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되었다는 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단 뜻이다.
평소 아이들을 보내는 아침이면 그 시간이 참 짧게도 느껴졌다. 꼭 한 시간이 1분 같았다. 내 평생 그리 빨리 움직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돌아서면 또다시 할 일이 생겨 발을 동동 굴렸다. 감은 머리를 말릴 새도 없이 수건으로 둘둘 말은 채 아이의 밥을 먹였다. 이를 닦이고 옷을 입히고 정말 내 손 하나 거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었다. 전 날 둘째의 가방이라도 싸놓은 날이면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거들어 주는 손 하나 있었다면 그 손이 천사의 손길이라 느낄 만큼 내 두 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나날들이었다.
그런 내게도 아이들의 방학이 찾아왔다. 이제 더는 아침 일찍 깨워 보내지 않아도 된다. 내게 더 좋은 일 같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이들과 달리 나는 여전히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터가 더 이상 일터같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매번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둘째 아이와 함께 출근했을 때 직장 동료와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진열해 놓은 물건들과 가격표가 죄다 뒤죽박죽 되어있다. 진열대 밑을 또르르 굴러 다니는 상품도 있고. 또 식사 교대를 위해 매장을 지키고 있는 게 둘째 아이와 나 둘 뿐인데 무작정 집으로 가자고 손을 잡아끌 때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둘째는 매장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자주 하고, 나는 그걸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준다. 설명을 할 때는 그래도 일말의 희망이 있다. 하지만 그랬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아 반복되거나 더 심해질 때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만다. 이제 나는 어떡하면 좋지. 내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첫째가 함께 있으면 상황은 조금 더 심각해진다. 사이가 좋을 때도 있지만 싸울 때면 집에서 싸울 때 패턴을 고스란히 반복하기 때문이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둘째를 말로 살살 약 올려서 소리를 지르게 한다거나 그 지른 소리를 다시 약 올리는 말로 받아쳐 싸움을 더 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첫째가 매장에만 오면 바퀴 달린 의자를 배로 끌고 다녀 둘째가 똑같이 따라 하는 것도 문제다. 정말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집에서 둘을 본다면 눈치 보지 않고, 화 낼 일도 없이 잘 돌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방학마다 아이들과 이렇게 씨름을 한다.(집에 있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할 만큼의 여유가 없어 다행이다. 막상 그 상황에 놓이게 되면 또 다른 이유로 다시 끙끙 앓을 게 분명하니까)
엄마뻘 어른들은 지금 이 시기가 아이들이 제일 예쁠 때라고,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고 이야기해 주신다.
나도 안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는 것을. 아직 나는 젊고 건강하며 감사하게도 내 곁이 가장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방학 때만큼은 늘 나를 찾아줘서, 너무 많이 찾아줘서, 내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방학인 날은 함께 출근을 하고 하루를 보내면 열흘 정도가 흐른 느낌이 든다.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내 몸과 마음이 노화된 기분까지.
일하는 나라고 아이들과 같이 가고 싶은 곳이 같이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걸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아이들이 몰라줘서 더 속이 상한 건지, 이제 그때 왜 내가 속이 상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는 건 늘 내게 불안함과 초조함을 낳는다. 아이들과 함께 출근하는 내 직장에서의 시간이 늘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화도 내게 되는 것 같다. 그게 더 미안해서 다시 울적해지고. 퇴근 후에 어디를 데려가려고 해도 두 다리가 땅에 박힌 구황작물처럼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출근하고 한 시간도 안 돼서 내 하루치 에너지가 다 써지는 건 아닐까.
이 상황에서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는 방학에 대한 환상을 내게 잘 말할 수 있다. 엄마와 가고 싶은 곳을, 하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것을. 그래서 나는 과연 그중 몇 개나 해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염려한다. 혹여나 아이가 나 때문에 속상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다 알아듣고 조리 있게 말하는 아이에게 말이라도 이쁘게 해 주면 좋은데 울컥할 때면 그것마저 잘 되지 않고, 또 방학 때는 그런 일이 더 잦으니까 마음속에 종종 어둠이 찾아온다.
사실 그걸 개어주는 것도 아이들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힘들어도 내가 엄마라고 내 곁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벅차오를 만큼 힘이 난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싱긋이 미소를 짓는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우리 복덩이는, 우리 복숭이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뻐?" 하고.
또 혼잣말로
'세상에 이렇게 이쁜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하고 감탄한다.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저런 감탄사가 나온다.
몇십 번, 몇 백번을 돌이켜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벅차고 행복한 순간들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이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이 눈앞에 건강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내 삶엔 감사해야 할 것들이 차고 넘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해나가기로 했다. 어디 갈 기운이 없으면 음식이라도 기억에 남게 해주자 싶어 내일은 엄마표 떡볶이와 만두 한 상을, 모레는 김밥을, 그다음 날은 치킨너겟 한 상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힘이 좀 남아있으면 두 손 딛고 일어나 아쿠아리움이라도 데려가 보는 것이다.
방학은 이제 시작이다. 이미 시작되었다는 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단 뜻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 끝무렵 해주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며 슬퍼하는 시간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시간을 좀 더 줄여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스스로에게 계속 좋은 이야기를 건네며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다 보면 한 단계 더 성장한 날 발견할 수 있을지도.
아이들과 더 많이 눈을 맞추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더 즐겁고 알차게 방학을 보낼 것이다. 아이와 더 친해질 수 있는 방학이 좋다. 나는 이번 방학이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