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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Nov 25. 2021

7살 아이가 식구들 다 자면 집을 나가려고 했다.

복덩이는 기질이 순하고 유해서 나와 부딪힐 일이 없을 것만 같은데 부딪힐 일은 일상에서 자꾸자꾸 생긴다.


유튜브와 게임이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고 그 외에도 나열하면 손이 아플 만큼 다양한 부분에서 크고 작게 부딪힌다.


예를 들면 양치 한 번을 시키려 오라 할 때도 한 번만 불러서 오는 적이 없다. 여러 번 불러서 겨우 온 복덩이는 양치를 하는 동안 자신이 할 때는 저 멀리 가서 뛰어다니며 하기도 하고 내가 할 때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남자아이의 활동성을 내가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싶지만 양치할 때만이라도 가만히 좀 있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샤워를 시킬 때만 해도 그렇다. 머리를 감기느라 머리에 샴푸칠을 하고 있으면 자꾸 허리를 말아서 뒤로 슬금슬금 도망을 간다. 안 그래도 복덩이 키에 맞추려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는 참다 참다 결국 채근을 하거나 목소리가 커진다.


샤워타월에 비누칠을 할 때면 벌써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아. 아파 아파." 하며 소리를 낸다. 난 정말 억울하다. 아프게 한 적도 없고, 직접 비누칠을 할 때 아프다고 한 적도 없으면서. 그 소리는 결국 점점 더 커지고 반복되다 노래가 되어 작은 욕실을 메아리. 정신이 쏙 빠진 나는 결국 조용하라고 한 소리를 한다.


요즘 복덩이는 내가 화를 낼 때면 자신이 없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보통 저 말은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 슬쩍 꺼낸다. 그런 복덩이에게 미안했고, 꼭 고쳐야지 마음먹을 때가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말을 잘 들을 생각이나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며 끊임없이 내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좋은 엄마인가는 터무니없이 과하고 나는 엄마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인가 하고 말이다. 아이와의 의견 충돌 후 아이가 날 밉다고 하며 엉엉 울 때는 그 마음이 더 커진다.


가 뭘 잘못한 거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인 지점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그때는 나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는 더 이상 물러날 때가 없다는 마음이 커서였던 것 같다. 


물론 내 기준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한 발짝 양보할 마음이 없었던 거다.


복덩이는 요새 먹지 않는 음식 재료들이 늘었다. 계란, 어묵, 새우, 멸치다싯국물로 된 국 등등.


요새 저녁이면 몸이 간지럽다는 복덩인데 음식을 가려먹은 탓은 아닌지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저녁 메뉴로 나간 소고깃국을 복덩이가 먹지 못한다고 거부하며 싸움이 벌어졌다.


복덩이는 소고깃국을 입에 넣자마자 웩하고 소리를 내며 먹질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그전에 잘 먹었던 음식인 거 같은데 먹기 싫다는 생각만으로 저런 행동을 하다니 화가 잔뜩 났다.


세 번만 먹고 그 음식은 그만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복덩이는 6번을 시도했지만 똑같이 먹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아예 식판을 그대로 가지고 주방으로 가버렸다. 내 딴에는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초강수였다.


어차피 다른 반찬과 이른 저녁은 먹었고, 한 그릇 더 먹는 거라 편식을 할 바에 안 먹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고는 잘 시간이 넘어서 자야 한다고 했다. 복덩이는 잔뜩 화가 나서 내가 없이 자겠다고 했다. 깜깜한 방에 혼자 자는 걸 싫어하는 복덩이도 자기 딴에는 초강수를 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있다 마음이 쓰여 방으로 들어갔다. 복덩이는 정말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내가 가니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정말 먹으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안 된 거였는데 엄마가 그것도 몰라주고 자신에게 화를 냈다는 말을 했다. 사실 중간에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등짝을 한 대 때렸는데 그게 아이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나 보다.


아이는 내 곁에 있기 싫다며 저리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밉다고 했다. 나는 그때서야 아이의 말을 들어주었다. 복덩이는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들면 기다렸다가 나갈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사뭇 진지한 복덩이의 말투에 머리가 쭈뼛섰다. 정말 나가는 건 아니겠지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말만 그렇게 했지 한 번도 진짜 나간 적은 없었던 복덩이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대신 우리 복덩이 마음에 그런 생각을 들게 한 나 자신이 미웠다. 자꾸만 아이 마음을 아프게 한 부족한 내가 미웠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달래고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복덩이에게 이 말을 했다.


"복덩이가 이렇게 자꾸 엄마 밉다는 말하면 자고 일어나서 엄마가 바뀌어있을 수도 있어. 소원인 줄 알고 이루어져서." 하고 말했더니 그건 안돼 하며 또다시 날 붙잡고 운다.


"바뀌는 건 싫어"하며 말이다.


당장은 내가 싫다고 울고 있는 아이지만 바뀌는 건 또 안 된다는 아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눈에서는 하트가 뿅뿅하고 생겼다. 절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게 내 새끼인 것 같다.


