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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산의 카프카 Apr 04. 2023

용과 키메라

생활수필모음#7

 2000년대 초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한 광고가 있었다. 당시 한창 반항기가 디폴트값으로 설정된 중학생이었던 나는 대체 그 광고가 왜 그렇게까지 이슈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령 모두가 맞다고 말해도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고 그걸 말하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런 CF가 유행한단 말인가? 그러나 20년 후인 지금의 나는 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절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 그럼 다들 내 의견에 동의하는 거지?” 본부장님의 일장연설 이후 이어지는 질문에 방안에 있는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 질문이 실제로 동의를 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회의를 끝내자는 의미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아니면 그 의견이 틀렸다고, 다른 의견이 있다고 말해도 결국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그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본부장님만이 이 침묵이 자아내는 무언의 긍정에 흡족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다.     


 하지만 내 입안은 모래를 씹은 듯 껄끄러움으로 가득하다. 열에 아홉은 틀렸다고 말할 일이었다. 직전 회의에서 삭제하라고 했던 문항은 금번 회의에서는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으로 탈바꿈되었고 꼭 넣으라고 하셨던 표는 기획서를 망치는 원흉이 되어 있었다. 다시 넣고 빼는 것이야 쉬이 할 수 있지만 분명 다음 회의에서 또 똑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그보다 날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이 기획이 우리가 처음 계획하고 목표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상한 그 무엇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분명 내가 처음 지시받은 사항은 이를테면 용을 그리는 것이었다. 사슴의 뿔, 토끼의 눈, 소의 귀, 뱀의 비늘. 최초의 기획서는 확실하게 용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이와 같이 대체적으로 용의 형태는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보완하기 위해 시작된 회의가 계속될수록 용의 형태는 목표와 다르게 변해갔다.   

   

 “아니 왜 용의 몸통을 뱀으로 그렸어? 염소로 그려야지” 툭 던져진 본부장님의 말에 처음에는 부장이, 다음에는 과장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반대의 의견을 냈다. 그러나 꾸지람과 핀잔, 무시에 점차 의견은 사라져갔다. 

“어디서 말대꾸를 해. 건방지게. 네가 뭘 안다고 나서 인마.”

그렇게 용은 사자의 얼굴, 염소의 몸통, 뱀의 꼬리를 가진 아무리 봐도 용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갔다. 마치 아무렇게나 가져다 붙인 전설상의 키메라와 다를 바 없게 된 것이다.   

   

 반복되는 회의에서 건전한 논의나 협의가 아닌 권위에 의한 독단이 횡행하자 용은 키메라가 되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조직에도 큰 손해를 끼치게 되겠지만 조직 내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진 일종의 가스라이팅으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이 침묵이고 내 입안의 껄끄러움의 정체다. 

     

 공자님 말씀 중에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안에 내 스승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우리 조직이 건강하고 올바른 조직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좌우명이 이것이라 생각한다. 직위나 직책, 나이를 떠나 누구나 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전제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반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렇게 해서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조직의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갈 길이 한참이나 먼 나의 조직을 위해, 그리고 엉뚱하게 키메라로 변해버린 우리의 용을 위해 나는 입안의 껄끄러움을 밖으로 내뱉는다. 그렇게 모두가 예라고 할 때 다시금 아니요를 용기 내서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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