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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ug 06. 2024

다 큰 당신과 품 안의 너희들과의 시간.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아이들은 물론, 방학조차 없는 어른들에게도 여름휴가는 기다려지는 날 중 하나이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2박 3일로 시작해 이 년 전부터 3박 4일을 감행했는데 늘어난 게 고작 하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값진 추억이 쌓였다. 그래서였을까. 여름휴가를 앞두고 자꾸 잠을 설쳤다.


3박 4일 안에 결코 다 하지 못할 만큼 관광지들과 체험 시설, 맛집들까지 이미 계획표가 차고 넘쳤지만, 시간을 들여 힘들게 찾아 놓은 걸 빼고 다시 넣고를 반복했다.


안 그래도 신랑 빼고는 죄다 감기에 걸린 탓에 휴가를 이틀 앞두고 병원 투어를 다니는 마당에 보약 같은 잠이라도 잘 자야 하는데 왜 이러는 건지 나 자신이지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가기 전날까지도 불 꺼진 방에서 휴가지의 명소를 구경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가는 데만 4시간이 소요되는 길고 긴 일정이 시작, 휴가 첫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내리쬐는 햇살은 밝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어서 괜스레 선팅 된 유리창을 만지작거리며 가릴 것을 찾았다. 휴가만 가면 꼭 있는 것들보다 없는 것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너무 덥게 느껴질 때면 뒷자리라서 더 덥다고 조용히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컨디션만 좋았다면 하지 않았을 투정이었을 것이다.


아픈 걸 숨기며 끙끙 앓았지만 그렇게 나도 모르게 티가 났다. 하지만 고작 네 명뿐인 차 안에서 누가 앓고 있는지는 훤히 보였을 것이다. 장거리 운전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런 나와 아이들을 전방위로 살피는 신랑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익숙한 곳에서 쉽게 재미를 느끼는 타입인지 가던 곳만 가는 경향이 있다. 미용실도 밥집도 죄다 가던 곳만 간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행선지는 7년째 거의 변함이 없다. 같은 지역 안에서 조금씩 변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아마 신랑이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배를 잡고 웃었을 것이다. 정말 내가 익숙한 곳에서 쉽게 재미를 느끼는 성격이라면 여름휴가에 집에만 있어도 즐겁고 재밌어야지 왜 4시간을 달려가야 재미를 느끼는 거냐고 하며 말이다. 나는 그의 짓궂은 농담을 좋아한다.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을 만큼. 누군가의 허를 찌르려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아야 하는데 나의 단짝인 그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그리고 관심이 없으면 그런 농담도 건네지 않을 것이다.      


당장에 먹을 게 물 한 컵뿐이더라도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그게 내 아가씨 시절 바라던 배우자상이었다. 나는 그토록 바라왔던 배우자와 살고 있다. 거기다 물 말고도 이것저것 사주는 신랑과 함께 말이다.   

   

이번 여행은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막내 복숭이가 벌써 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출발하는 날이 복숭이의 생일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생일이 뭔지, 누구 생일인지 모르지만 노래를 부르고 초를 끄는 것만 좋아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안다. 기대하고, 기다린다. 그런 복숭이의 변화가 날로 새롭고 신비롭다.      


만 나이 4세인 복숭이는 요즘 언어영역이 급격하게 발달했다. 형보다 말이 늦어서 주위의 걱정을 샀던 게 무색할 만큼 여러 가지 표현을 하는데 “가 볼게.”라는 말을 할 때 꼭 “이만 가 볼게.”라며 부사를 붙인다.


내가 카시트 벨트를 매어주는 걸 깜빡하고 차가 출발했을 때가 있는데 “엄마, 나 벨트 아직 안 맸는데.”하고 알려줬다. 나는 몹시 놀라 얼른 벨트를 매어주기 바빴는데 그런 내게 “알려줘서 고마워해야지.”하며 도리어 벨트를 해준 내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지만 그 당당함이 몹시 귀여워서 자꾸만 눈앞에 두고 이 아이를 보고 싶다.


