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
언젠가 산길을 뛰어다니며 놀던 날, 평수는 갑자기 화살을 만들어 놀자며 자기 집 화장실에서 낫 하나를 들고 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 근처 야산을 다니며 낭창낭창 잘 휘어지는 싸리나무 중 곧게 자란 것들을 골랐다.
목표가 정해지고 평수는 나에게 나뭇가지를 붙들라 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낫을 치켜들더니 세게 내리쳤다. 내 비명과 함께 붉은 피가 뿜어져 흩어졌다. 싸리나무와 내 약지 손가락이 동시에 베어졌던 거다.
손에 겨우 붙어 달랑거리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산이 떠나가게 울었던 나. 어떻게 평수네 집까지 갔는지 기억은 없다. 그러나 선주언니와 키가 크시고 깡마른 평수네 아버지께서 요란한 울음소리에 놀라 나오셨다.
그때는 병원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때였다. 더군다나 산 중턱에 위치한 집이었으니...
지금처럼 흔하디 흔한 상비약조차 있을 리 없었다. 수건을 말아 그 애 아버지는 살이 없어 더 길쭉한 손에 마디만 굵어진 손으로 힘껏 잡아주셨다.
손을 베인 아픔과 영원히 멎지 않을 듯 빨간 피는 금세 수건을 적시고 붉게 물들었다. 내 몸에서 흐르는 피는 어린아이를 공포 속으로 몰아갔다. 더군다나 부모님도 안 계시고 옆집 아저씨의 보호를 받던 상황은 손가락의 상처도 상처려니와 서러운 마음이 가중되어 더 슬프게 했는지 모른다.
피가 멈춘 손가락을 확인하신 아저씨는 어디선가 마른 담뱃잎을 빻아 오셨다. 보슬거리는 담뱃잎가루에 다친 손가락을 두둑이 싸서 묻고 막내 동생의 하얀 기저귀를 잘라 꽁꽁 묶어주셨던 장면은 어제의 일처럼 훤하게 떠오른다.
안타깝게도 평수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단지 아저씨처럼 키가 크고 마르셨던 뒤모습 같은 희미한 그림자가 아른거릴 뿐. 그 애의 아버지는 결핵을 앓고 계셨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저씨를 떠올리면 은색 둥근 캔에 담겼던 용각산이란 가루약 냄새가 지금도 옆에서 풍기는 것 같다.
아저씨는 유난히 마르신 몸 때문이었는지 키가 커보였다. 어린 눈에도 딱딱한 나뭇가지를 엮어 옷을 씌워 놓은 것처럼 큰 옷은 늘 몸에서 겉돌았다. 아주 가끔, 서계신 모습을 뵐 때가 있었는데 항상 웅크린 자세로 앉아 계셔서 그런지 등도 구부정하셨다.
햇살이 맑고 따뜻한 날엔 언제나 낮은 돌마루 끝이나 토방에 무릎을 양팔로 감싼 채 앙상한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계시던 모습도 생생하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나도 이젠 어리지 않고 벌써 중년의 나이가 되고 말았다.
남 얘기 같았고 나에겐 영원히 올 것 같지 않던 육십이란 나이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와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게 한다. 그때의 어른들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버린 나, 내 기억엔 어릴 적 철없이 노닐었던 마을의 풍경이 꿈인 듯 생시인 듯 떠오를 때가 많다. 그러나 평수네 부모님은 이미 현실 속에 계시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주언니와 평수의 안부는 문득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아스라이 멀어지는 얼굴들이 아직까지 내 기억 한편에 남아있기에. 어릴 때 보았던 그네들의 모습에서 지금은 얼마나 많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는 변해있을까.
화장실옆 닭장 앞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 주던 선주언니의 실루엣은 마치 연예인처럼 멋진 모습으로 각인이 되어있다. 초라하고 가난했던 우리 가족과 여섯 살 겁 많고 순진했던 그때의 어린 여자아이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