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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16. 2022

지금 자고 있는 사람, 당신 맞나요?

 잠들지 못하는 날 두고.

요일, 몇 년 만에 신랑은 혼자만의 1박 2일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친구가 혼을 앞두고 있는데 전에 만나 펜션에서 1박 2일을 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도 잘 아는 친구들이고, 평소 신랑이 가족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알기에 기꺼이 그를 보냈다. 신랑이 떠나고 억울한 마음도, 속상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오늘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마음을 먹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옷을 입혀 놀이터에 갔다. 오는 길에는 편의점에 가서 각자 원하는 걸 하나씩 샀다. 그걸 들고 옥상에 갔다. 곳에서 둘째는 흙 위에 앉아 흙을 가지고 놀았고 첫째는 나와 역할놀이를 했다. 나갔다 들어와서도 부지런히 아이들을 챙기느라 쉴 시간 없었다. 둘째가 얼마 전까지 열지 못했던 블록 상자를 열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에 다 들이부어버렸기 때문이다. 또 본인만 한 의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곳에 놓고 올라가 높은 곳에 있는 전자레인지를 눌렀다. 싱크대에 의자를 끌고 가서는 물을 틀고 설거지통에 담겨있는 물을 손으로 저어가며 물장난까지 했.


둘째는 요즘 어린이집에서 혼자 떠먹는 연습을 하는데 내가 숟가락으로 떠주는 것도 싫어했다. 한쪽 손으로는 밥숟가락을 들고 나머지 손으로는 그걸 받치면서 먹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하지만 밥을 한 번 먹고 나면 주변에는 온통 밥알이 흩어져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먹는 것도 아니라서 걸어 다니는 길마다 밥알을 흘렸다. 아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이것저것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그날 하루만도 몇십 번을 무릎을 꿇고 아이가 흘린 밥알과 부스러기들을 치웠다. 이렇게나 무릎을 자주 꿇고 온 집안을 기어 다니는데 무릎이 닳지 않은 건 기적에 가깝게 느껴졌다. 치우고 있는 동안에도 둘째는 가만히 있지 않고 물을 입에 머금었다가 옷에 뱉어냈다. 점입가경이었다. 이래저래 옷을 네 벌은 넘게 갈아입힌 것 같다.


그때 첫째가 정말 많은 힘이 돼주었다. 둘째가 들이부은 블록을 치우고 있을 때도 첫째가 돕겠다고 왔다. 나는 "우리 복덩이도 아직 아기인데 무슨 동생이 한 것까지 치워. 복덩이도 가서 쉬고 있어. 엄마가 할게. 괜찮아."하고 만류했다. 하지만 첫째는 내 말에 더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니야. 엄마. 내가 같이 할게. 엄마 혼자 너무 힘들겠어. 아빠도 없는데 내가 해야지." 하며 끝까지 담는 걸 도왔다. 아이는 평소에 하지 않던 정리정돈 하고 리모컨까지 열을 맞춰 세워놓았다. 그런 첫째가 없었다면 나는 수월하게 하루를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할 만큼 대견하고 고마운 첫째였다. 육아 만렙을 찍은 둘째는 아직 두 돌도 지나지 않아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젖살이 빠지지 않아 볼이 탱탱하고 찹쌀떡 같이 부드러 내 볼에 아이 볼을 비비면 언제 나를 고생시켰나 할 만큼 위로가 되었다. 


신랑 없이도 토요일을 꽤 잘 보낸 우리였지만 일요일이 되 목이 빠지고, 눈이 빠지게 그를 기다리게 됐다. 신랑은 세시 집에 왔다. 그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분이 좋았다. 없는 동안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안심이 되었다. 긴장이 풀리고, 몸이 노곤해졌다. 집에 온 후로 신랑은 내게 꼼짝도 하지 말고 쉬어라고만 했다. 본인이 다 할 테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우리 둘째가 있는 집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블록을 잘못 밟은 첫째의 발에 피가 맺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나는 서둘러 둘째가 다시 부어놓은 블록을 담고, 설거지를 했다. 신랑은 아이들의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그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좀 쉬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토요일과 다름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느라 나는 사실 쉴틈이 없었다. 저녁이 되어 아이들이 자면 그때서야 좀 쉴 수 있겠지 바랄 뿐이었다. 한 명이라도 자면 나머지 한 명을 신랑이 보고 쉬어야겠다 달콤한 꿈도 꾸었다.


저녁밥상을  신랑은 오늘까지만 술을 좀 마시면 안 되냐고 애교를 부렸다. 떨어져 있었던 기간이 하루였지만 신랑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느꼈던 나는 그에게 후한 상태였다. 그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싶었다.


그날 밤, 한 시간째 불 꺼진 방에서 첫째가 이불을 가지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동안 몇 번이나 "이제 그만 자야지."하고 어르고 달랬는데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둘째와 함께 있던 신랑과 체인지를 하고 나왔는데 한참이 지나도 아이를 재우고 나와야 할 신랑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내 곁에 있던 둘째는 여전히 쌩쌩했다. 반면 나는 자꾸 하품이 나와서 눈물까지 찔끔찔끔 났다.


 '이 시간에는 나도 자고 싶은데. 이젠 정말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 같으면 익숙하게 받아들였겠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라던 신랑의 말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끝이 좋아야 좋은 건데, 나오는 하품의 빈도만큼 잠든 신랑이 야속했다. 나는 그저 그가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덜 피곤했을 건데, 힘도 났을 텐데. 신랑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까지 곯아가며 잠을 잤다. 나는 그가 잔다고 읽지도 못할 카톡에 나도 잠이 온다고 자고 싶다는 투정의 말을 보내 놓고 열두 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그가 밉지않았다는 거였다. 신랑이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내 생각이 났다며  지역에서 유명한 여러 종류의 빵을 한가득 사 왔던 기억이 나서였을까.  아니면 와서도 계속 내 곁에 있으면서 해달라고 하지도 않은 안마를 해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한 말 다정하고 따뜻해서였을까. 고생했다, 고맙다는 표현을 수도 없이 해주었던 게 떠올랐다. 이제는 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안심이 되는 말도 함께 해주었었지.


나도 이제 결혼 9년 차쯤 되니 내가 좋은 것보다 그가 편하고 좋은 게 더 좋다. 비록 피곤했지만 그가 기분 좋게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곤히 잤으니 그걸로 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신랑의 피곤함에 대해, 고단함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맞춰진 포커스가 그로 점점 옮겨간 데에 변함없이 보여준 그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어서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 하루쯤은 그가 뱉은 말과는 다르게 일과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잠이 들어버린 게 밉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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