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표 게장은 최고

아이들과 외할머니의 감정 교류

평일 저녁 식사시간. 아이들은 식탁에 오른 반찬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 나온 반찬이 없어 나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은 다 귀찮게만 느껴진다.


"엄마 이게 다야?"

"다른 것 없어?"

"응, 오늘은 엄마 장 못 봤어. 오늘은 그냥 먹자."


아이들의 젓가락질이 시원치 않다.

남편도 이번 주는 회사일로 저녁 늦게 들어오고, 큰 아이도 없는 저녁 식사시간. 오늘은 최대한 간단히 먹고 정리하고 싶은데 갑자기 막내가 말했다.


"엄마! 외할머니 게장 먹고 싶다."

"할머니한테 해달라고 해봐."

"그래, 엄마 언른" 둘째가 거든다.

"응, 나중에." 나는 마지못해 짧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며칠째 엄마의 게장을 먹고 싶다고 조른다. 나는 "엄마가 해줄게." 하며 아이들을 달래 보았다. 막내는 "엄마 것도 맛있지만 1등은 외할머니거지." "할머니 게장 먹고 싶다고, 응?"


둘째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저 ○○인데요. 저 할머니 양념게장 먹고 싶어요."

"응, ○○구나. 그래? 꽃게장 먹고 싶어? 지금 꽃게 알 많을 때니까 하면 좋지. 근데 할머니가 지금 손이 아파서 게껍질 따는 게 힘드네. 할머니 손 나아지면 해 줄게."

아이들은 엄마의 대답 끝에 신이 났다.


"네. 할머니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엄마, 괜찮아. 손도 아픈데 그냥 둬. 나도 할 수 있어."

엄마에게 것절이와 오이 무침을 받아온지 일주일도 안 되었다. 그리고 손도 아프다 하니 선뜻 부탁하는 말이 안 나왔다. 무엇보다도 아직 엄마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일이 조심스럽다.


막내가 엄마를 '외할머니'라고 부른 것은 2년 정도 되었다. 아이들은 일 년에 서너번 명절에만 만나는 외할머니를 낯설어했다. 마찬가지로 엄마는 동생네 아이들을 봐주기 때문에 함께 만나도 늘 엄마 곁에는 조카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내 주변에서 할머니 품에 있는 사촌들을 부럽게 보곤 했다. 결혼 후 소원해진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친정에 가는 일은 명절과 생신 때뿐이었다. 반면에 아이들을 좋아하는 시댁에는 한 달에 두 번씩도 방문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란 당연히 시댁어른들이다. 외할머니는 둘째와 셋째에게 '●○네 할머니'라고 불렸다. ●○은 조카의 이름이다. 이 호칭은 나와 엄마의 거리감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했다. 아이들이 '●○네 할머니'라고 엄마를 부를 때마다 내 속은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가득 찼다. 그동안 꼭꼭 눌러놓았던 엄마에 대한 서운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려고 했다. 난 얼굴이 굳어져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제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그런 관계가 이제는 할머니에게 전화해 먹고 싶은 것도 직접 얘기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외할머니와 왕래하고 싶어했고, 내가 그것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속에 뾰족한 무언가가 '엄마 도움 없이도 나 잘 살고 있어' 외치고 있던 것 같다.


며칠 후 엄마는 아이들의 바람처럼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게장 사진을 보냈다. 오늘은 아이들 학원 픽업으로 7시나 되어야 하는데 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일 장마 시작된다니까 오늘 와서 가져가. 주말에 **도 나오잖아."

"응, 엄마 저녁에 아이들 보고 연락할게."


수업 끝나고 나온 막내에게 물었다. "할머니 게장 완성이라는데 지금 가지러 갈까?" "와!!! 신난다." "빨리 가자!" "그래, 안전벨트 잘 매." "그럼, 출발한다. 고! 고!"



외할머니의 음식 중 아이들이 맛있게 기억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매콤한 양념게장과 솔향 가득한 쑥송편이다. 아이들이 커서도 이 음식들을 보면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되살리게 할 것 같다.

"엄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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