이 값지고 귀했다는 걸.


실내 세차장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한편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그 순간마저 그가 옆에 있어서 벅차고 기뻤다는 걸 그는 알까.


나는 그가 소박해서 고맙다. 내게 원하는 걸 자꾸 덜어내기만 하고 채우지 않아서 미안하다. 그리고 그런 그서 무척이나 고맙다.


내게 그는 그와 단 하루라도 사랑에 빠졌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인데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정도가 아니고 복에 겨운 사람이다.


10년, 20년 후에도 그가 곁에 건강하게 있어주기만 한다면 다른 선물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 그가 내 삶에서 감히 바라지도 못할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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