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3)

by 시나브로

청소년기를 보냈던 지금의 고향도 역시 깊은 산골마을이다. 조팝나무의 작은 꽃이 얼마나 예쁜지, 그 작은 꽃잎이 풍기는 향기가 얼마나 진하고 달콤한지를 일찍부터 알게 했다.



덕분에 자연에서 마주하는 작고 소소한 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지 안다. 날마다 산골에서 마주하는 가식 없고 꾸밈없는 각자의 생김과 자연 그대로를 둔감한 머리와 몸의 미세한 세포들은 생활에서 자연스레 각인되고 좋아게 다.


아이적부터 좋아했던 쑥떡도 그중 하나다. 살 적이었는지 그 진한 쑥냄새가 싫지 않았다. 이른 봄이면 싸라기쌀로 쑥버무리를(실은 이건 별로였다^^), 따뜻해지는 기온에 쑥부쩍 자라나면 쑥개떡을 먹었던 기억엔 여전히 침이 고이고 즐겨 찾게 된다.



배앓이를 할 때면 엄마는 인진쑥을 생으로 학독에 찧어 쓰디쓴 쑥물을 약대신 마시게 했다. 배앓이가 잣았던 나는 온몸에 경기를 하듯 몸을 비틀면서도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억어지로 참아가며 그 시커먼 쑥물을 들이켰었다.


아이들은 낮동안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녔고 끊임없이 놀거리를 만들어냈다. 넓지도 않은 울 안을 돌며 동네 아이들과 구슬치기를 하고 숨바꼭질, 말타기를 하며 놀기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날의 내가 되어 내디뎠던 발자국처럼 심장도 따라서 콩콩댄다.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면 어쩌다 담장을 타고 조심조심 르기도 했다. 옆집과 연결된 우물을 넘어 숨기도 했기에. 계절에 따라 친구네 담장 옆, 높이 쌓인 나뭇단 위나 짚단 속을 비집고 들어가 헉헉대는 숨을 누르며 들키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숨어있곤 했다.


그렇게 거친 숨을 고르며 아슬아슬 긴장했던 그때, 재빠르게 숨을 곳을 찾아야 했던 모습이 선하다. 나뭇단과 자질구레한 물건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헛간이나 굴뚝 모퉁이도 그랬다. 또 눈이 따가울 만큼 냄새가 고약했던 재래식 화장실에 숨기도 했다. 그리고 커다란 장독대도 아이들이 자주 몸을 숨기던 또 하나의 장소였다.


산자락에 쓰러진 고목을 타고 오르며 누가 균형을 더 잘 잡는지 양팔을 펴고 비행기처럼 날아갈 듯 뛰어놀았던 시절. 마을은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을 윗뜸은 산자락에 잇닿아 신작로 옆으로 집들이 나란히 있어 산에 오르기 쉬웠다.


엄마가 빨래터에서 방망이를 두드릴 때면 우리는 당연한 듯 바로 위 언덕으로 올라가 커다란 묫등을 미끄럼틀 삼아 오르락내리락 땀이 나도록 놀았다. 때론 묘지 옆에 있는 사슴의 등자락같이 빨래터를 향해 비스듬히 기운 둥구나무에 올라 매미를 잡기 위해 서로 내기를 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낮은 산기슭, 커다란 나무등걸에 잠깐씩 누워 빼곡한 나뭇잎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기분 좋게 감상했 날도 있다. 친구들과 산에서 놀이를 하다 입에서 터져나오는 고함소리가 저절로 메아리 되어 되돌아왔던 것조차 신기해 했던 날. 아이들은 일부러 손바닥을 나팔처럼 모아 입에 대고 서로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고 귀를 기울였다.


그때의 모습들과 며칠 동안 긴 장맛비가 마을을 덮치고 갔던 날의 기억은 또 어떤가. 산 쪽, 묘지 아래 좁은 물길을 따라 넘실거리며 빠르게 흘러오던 물줄기는 낮은 빨래터를 맑은 우물물처럼 깊숙이 물아래로 잠기게 덮어버렸다.


거친 물살은 빨래터를 훌쩍 넘어 마을 승강장 쪽 자갈길을 따라 아래 움푹 꺼진 안 마을 초입으로 금세 번져갔다. 큰 비가 올 때마다 동네 어른들은 승강장 쪽 신작로를 바라보며 아침 일찍부터 모여 밤새 물에 잠긴 논이나 밭에서 목격한 장면에 대해 혀를 차며 이야기하시던 어른들의 근심 어린 표정도 아른거린다.


지금도 가끔 찾아가는 세 번째 내 고향마을은 승강장 아래로 긴 중앙로가 있고 양쪽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있었다. 면소재지를 제외하면 한두 시간마다 자갈길에 흙먼지를 날리며 오가던 완행버스처럼 우리 동네 승강장에는 빨간 칠을 한 직행버스가 서던 유일한 마을이기도 했다.


마을 진입로 왼쪽에는 쌀을 찧는 큰 정미소가 있었다. 앞,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 건너편에는 논들이 냇가로 흘러가는 도랑과 맞붙어 길게 끝없이 이어져 흘러갔다. 방앗간 앞마당 도로와 맞닿아 있던 길보다 지대가 낮았던 논들은 어김없이 물에 잠겨 물바다를 이뤘다.


평소엔 바람을 따라 보기 좋게 초록비단결같이 일렁이던 벼이삭은 물에 잠겨 장마철엔 찾아볼 수 없었다. 흙과 뒤섞인 붉은 황토물이 강물처럼 넘실대며 개울을 따라 아래로 냇가를 향해 흘러갔다.


빨래터 바로 위쪽엔 잔디가 빼곡히 자란 큰 묘 하나가 있었다. 몇 세대가 자라도록 오랫동안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묘지는 지금도 여전히 자릴 지키고 있다. 장마철이면 윗뜸을 지나 신작로를 거쳐 마을 입구로 흘러들던 거센 물줄기는 지금도 가끔씩 꿈에 등장하는 단골 풍경 중 하나다.


날이면 날마다 짓궂게 몸을 쓰며 놀았던 어린 시절의 한때,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은 '나에게도 과연 그런 때가 있기는 했나.' 싶게 이제는 그런 옛 생각만으로도 멋쩍은 웃음을 짓게 하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병풍처럼 마을을 에워싼 높은 산자락에도, 마을 골목에도, 낮으막한 담장 안으로는 계절마다 시간의 흐름을 알게 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이른 봄부터 피어나던 화려한 꽃들의 향연이 잠깐 멈칫하는 듯한 사 월.


그 사월의 끝자락을 넘어 조금씩 바람이 따뜻해지는 오월이 또다른 계절을 알린다. 향기는 있는 듯 없는 듯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꽃들을 데려왔다. 내내 아무런 미동 없이 잠자코 있던 대추나무, 감나무는 하얗고 노란 꽃을 피운 뒤 연한 연둣빛 새잎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볕 좋은 오월이 무르익어갈 때 결코 화려하진 않지만 저만의, 저 다운 꽃을 당당하게 피우기 시작했다. 어느 해였던가. 손 닿으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그 작고 여린 잎사귀를 바라보며 '이제라도 싹을 틔워 참 다행이다.' 했던


어린 마음에도 절로 안도의 숨이 쉬어지던 시절에도 시골집 풍경을 배경으로 어디서 보았던 그림인 듯, 내 기억 속 한편엔 고스란히 각인되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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