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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12. 2022

나의 행복 치트키는.

하루는 등굣길에 아이가 태권도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는 혹시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부터 했는데, 하굣길에 군것질을 하고 싶어서 그만두고 싶은 거라고 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예상에서 벗어나는 대답을 하니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아이의 말이 맞았다. 우리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군것질을 할 수 없었다. 방과 후 수업도 해야 하고, 태권도 학원에도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학원 차를 타고 오니까 어디에도 들를 수가 없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다. 우리 집 근처에는 20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큰 시장이 있는데 그곳이 떠올랐다. 학원에서 돌아와서 그곳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생각을 말로 전했는데, 아이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아이와 함께 갈 시장 나들이가 설레기 시작했던 게. 주말에 신랑과 함께 가는 게 아닌 평일날 나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는 시장 나들이는 어떤 느낌일까.


다음날 아이가 태권도 학원에서 돌아왔을 때, 시장에 갈 힘이 남아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힘도 많고, 시장에도 가고 싶다고 해서 우리의 시장 나들이가 시작됐다.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와 나란히 걸어가는 그 길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나들뜨게 해 주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가니, 걷고 있는 그 모든 걸음걸음이 기쁘고 벅찼다. 유모차에 타고 있는 둘째의 오동통한 볼이 살짝살짝 보일 때면, 부쩍 자란 첫째 아이가 나와 발걸음을 맞추고 걸을 때면, 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아이는 시장에서 두 개만 사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어떤 희귀한 걸 고를까 걱정도 되었지만 아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시장 길목 길목마다 오만가지 신기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비늘이 반짝이는 생선들부터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야채들이 매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늘 쪄서 나온 포슬포슬한 떡은 부드러워서 입에 넣음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거 같았다. 갓 건져낸 튀김은 당장이라도 가위로 총총 썰어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고 싶었다. 시장표 뜯어먹어야만 먹을 수 있는 콜라겐 가득한 족발은 또 얼마나 윤기가 나는지. 군침이 도는 걸 다 사려면 가져간 삼만 원을 다 쓰고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저 눈으로만 구경을 하고 아이가 사고 싶은 두 가지만 사가야지.' 싱싱한 재료들과 맛있는 음식들 앞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가 가장 먼저 고른 건 컵강정이었다. 닭강정을 컵에 담아 주는 것인데 어릴 때 생각이 나서 내가 더 반가웠다.


맛깔스러운 음식들 앞서 풀어질 대로 풀어진 내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내게 한 꼬치도 허락하지 않았다. 둘째도 허기가 진지 칭얼대기 시작했지만,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절박한 마음으로 첫째에게 혹시 동생에게 줄 수 있는  없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다행히 닭강정에 있는 떡은 줄 수 있다고 했다. 덕분에 둘째는 형에게 받은 그 귀한 떡을 꼬치에 끼워 먹을 수 있었다. 그 후 둘째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한 번도 칭얼대지 않았다. 칭얼대는 대신 떡에 발린 양념을 손으로 쪽쪽 빨아먹는 소리가 났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웃기고 사랑스러웠다. 고기 한 점 얻어먹지 못했지만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떡을 조금씩 뜯어먹는데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보고 있는 내 입이 귀에 걸렸다. 지나치는 사람들도 아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귀여운지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씩 건넸다. 아이를 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따스해서 인파가 몰려 복잡한 시장이었지만 아늑하게까지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떡 하나를 다 먹은 둘째는 얼굴 여기저기에 떡꼬치 소스를 묻히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고 걸친 잠바에도 소스가 묻어있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마스크 줄에 걸린 마스크에도 온통 소스가 발려있었다.


첫째의 기분도 굉장히 좋아 보였다. 둘째와 고기를 나눠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을 듯했고, 매우 흡족한 모양이었다. 닭강정 맛도 입맛에 맞는지 아껴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처럼 우리끼리 간 시장 나들이가 재밌었던 것 같다. "다음에 왔을 때 어떤 걸 살까." 하며 다음에도 시장에 갈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아이 걸음으로 20분이면 꽤 힘들기도 할 텐데 부쩍 자라서 씩씩하게 걷는 첫째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동생에게 고기는 안돼도 떡을 양보하는 마음 씀씀이까지. 나도 둘째도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시장에서 보낸 아이들과의 시간은 나의 행복지수를 치솟게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행복지수는 떨어질 기미가 없었다. 우리 집 거실에는 텐트가 두 개나 쳐져 있었는데 첫째가 유치원 졸업을 할 때 받은 것과 둘째가 어린이날에 받아온 텐트였다. 아이들은 그곳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깔깔거리고 웃었고, 놀았고, 서로를 찾았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고 미소가 지어지는 풍경이었다. 방울토마토를 손으로 다 터뜨려 씨가 여기저기에 묻어있고, 닭강정을 먹느라 여기저기가 찐득하긴 했지만 그건 내 몫이었지 아이들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마음껏 어지럽히고 더럽혀도 좋으니 지금처럼만 해맑게 웃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커서도 지금처럼 티 없이 웃으며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내 행복지수를 최대치로 올려주는 치트 키이다. 또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채워주는 존재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 일을 멋지게 잘 해낼 수 있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서로를 아끼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지수는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언제나 평균 이상이. 피곤해서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날이라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절로 힘이 고,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던 날도 아이들의 말간 웃음 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다. 나의 매일이 감사로 가득할 수 있는 건 이 천사 같은 아이들이 내게로 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간부터 나의 카카오톡 메시지도 매 순간이 너무 행복해이다. 이 소중한 존재들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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