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1)

고향마을

by 시나브로

좋은 것은 자기도 모르게 끌린다더니 옛말이 그른 게 없나보다. 내가 태어난 곳도 유년시절을 보낸 곳도 산과 산들로 빼곡히 둘러쌓인 그야말로 깊고 깊은 산촌이었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높은 산에 둘러쌓이고 꽉 막혀 굴속 같았던 작은 마을, 그 속에서 논두렁 밭두렁을 뛰어다니며 유아기를 보냈다. 내가 살던 집에서는 큰 냇가를 건너가야 외가친척들이 살던 큰동네로 갈 수 있었다.



평소 그 냇가엔 물줄기는 오간데 없고 크고 작은 마른 자갈돌이 널려있고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그곳은 많은 비가 내리는 날, 몇 시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물기없이 바싹 말라있었다.


넓은 냇가 양쪽으로 길게 뻗은 둑은 어린 꼬마의 눈에는 거창하고 드높게만 보였다. 사 남매의 막내까지 그 동네에서 태어났으니 우리 형제의 실제 고향이기도 하다.


섯 살까지 살았던 그 고향 마을과 일곱 살 때 한 해를 살았던 산능성이에 있던 집에 대한 기억들은 사실 온전하지 않을 수 있다. 너무 어렸던 탓인지 집 구조와 외관이 어땠었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단지 짧게 잘린 장면들을 연결하면서 혼자서 나름 유추해 뿐이다. 너댓 살, 너무 어려서였을까. 첫 집은 토방이 마당보다 유난히 높았었다. 넓지도 않은 돌계단이 마당에서 제법 높고 가파르게 이어져 있던 기억이 뚜렷하다.


마루아래엔 누렁이가 주인보다 태평하게 배를 깔고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풍경도 기억한다. 안이 들여다 보일정도로 그닥 깊지 않았던 토굴이 있던 것도 어렴풋 떠오른다. 어느 해는 감자를 보관했었나 보았다.


어느 이른 봄이었던가. 볕바른 하루, 마당 빨랫줄엔 하얀 이불 호청이랑 막내동생 기저귀가 바람을 따라 나부끼며 꽤나 평화롭던 기분 좋은 하루, 그날 오후가 떠오른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토굴에서 감자를 꺼내 성한 것과 상한 걸 분리했고 안타깝게도 썩은게 많아보였다. 고약한 냄새가 온통 마당을 채웠던 날의 희미한 기억. 일부는 선명하게 또 일부는 아련해서 정말 있었던 일인지 지금도 혼란스러울정도다.


평소에 먹는 흰감자도 있었지만 유난히 자주색 감자가 많아보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어른들은 썩은 감자를 골라 버리지 않았던 듯 했다. 녹말을 뺀다고 넓은 다라이에 물을 받아 일부러 더 곯게 방치했던가 씻었던가. 그런 기억이 남아있다.


기억의 편린은 가끔 나를 어지럽게한다. 아련한 풍경속에 어른들의 손놀림을 신기한 눈길로 한참을 서서 바라다봤던 어린 아이가 가끔 보인다. 가물가물 또렷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 냄새만은 정말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을만큼 지독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단 한 해를 살았다는 동상면의 어느 산 언저리의 집은 별루 기억에 없다. 단지 돌로 된 낮은 마루가 혼미하게 꿈처럼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지냈던 날의 여러 장면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문득문득 떠올라 행복한 미소를 짓게한다.


큰 상처를 남겼던 사건인데도 시간의 덫에 빛바랜 기억은 미소를 짓게한다. "닭장밖에 배고픈 여우..." 노랫말과 함께 율동을 가르쳐주던 선주언니의 모습은 집도 몇 채 없던 깊은 산골과 어울리지 않게 천사처럼 하얗고 예뻤었다.


부모님은 일을 하러 가셨는지 남동생들을 데리고 날마다 산모롱이를 뛰다니며 놀았다. 또 선주언니네 남동생들과 해가 지도록 개구지게 놀이를 했다. 갈수록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속에 나와 나이가 같았던 평수란 남자아이도 이름만이 기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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