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을 읽고 (김희경 글, 이보나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창비)
일상은 늘 평안한 듯 하지만 실은 아주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사소한 것들이 나의 잔잔한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나는 그 파동 속에서 내 마음을 잃고 휘청거린다.
내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작가 김희경은 <마음의 집>에서 보이지 않은 마음을 집으로 비유했다. 작가의 첫 질문은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이다. 전에 아이가 물었다. "엄마, 마음은 가슴에 있는 거야? 아니면 머리에 있는 거야?" 생각은 머리로 하는데 손은 가슴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지 않을까?"하고 두리뭉실하게 답했다. 기쁜 마음의 설렘, 속상한 마음의 아릿함과 답답함 모두 머릿속으로 생각은 하지만 가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있어.
그런데 마음은 잘 알 수가 없어.
마음의 집에는 문이 있어.
어떤 사람은 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
어떤 사람은 활짝 열어 두지.
문을 아예 닫고 사는 사람도 있단다.
어제 독서 토론을 하다가 모인 사람들의 성향을 이야기하면서 A는 유리 같은 사람, B는 유리보단 좀 더 강한 강화유리, C는 탄성 좋은 고무에 비유했다. 그중 D를 문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이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몇 년째 알고 지내긴 하지만 살짝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D는 "두드리세요. 그러면 열려요."라고 대답했고, 모두들 웃었다. D에게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느낌은 '내가 문을 두드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문을 열지 않는 D에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의 문은 얼마나 열려있을까? 겉으로 유한 척 보여도 실은 조심성도 많고 활짝 열린 마음을 가지지 못한 나다. 아마도 나는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두고 있는 것 같다. 세상과의 단절은 두렵고 호기심도 있어 닫지는 못한다. 그런데 그 호기심으로 인한 변수를 다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워 활짝 열어두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브런치를 통해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으니 전보다 마음의 문은 더 열려있다.
그런데
마음의 집은 가끔 주인이 바뀌곤 한단다.
어떤 날은 불안이
어떤 날은 초조가
어떤 날은 걱정이 네 마음의 집을.
실제로 감정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순간은 많다. 즐겁고 기쁜 순간은 마치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나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듯하다. 반대로 슬프거나 속상한 순간은 예상치 않게 찾아와 나를 곤경에 빠트린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가 되면 '평상심'을 유지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기에 내가 흔들리면 내 가족이 출렁거린다. 그러기에 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살짝 비켜 가려 노력한다.
걱정하지 마.
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거든.
그 마음들이 네 마음을 도와줄 거야.
언제나 너를 도와줄 거야.
마지막으로 작가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집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혼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에는 도와줄 '다른 마음들'이 있다고 그러니 그 손을 잡으라고 한다. 살짝 분홍빛이 도는 따뜻한 온기가 있을 듯한 손이다. 나에게는 손을 내밀어 줄 누군가가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래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도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도 마음의 집에서 힘들어 할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