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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20. 2023

다시 또 빵점을 받아 오다니.

처음부터 잘할 거였으면 뭐 하러 어린이를 하겠어

받아쓰기 시험 결과가 발표되는 날다.


받아쓰기 시험 날,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글씨를 반대로 쓴 거 같다며 잘하면 한 개 맞고 아니면 다 틀렸을 거라 말했었다. 그래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알림장 앱에 공지가 떴다.


<오늘 처음 받아쓰기 시험 친 결과를 보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아이들의 점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다음에 더 잘하라고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말이다.


나는 우리 아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 점수가 그렇겠구나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어른들도 띄어쓰기가 어려운 부분들도 있는데 띄어쓰기까지 정확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을 거다. 


'그래. 괜찮다. 처음부터 잘할 거였으면 뭐 하러 어린이를 하겠어. 어른을 하겠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가끔 나는 아이를 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다. 하루종일 시험 결과에 신경이 쓰여 제대로 못 놀고 우울면 어쩌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라는 걸 제대로 느꼈다. 예상대로 성적은 빵점이라 했다. 그런데 얼굴에 그림자는커녕 다른 날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너무 다르지 않아 놀랄 지경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빵점을 맞았지만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아이는 그 말을 하는 내게 적반하장으로 왜 시험 결과를 떠올리게 해서 우울하게 만드냐고 했다.

 

너무 오냐오냐해서 (엄마에 대한 두려움은 바라지도 않고) 개념까지 잃은 건 아닌지 저 깊은 곳에서 분노가 일었다. 나는 위로를 해주려고 했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며 서운함을 나타내는 걸로 분노를 대신했다.


나는 아이에게 네 점수에 엄마인 내가 연연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평소에도 잘 못하겠는 게 있으면 엄마와 함께 연습하면 된다 말했었다. 시험지를 가지고 부모의 반응이 두려워 집에 오는 걸 두려워하는 건 내가 제일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빵점을 맞았어도 기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태권도 학원에서 에너지를 쓰고 와서 그런지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피자를 굽기로 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쉬는 동안 양파를 다졌다. 야채 하나 정도는 건강에도 좋으니까. 다음엔 베이컨을 조각냈다. 스파게티 소스를 꺼내고 피자 치즈 또한 꺼내놓았다.


이제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다. 나는 널따란 접시에 또띠아를 깔고 아이가 스스로 스파게티 소스를 발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이는 요리를 놀이라고 생각하는지 싱글벙글 신이 났다. 그다음엔 내가 미리 다져놓은 양파를 한 주먹 쥐어 고루 뿌렸다. 다음엔 베이컨을 올렸고 마지막으로 피자치즈를 뿌렸다. 난 옆에 서서 지켜볼 뿐이었다. 다 아이가 스스로 해낸 일이다.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수제피자가 완성되었다. 시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었다. 치즈는 고소하기 짝이 없었고, 도우로 사용한 또띠아는 얇아서 그런지 속에 부담 되질 않았다. 담백하기만 했다. 막내 아이도 얼굴 손에 스파게티 소스를 묻혀가 참 맛있게도 먹었다. 이들이 먹고 남은 것들은 잽싸게 내 입으로 들어왔다. 실은 나도 치즈가 사르르 녹은 피자의 자태를 본 순간부터 너무 먹고 싶었는데 아이들을 먼저 챙기느라 이제야 먹을 수 있었다. 혀에 닿는데 전율이 느껴졌다.


피자를 맛있게 먹었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처음 받아쓰기 공책을 폈을 때 외계어가 적힌 줄 알았다. 말로만 들었을 때 보다도 훨씬 더 참담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유치원 때보다 더 못할 수가 있지. 절로 눈이 세모로 떠졌다.


모든 글들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써 내려가는 게 정석이건만 아이의 공책에는 글이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쓰여 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얼마 안 가 이건 아님을 깨달았을 거고 분열이 와서 글자마저도 외계어가 된 것이 아니었을까. 실은 울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곁에 끼고 앉아 함께 문제지를 풀고, 받아쓰기도 자꾸 연습을 하다 보면 금방 제 자리를 찾아갈 거야. 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면 다 해결될 일이야.'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이는 민망함을 감추려 속도 없는 사람처럼 자꾸 과장되게 웃었다. 이걸 보고도 웃음이 나오는 게 신기했지만 우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했어야 할까. 


