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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Nov 28. 2021

가장 친절한 휴식.

뜨거운 커피 한잔이 이렇게 좋을 일이야?

나는 차가운 것보다 뜨거운 것을 좋아한다. 추운 겨울보다는 뜨거운 여름이 좋다. 보글보글 끓인 물로 타는 차는 또 얼마나 향긋한지.


그런 나는 커피 취향도 확고했다. 기만 하면 된다.


따뜻할수록 커피의 진면목이 더 잘 드러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커피의 진한 맛과 향이 꼭 커피의 온도와 비례하는 것처럼 말이다.


목 넘김이 따스한 커피 한 모금이면 온몸 긴장이 풀리며 피로 또 풀리는 거 같은 착각에 빠졌다.


두 모금 째에는 일상의 바쁨마저도 허둥대지 않고 커버 수 있을 용기마저 생겼다.


그랬던 내가 뜨거운 커피를 멀리하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이다.


아이는 내 삶에서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그러기 위해서 나답다고 여겼던 많은 습관과 취향을 바꿔야 했다. 뜨거운 것들은 혹시나 아이의 손에 닿을까 싶어 멀리했다.


나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칠칠치 못한 내가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고, 의식주를 책임지고, 건강하게 키워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 모든 게 기적같이 느껴질 만큼.


활달하고 밖에 나가기 좋아했던 나는 이제는 집이 제일 편하고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 곳만 찾아다녔다.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맛집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행복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 알게 됐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매일 먹는 밥일지라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슴 벅찼고 행복했으며, 매일 보던 풍경들마저 태어나 처음 보는 풍경처럼 황홀했다. 모든 게 그랬다.


아이의 성장은 어른의 성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라서 어제 했던 재주를 다음날 하지 않을 때가 허다했다. 그런 아이와 보내는 일상은 매 순간이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두고 싶고, 동영상을 찍어서 녹화해두고 싶을 만큼 소중했다.


그러느라 바뀐 취향과 습관은 어느새 또 다른  되었다.


커피전문점에 가면 아이스만 시키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집에서 더했다. 아주 가끔 커피 믹스가 당겨서 믹스를 태워먹더라도 뜨거운 물 아주 조금에 커피만 녹인 다음 차가운 물을 콸콸 부어 얼음까지 동동 띄어서 마셨다. 아메리카노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커피를 보지도 못 사람처럼 차가운 커피만 주야장천 마셨다.


그랬던 내가 첫째 아이가 7살, 둘째가 16개월이 되었을 때, 우연찮게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됐다.

일요일이면 다시 회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랑과 쉬움을 달래려 디저트와 커피를 배달했는데 모르고 커피를 뜨거운 것으로 주문한 것이다.


처음 커피를 받아 들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뜨거운 커피였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나는 커피에서 나는 고소하고 진한 향기에 코를 벌름거렸다.


'그래. 바로 이거지.' 정말 그리웠던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들떴고 설레기까지 했다.


두 손을 다 사용해 잔을 안아 들듯이 해서 마시는 커피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돌볼 아이 없이 나 혼자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이 여유 얼마만이지 정말 상상도 못 하겠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건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일뿐이지만 이건 분명 일상이 내게 선물한 가장 친절한 휴식이었다.


뜨거운 커피 향을 맡으며 커피를 한, 두 모금씩 홀짝이고 있는 이 시간이, 그러면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달달하다 못해 벅차게 행복하다.


사실 더 좋은 이유는 지금 둘째가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매일이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두 아이들을 돌보던 평일과는 달리 둘째가 깨어도 "아이고. 우리 아가 일어났어."하고 말 건네며 돌봐줄 신랑 곁에 있다. 더군다나 첫째는 할머니와 잠깐 외출을 나갔다. 내가 콧노래를 부르는 이유이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오늘 처음 실감하는 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이 이렇게 값진 것인지를 뜨거운 커피 한잔이 내게 다시 넌지시 일러주었다.


정말 오늘 이 뜨거운 커피 안 마셨음 어쩔 뻔했나 눈앞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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