자다 깨서도 눈을 마주치기만 하면 생긋이 웃어주는 데 그 웃음에 빠져 거의 온종일 헤어 나오지 못다. 얼마나 방긋 예쁘게 미소 짓는지 상상만 해도 입가에 웃음꽃이 핀다. 웃고 있는 아이를 살짝 당겨 내 품에 안을 땐 또 얼마나 좋은지. 보들보들한 피부는 언제 내가 피곤했나 싶을 만큼 온몸의 피로를 사르르 녹여준다. 곁에 있는 아이의 가슴에 얼굴이나 볼을 비비고 있으면, 내가 어느새 강아지가 된 기분이다. 무엇보다 몹시 따뜻하다. 몸과 마음이 어느새 온기로 가득 찬다. 얼마 전에 과학관에 가서 적외선 촬영을 해주는 기계가 있길래 해봤는데 막내 복숭이만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새빨갛게 나왔다.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던지. 상대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능력도 있지만, 실제로도 열이 많았다니.      


이렇게 내 옆자리에는 아기 복숭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고, 내 바로 앞자리에는 이제 삼 학년인 10살 복덩이가 앉아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복덩이는 이제 내 허리보다도 키가 크다. 몸은 커졌지만 마음은 아기인 복덩이는 내게 줄곧 안기려고 하는데 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안아서 올리지도 못한다. 힘에 부쳐서 팔을 아주 넓게 벌리고 안아주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래도 입을 맞추고 내게 안기는 복덩이가 마냥 사랑스럽다.      


자아가 뚜렷한 복덩이는 이제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치 상황을 자주 겪곤 하지만 애교를 부릴 때는 한없이 다정해서 내가 아는 가장 다정한 어린이를 고르라면 단연 복덩이를 고를 것이다.


복덩이는 잘 있다가도 종종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는데 그때는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한 번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엄마가 없으면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줄 수가 없잖아. 엄마 죽지 마.” 하고 말했다. 그런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갑자기 내가 죽었을 때를 떠올렸나 보다. 이미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내가 이렇게 벅차 행복하단 걸 이 아는 알까. 자신이 내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지금도 잘해주는지 모를 것이다. 내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결사반대를 하는 것도 복덩이다. 엄마는 지금 이대로도 너무 이쁘고 완벽하니까 절대 다이어트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복덩이는 지금 어린이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적은 동화를 몇 번 들려준 적이 있는데 자신도 글감이 떠오른다며 한참을 글을 쓰는 것이다. 집중해서 쓰느라 시간이 지나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게 한 번이 아니니 복덩이도 이미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생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는 게 있었는데 그 공모전에서는 상도 탔다. 그런 복덩이가 정말 나는 몹시도 사랑스럽다. 가장 많이 싸우는 것도 복덩이와 나지만 그만큼 우리에게는 싸운 정이라는 게 있어 누구보다 돈독하다.    

  

어떻게 내가 이 작고 귀여운 아이들과 매일을 함께 할 수 있지 하며 믿기지 않아 몸을 부르르 떨 때가 있다. 안 그래도 아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날이 행운이 아닐 수가 없다. 거기다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데. 나를 “엄마”라며 따라다니는데. 아이들의 모든 걸음걸음에 디딤돌이 되어주고 싶다.   


복덩이의 옆을 지키고 있는 신랑은 내게 물 같은 사람이다. 내가 이러자고 하면 이렇게, 내가 저러자고 하면 저렇게. 본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라도 하고 싶은 , 먹고 싶은  있을 텐데 신랑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에는 사랑의 힘이 클 것이다. 나는 그런 신랑을 보며 자주 생각한다. 내가 신랑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그만큼 둥글지도 못하고, 수더분하지도 않으며, 내 감정을 잘 숨기지도 못한다. 그게 본인에게까지 다 좋은 건 아닐 테지만 그런 부드러운 신랑의 면모가 좋다. 그리고 부럽다. 모가 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까 하고 생각해 볼 때 곁에 있는 그를 보면 답이 되는 것 같아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정하기 전에 신랑에게 먼저 묻는 습관이 생겼다. 여기 괜찮냐고 말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오케이지만 습관처럼 묻고 또 묻는다. 나도 그가 좋아할 곳을 가고 싶고, 그가 맛있어할 음식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를 대하는 내 마음은 뜨겁고, 이 여름의 열기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그런 셋과 함께 하는 여행. 이제부터 나의 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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