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실망의 왈츠

모든 부모가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킨다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있다. 그중 '기대와 실망의 왈츠'에서 작가는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나는 언제 처음 아버지에게 실망했을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나와 엄마의 과거 한 순간을 떠올렸다.


'난 언제 처음 엄마에게 실망했을까?' 그때 그 감정이 실망이었는지 배신감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10살 가을 무렵이었다. 엄마는 1학기 때보다 떨어진 나의 성적표를 보고 화를 엄청 냈다. 떨어진 점수가 70점 대도 아니었고 80점대였는데도 전보다 낮은 점수라고 학교에선 담임 선생님이 책상에 무릎을 꿇리고 손바닥을 때렸다. 아직도 초등학교 시험으로 매까지 맞아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집에 가서 엄마에게까지 혼이 났다. 엄마의 짜증과 화가 묻어난 목소리와 무서운 표정은 그 자체로 어린 우리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매를 들어 혼을 내고도 성에 안 풀린 듯 무작정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가 돈 60원을 손에 쥐어줬다. 그리고는 오는 버스를 타고 가라고 버스 문이 열릴 때마다 우리 등을 차례로 떠밀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엄마는 도대체 우릴 보고 어딜 가라고 하는 건지?' '진짜 가라는 건지?' 덧붙여 '진짜 우리 엄마는 맞나?'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진짜 물을 수는 없었다. 나와 동생들이 울며 불며 잘못했다고 엄마를 붙잡고 매달렸던 순간이 머릿속에 아직 남아 있다. 그때 나는 어른이 되면 정말 엄마를 먼저 떠날 거라고 나름 다짐했었다.


이 이야기를 한번 명절 때 해본 적이 있었다. 우리 셋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도 나름 기억나는 듯했지만 그냥 멋쩍게 웃으며 넘어갔다.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며 아이들을 버스 정류장까지 데리고 갔는지 지금도 솔직히 이해는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혼을 내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냥 엄마가 화를 주체하지 못했던 거라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아래 작가의 글에 깊은 공감이 들었다.


모든 부모가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그 실망은 도둑맞은 신발 같은
사소한 사건 때문에 비롯된다는 것.
그 누구도 그건 피할 수 없고,
나처럼 어떤 아이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그 사소한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기억하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이해하면서도 아쉬워한다.

'기대와 실망의 왈츠' 중에서
"단 한 번 의 삶" (김영하)




이제 나도 세 아이의 엄마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의 순간과 더불어 내 아이와의 순간도 떠올려본다. 내가 '실망'하는 순간이라 기억하는 엄마처럼 내 아이도 나를 실망스럽게 생각하는 순간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하다. 내 아이도 나처럼 그 순간을 기억하고 아쉬워하리란 생각에 말이다. 자식이라 나를 이해하려 노력은 해 줄 수 있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전 13화가을에 누리는 소소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