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여름을 함께 보낼 수 있을지 가늠하지 않는다

더 많은 추억의 방울방울을 만들고 익히는.

by 강하영

퇴근 후 유치원에서 하원한 둘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곧장 내복을 챙겨 아이를 씻겼다. 머리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보니 나까지 개운해지는 듯하다. 이제 나도 씻어야지 생각하지만 생각대로 바로 씻기가 쉽지 않다. 금세 또 땀으로 등이 흠뻑 젖을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를 씻기러 가던 길에 보았던 설거지 거리도 당장 아이들 먹일 양도 부족한 밥도, 반찬거리를 만드는 것까지도 할 일이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처럼 쉼 없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라도 좋으니 앉아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여름 찐득함은 내게 당연한 것이다. 두 명을 먹여 살리려면 나는 일어나 움직일 수밖에 없고, 좀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이 습하고 찐득한 게 씻겨 내려가는 건 아마 저녁이 훌쩍 지나서일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개다가도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해도 티가 잘 나지 않는 집안일은 하지 않았을 때 확 티가 난다. 그게 가끔은 억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걸 해내느라 발바닥이 화닥거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아직 회사에 있을 신랑을 떠올렸다.


나는 그래도 보기만 해도 아니 존재만으로도 귀한 아이들과 안락하고 안전한 집에서 함께 있을 수 있는데 신랑은 그럴 수 없는 것을 떠올렸다. 아직도 잔뜩 긴장을 한 채 축축한 채 마르고, 또 축축해져 마르는 걸 몇 번을 반복했을지 모르는 옷을 입고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오늘 그랬으니까.


나는, 언젠가는 해야 할 일들을 먼저 끝내놓느라 하지 않는 거지 지금도 샤워를 하려면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신랑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늘 미안했다. 내 이 작은 불편함도 신랑을 생각하면 사치인 것 같아서.


신랑이 오는 날이면 샤워가 더욱 늦어졌다. 아이들 반찬하고 따로 신랑이 좋아할 만한 걸 더 만드느라 바빴다. 그때 흐르는 땀방울은 진짜 힘든 줄도 모르고 흐르는 땀방울이었다. 직장이 멀어서 평일에 퐁당퐁당 보는 우리기 때문에 볼 수 있단 사실만으로도 입이 아플 만큼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신랑이 오는 날이면 버선발로 달려 나간다. 두 시간이 걸려 집으로 돌아와 준 그가 너무 고맙고 반가워서이다. 신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그러고 보니 존재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존재가 우리 집에는 또 있다. 바로 아이들이다.


보들보들 우유보다 부드러운 아이들의 입술이 내 볼에 닿을 때가 있는데 자신의 일을 하며 놀다가도 달려와 내 볼에 입을 맞추고 가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힘든 줄도 모른다.


밥 먹을 때는 또 어떻고. 볼이 볼록하게 오물오물 씹고 있는 걸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갓 지은 밥과 반찬을 게 눈 감추듯 비워내는 걸 보고 있으면 그것보다 뿌듯한 일은 없었다. 땀 흘리며 움직인 모든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곁에 와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늘어놓을 때면 또 어떤지. 그 입만큼 이쁜 입은 없다.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내게 가장 중요한 걸 알려주는 아이는 무척이나 귀여웠다.


알림장에서 본 일과를 아는 척 얘기하면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둘째를 보는 일도 즐거웠다. 둘째도 그때부터 자기가 있었던 일을 술술 이야기했다. 인형이 말을 하는 게 이런 걸까.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도 익숙한 노래가 나오면 "엄마 이것 봐." 하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다. 비타민을 먹는 것 보다도 힘이 났다. 둘 다 흥이라면 지지 않았다. 둘의 열정적인 춤에 내 두 눈이 호강했다.


둘째와 다섯 살 차이 초등학교4학년 첫째는 순두부보다 마음이 뭉글하고 다정해서 늘 내 마음을 사르르 녹여버린다. 이제는 의젓해지기까지 해서 둘째까지 데리고 외출할 일이 생기면 나와 같은 보호자처럼 느껴졌다. 천방지축 동생을 챙기고, 힘든 날 챙기느라 제일 바쁘니 말이다. 얼마나 듬직하고 든든하던지. 아이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둘 다 뭐든 잘 먹고, 많이 먹어서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고 하는 바람에 매일 연골이 닳아 없어질 만큼 앉았다 일어날 일이 많지만 그때면 반대 상황을 떠올려보고 안도한다. 먹지 않아 애를 태우면 어쩌겠어. 잘 먹어서 다행이다. 거기다 한 발짝 더 나가서 잘 먹어줘서 고맙다까지.


꼭 잠지리에 누워 잠이 들려고만 하면 말을 거는 첫째 때문에 금방이라도 기절한 듯 잘 수 있었는데 새벽 두 시까지도 눈이 말똥말똥할 때가 있다. 이미 한참 전에 곤히 잠든 첫째에게 배신감이 들긴 하지만 잠이 안 와서 괴롭다는 것보다 이렇게 못 자면 내일 아이들과 힘껏 놀아줄 수 없을 텐데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선다. 아무래도 피곤하면 아이들의 말에 반응이 느려질 텐데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그쯤 되면 이젠 원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구나. 엄마라고 속을 터놓고 이런 일 저런 일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곤히 잠든 아기가 건 마법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긍정회로를 돌리는 법을 배워간다. 그러지 않으면 고단함과 슬픔으로 무장되어 살 수밖에 없어 단련된 것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주는 긍정 에너지덕에 내가 그렇게 바뀐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래도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나는 몇 번의 여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을지 가늠하지 않는다.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 제자리를 찾아가겠지만 아직은 이 작은 아이들과 헤어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지금은 있는 힘껏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저 더 많은 추억의 방울방울을 만들고 익히는 여름, 가을이 되었으면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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