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행복한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
엄마는 이석증으로 외출을 힘들어하신다. 2주 전 갑자기 심한 어지러움을 느끼고 응급실을 갔다. 심한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며 나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엄마가 보였다.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는 덩치 큰 아이 같았다. "엄마, 나 왔어. 괜찮아?", "응급실 처음 아닌데 왜 이리 떨어.", "조금만 기다리면 좋아질 거야." 심각한 일이 아닌 듯 말하려고 했다. 정말 별일이 아니길 속으로 바라며.
다행히 진단은 이석증으로 입원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심한 움직임은 자제해야 해서 집에서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2주간의 갑갑증을 참다가 주말에 동생과 함께 우리 집에 오셨다. 오랜만에 오신 듯 이 방 저 방 집을 둘러보셨다. 문화센터에서 그린 내 그림들을 보며 "잘했네.", "역시 솜씨가 있어." 하며 마음에 들어 했다. 부족한 그림솜씨지만 엄마눈에는 좋게 보이나 보다. 엄마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엄마가 내 그림 첫 번째로 가져가는 거야." 하며 두 점을 봉투에 넣었다. 모두 바다와 파도를 그린 아크릴화였다. 엄마의 답답함이 바다를 보며 조금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다음 날 엄마는 '너무 예쁘다'는 문자와 함께 현관사진을 보냈다. 벽에 비해 조금 작은 듯 보이는 것이 아쉬워 "다음에는 큰 그림으로 그려줄게." 했다. 엄마는 지금 것도 충분히 맘에 드신다고 했다. 작은 그림하나로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며 다음에 엄마와 함께 미술관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에게 행복한 순간을 선물하는 일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엄마는 통화 중에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다고 했다. 엄마를 모시고 다닐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번 주는 시간이 없다. 엄마에게 기분전환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주방에 있던 작은 화병들이 생각났다. 전부터 엄마가 예쁘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무심코 흘려들었다. 이번에 오셨을 때도 직접 사려고 백화점에 가봤는데 못 샀다고 아쉬워했다. 그 말을 들으며 엄마 마음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 아차 싶었다. 진작에 보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새벽 배송 온 선물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니? 비싸진 않니?" 하며 조금 미안해하는 엄마. 화병에 꽃도 꽂아보고 스킨도 넣어보며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뿌듯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물한 화병은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작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길가에 들꽃도 꽃아 두니 예쁘더라."라는 엄마의 말에 다음에는 꽃을 사가지고 가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지금 행복한 것 같다.
올해 결혼 20년째인데 엄마와의 관계가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결혼하며 엄마와 나의 관계는 서운함을 넘어 아주 멀어졌다. 그동안 서로 상처 나는 말도 많이 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엄마와의 연락도 되도록 피하려고 했던 나이다. 그런데 20년 동안 세 아이를 키우며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엄마도 세 아이 키우며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그 거리감을 조금씩 좁혀가고 있다. 오늘도 엄마에게 한 발걸음 더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