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엄마

이생 - 하재연


엄마가 나 되고

내가 엄마 되면

그 자장가 불러줄게

엄마가 한 번도 안 불러준

엄마가 한 번도 못 들어본

그 자장가 불러줄게


내가 엄마 되고

엄마가 나 되면

예쁜 엄마 도시락 싸

시 지으러 가는 백일장에

구름처럼 흰 레이스 원피스

며칠 전날 밤부터 머리맡에 걸어둘게


나는 엄마 되고

엄마는 나 되어서

둥실




엄마는 25살에 세 아이 엄마가 되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선보고 결혼을 했다. 아빠도 엄마도 20살 초반 바로 부모가 된 것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세 아이와의 생활은 말할 필요 없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은 성실했던 부모님 덕분에 점점 더 나아진 생활과 즐거운 기억들이 대다수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살갑지 못하고 많이 엄했다. 성격이 무뚝뚝하기도 하다. 이십 대를 즐기기도 전에 너무 일찍 엄마로 아이들 키우며 일을 해야 하는 삶이 힘들어서 그랬을 것 같다.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이 육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짐작할 수 있다.

초등학생 때 어버이날 선물로 용돈을 모아 꽃과 볼펜을 엄마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엄마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무뚝뚝한 반응을 했다. 아마 별로 필요가 없는 것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엄마의 칭찬을 기대했던 나는 많이 실망했다. 엄마가 더 좋아하는 표현을 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엄마에게 칭찬받는 날은 성적이 좋았을 때였다. 성적이 좋으면 온 가족이 즐겁게 치킨집을 갔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동생들까지 함께 혼이 났다. 특히 성적표에 부모님 확인 도장을 받아가야 하는데, 도장을 안 찍어주셔서 선생님 앞에서 난처했던 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랬던 엄마가 손자 손녀들 이야기에는 굉장히 유한 태도를 보인다. 큰 아이 학업문제로 공부하라고 채근하면 여지없이 손녀 편을 들며 "왜 그렇게 뭐라 하니? 그냥 좀 둬라." 한다. 그리고 막내가 핸드폰 게임하는데 잔소리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래. 너 잔소리 좀 그만 좀 해라." 한다. 초등학생인 조카에게 아직도 밥을 먹여주는 것을 보면 나는 우리 엄마가 조금 낯설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조금만 실수해도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는데 말이다.


"엄마, 요즘 받아쓰기 백점 못 맞는 애가 별로 없어. 연습을 좀 시켜야지."

"그냥 둬. 때 되면 다 할 거야"

"이게 뭐 큰 대수라고 그러니!"

"그래? 근데 엄마 우리 때는 왜 그랬어? 하나만 실수해도 엄청 혼냈잖아. 기억 안 나? "


나이가 들면서 엄마도 당시에는 가질 수 없었던 여유가 손자 손녀들에게 생긴 것이다. 한 번은 막내가 엄마에게 서운했던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 말하니 엄마는 별말 없이 그저 듣고만 있었다. 엄마도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남편도 처음에는 장모님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장모님이 많이 유해지셨다고 말한다. 가끔 출장 다녀오며 남편이 병이 예쁜 양주를 엄마에게 선물한다. 남편은 장모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챙겨주는 맛있는 안주에 반주를 즐긴다.


엄마는 점점 변해간다. 외모도 성격도 조금씩. 엄마는 알고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을? 가끔 여동생과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와 함께 좋았던 기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우리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엄마도 나이가 들어가시는 엄마도 좋다. 시처럼 '엄마가 나 되고, 내가 엄마 된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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