나는 복덩이와의 일에 있어서 너무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먹지 않은 것은 그저 소고깃국 하나일 뿐이었는데 이렇게 편식을 심하게 해서 아프거나, 제대로 성장을 할 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뻗어 나가니 말이다.


예의범절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의 일만 보면 별 거 아닌데 이걸 지금 지적하고 하나하나 고치지 않으면 아이가 버릇없는 아이로 크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에 아이를 채근했다. 그때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아이는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자주 잊는 듯했다.


나는 결국 모든 부분에서 다 졌다. 아이가 저리 서럽게 우는 걸 참아내질 못한 것이다. 소고깃국을 먹는 건 시간을 더 두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편식의 기준이 각자 다를 텐데 복덩이는 그래도 먹을 수 없는 것보다 먹을 수 있는 게 훨씬 많은 아이인데 내가 너무 했나 싶기도 했다.


한참을 토닥거리며 달래자 아이는 갑자기 더 놀아야겠다고 했다. 자기는 운다고 제대로 놀지를 못 했다면서. 이미 시간은 평소 잘 시간을 넘겼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최소한의 규칙이라도 지키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나와는 달리 규칙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복덩이 앞에서 나는 서서히 무너졌다. 어르고 달래며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또 속상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참다못한 나도 정말 정말 참았던 울음이 나왔다. 온 마음을 다하여 아이를 위해 했다고  일들은 자꾸 어긋나 아이도 나도 속상한 결과를 가져오고. 한 고비 넘기고 나니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나 혼자서는 너무 벅차다는 생각도 들어서 어깨를 떨며 울었다.


이제는 주객이 전도돼서 울고 있는 내게 다가와 복덩이가 토닥이기 시작했다. 본인이 너무 심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까는 내가 생각이 부족했어라는 말로 날 달래주었다.


나는 이 작고 소중한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건지 키우면 키울수록 알 수 없었다. 육아가 가장 어려웠다. 좋은 엄마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내 고집으로 인해 내 실수로 인해 아이가 상처 받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화해를 했고 결국 내가 다 지고 말았다. 더 놀고 밥도 다시 먹는데 소고깃국은 제외한 식단으로 먹게 됐으니 말이다. 언제 잘지 눈앞이 깜깜했지만 아이의 기분은 최상이었다.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올라갈 기세였다. 노래를 부르고 펄쩍펄쩍 뛰어다녔으며 춤을 췄다. 


이 사소한 변화에도 이리 좋아해 주는 아들인데 내가 너무 했나 싶기도 하고 또 내가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지 기다려야 하는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기준으로 아이에게 편식이 심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지 결심했다.


엄마가 아이는 자라며 수 백번을 바뀐다고 했으니 기다려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지. 그 전에도 골고루 잘 먹었으니까.


티브이 시청 시간, 유튜브 시청 시간, 자는 시간, 밥을 먹을 때의 자세, 샤워를 하러 가는 일, 옷을 입는 일까지 내가 개입해야 하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아이와 부딪힐 때면 속상할 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럴 때면 나는 늘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왜 그래야 하는지 차분히 이유를 설명해줘야 하는데 윽박부터 질렀던 것 같다. 그게 반복되다 보면 없던 반항심도 생길 텐데. 나는 왜 더 상냥하고 다정하게 말하는 엄마가 될 수 없었을까 나를 되돌아본다.


복덩이는 사실 단순하다. B사에서 할인행사를 하고 있는 치즈스틱 2개면 세상 행복해지고, 먹을 수 있는 반찬 한, 두 가지만 있어도 착하게 밥을 한 공기 비워낸다. 두 공기씩 먹을 때도 많다. 옷도 본인이 입어야 하는 스타일을 찾고 고집한 적이 없다. 그냥 주는 대로 척척 입는다. 장난감 사달라고 떼쓴 적 없고, 동생이 지지 않으려 덤벼도 감정을 실어 세게 때린 적도 없다. 속상해서 엉엉 울었으면 울었지. 기분이 조금만 좋아도 춤을 추며 애정을 맘껏 표현하는 흥이 많고 표현이 많은 아이이다.


그런 복덩이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 시간이 아닌 아이의 시간으로 기다려주기. 성격이 급한 나는 기다리는 대신 아이를 다그칠 때가 많다. 여러 번 말하는데도 안 듣는다며 한 번에 듣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얘기하면서. 그래서 더 미안한 게 많은 엄마이다.


결혼은 한 번밖에 못한다는데 왜 아빠랑 결혼했냐며 속상해하며 말할 만큼 엄마를 좋아해 주고 자기 전이면 꼭 사랑해. 고마워. 좋은 꿈 꿔라고 말해준다. 엄마가 아플까 봐 안마도 많이 해주고 동생과 나누는 것에 있어서도 마음이 넓다.


오늘도 내가 그렇게 밉다면서도 엄마가 바뀌는 건 안 된다며 날 꼭 껴안는 아이를 보고 아이에게 배웠다. 어쩌면 사랑을 주고 온 마음을 다하는 건 엄마뿐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에게 온 마음을 다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고마움을 너무 몰랐던 거 같다. 아이가 듣고 싶은 말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마음이 아플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할 거라는 걸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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