그런데 정말 맞는 말이 떠올랐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아이가 까르르 웃고 있으니 나도 같이 웃게 됐다. 나는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주기로 했다. 어디, 어떻게 써야 하는지부터 선생님이 호흡을 멈췄을 땐 한 칸 띄어 써야 한다는 것까지.


천만 다행히도 왼쪽부터 글을 적기 시작하니 외계어 같던 글들도 제자리를 잡아갔다. 모조리 다는 글자를 몰라서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럼 그렇지. 누구 아들인데.'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랬나. 틀린 걸 고치는 중이면서도 몇 글자라도 제대로 적고 있으니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받아쓰기를 다 고쳐 적고 나니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퇴근하고 그때까지 옷도 갈아입질 못했다. 잠시 걸터앉을 시간도 없었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걸어 다녔을 뿐이다. 피자를 몇 판 구워내아이들의 고픈 배를 채웠고, 받아쓰기를 고치는 것까지 급한 불을 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쉬려면 까마득했다. 어질러진 거실과 설거지통에 설거지 거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부터 얼른 끝내자 마음먹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가족 몫으로 돌아갈 텐데 그건 더 싫었다.


대충 집정리가 끝나자 아이의 숙제가 떠올랐다. 수업 시간에 아이의 성장과정을 글로 적는댔는데, 그때마다 나이별 사진이 있어야 했다. 그럼 그 사진에 설명을 적는 식이었다. 나는 사진을 고르고 그걸 뽑아서 잘라주어야 했다. 눈은 이미 따갑고 피로감에 눈꺼풀은 덮이는데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신랑은 야근을 하고 오려면 아이들 잘 때쯤에 들어올 거였다. 내가 해야만 했다.


나는 그날 목이 조금 따끔했고(이것도 며칠 전 내 목 상태도 모르고 무리하게 책을 읽어주느라고 이틀 만에 70쪽 이상을 읽어줬으니), 둘째를 자주 들춰 안느라 골반이 어긋난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쳐있었지만 아이들은 팔팔했다.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픈 거라 했다. 움직이는 게, 지치지 않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 줄 아이가 아플 때면 실감했다. 사진을 뽑고 정리한 후 몇 살 때인지 적어주어야 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아이가 단풍잎 같은 손으로 8절 도화지에 붙이고 설명을 적을 걸 생각하면 꼼꼼히 챙겨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내 소중한 아가의 성장 사진들인데 그 어느 사진 하나 추억이 없을 수 있을까.


내가 초등학생일 때 학기 초를 떠올렸다. 친했던 친구와의 반 바뀜. 낯선 동갑내기들과의 어수선한 분위기, 그 와중에도 몰아닥치는 반장 선거 등등. 나도 그때마다 긴장했었지. 그런데 아이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덤덤하게 또 원활하게 학교 생활을 이어가는 것 같았다. 학교 가고 싶지 않다고 울고 떼쓰기라도 하면 가슴이 미어졌을 텐데 아직 그 흔한 투정 한 번 없었으니 그걸로도 됐다고 여겼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거기다 학교까지 잘 가준다면 엄마인 나로서 더 바랄게 뭐가 있을까.


받아쓰기는 앞으로 나와 단 십 분이라도 좋으니 꾸준히 함께 연습하면 조금씩 좋아질 것이다. 점수를 잘 맞는 것보다, 앞으로 살아가며 쓸 글들의 모든 기초가 될 것들을 배우는 것이니 제대로 배웠으면 한다. 그래야 사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더 편할 테니 말이다.


앞으로는 받아쓰기뿐 아니라 국어, 수학, 영어 등 수많은 과목들의 성적표를 집으로 가져올 것이다. 그중에는 좋은 성적도 있겠지만 또 빵점에 가까운 게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 제가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혼내는 일은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아이가 학업에 뒤쳐져 도와달라 손을 내밀면 언제나 그 손을 잡아줄 것이고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어줄 것이다. 자 외롭게 두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성적 때문에 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는 일은 을 것이다. 내가 엄마로 있는 한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행복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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