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법석 나의 첫 목장 탐방기

목장가족탄생기 Ep1

by 목장가족


내 남자친구는 목장집 아들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어 상경한 남자친구와 달리, 나는 수도권을 벗어 나본 적 없는 모태 도시 인간이었다. 순수한 시골 청년은 각박한 도시 여성의 호기심을 한껏 불러일으켰다.


“아니 됐당께요.” 같이 어머니와 통화할 때만 나오는 사투리라든가, “끼야아악.” 하고 울부짖는 고라니 성대모사, 젖소의 목장 탈출 일화 등을 들을 때면 나는 정신없이 빠져들곤 했다.


너무 재밌어! 너무 순수해! 너무 잘생겼어! 당시 내 두 눈은 콩깍지로 뒤덮여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사랑에 빠진 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가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평생 찾아온 나의 이상형’이라는 급발진 고백이나 ‘영원히 함께하자!’ 하는 허무맹랑한 약속 같은 것들 말이다. 철부지 스물여섯 살의 사랑은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점차 커져만 갔다.




우리의 만남이 1년 넘게 지속될 무렵이었다. 남자친구의 집에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예? 아버지 팔이... 배합기 날에 베였다고요?!”


아버지의 부상 소식이었다. 마침 이직 준비로 쉬고 있던 남자친구는 바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버지 회복기 동안 목장 일을 도와야 했고, 그 결과 우리에겐 3주짜리 이별형이 내려졌다. 매일 영상통화로 서로를 마주했지만, 그것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당장 화면 속 목장 세계로 뛰어 들어가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목장은 어떤 곳인지,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한 번 가 봐야겠어!’


나의 목장 방문에는 회사 연차까지 동원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다. 광명역에서 두 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나주역. 차를 타고 시야가 확 트이는 넓은 논밭을 지났다. 찻길 중간중간에 천막을 치고 무화과를 파는 모습을 보니, 무화과의 고장이라는 ‘영암’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드디어 목장에 입성. 그런데 ‘읍..!’ 반가운 마음도 잠시. 도착하자마자 날 반긴 것은 다름 아닌 지독한 똥 냄새였다. 지린내와 비료 냄새가 뒤섞인 강렬한 똥 내음이 내 후각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압도적 크기의 젖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와 진짜 크다. 이게 다 몇 마리야?’ 축사 안을 채우는 수 백 가지 얼룩무늬의 향연..! 나는 홀린 듯 젖소에게 다가갔다. 호기심에 가득 찬 젖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신나서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구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데 와 봤당가?”


남자친구의 아버님이셨다. 웃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눈가 주름에서 따뜻한 인품이 느껴졌다. 뒤이어 어머님께서도 만개한 미소로 다가와 나를 맞이해주셨다.


시골 어르신들 특유의 푸근함 때문인지, 긴장했던 첫 만남 임에도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처음 듣는 네이티브 사투리가 마치 영어 듣기평가처럼 느껴져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나는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에?” “네?” “예?”만 하다가, 결국 조신한 미소를 유지하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입가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오후 3시 반이 되자 목장은 착유 준비로 복작였다. 절호의 기회다. 내 소탈한 성격을 어필하는 동시에 점수 딸 시간!


“어머님!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작업복 있어요?”

“니가 어찌 하겄냐.”

“할 수 있어요! 해 볼래요!”

“아이 됐당께!”


어머님의 계속되는 만류에도 나는 기어코 작업복을 뺏어 입었다. 노스페이‘드’라고 쓰여있는 알록달록한 상의와 워싱이 과하게 들어간 청바지, 그리고 꽃무늬 장화. 아버님은 촌스러운 시장표 작업복을 입은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잘 어울리는구마잉.”


잇몸을 드러내 웃으시는 아버님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핑크색 고무장갑까지 착용을 마쳤다.이제 준비는 끝났다! 나는 비장하게 전투장으로 향했다.




착유실로 들어 온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 괜히 왔다.’


10여 년 넘게 운영해 온 공간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 노후 된 시설은 곳곳이 녹슬어 있었고, 벽면엔 소똥이 굳어진 흔적들이 가득했다. 똥물에 젖어 축축한 젖소들을 보면서 순간 ‘내가 지금 보령머드축제에 왔던가?’ 하는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오마이갓. 초콜릿 반죽 마냥 뚝뚝 떨어지는 질퍽한 똥도 모자라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맥주 빛 오줌까지. 혼돈의 대환장 파티였다. 숨을 참지 않고서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파티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젖소들도 낯선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봤다. 처음엔 나를 보고 안 들어오려고 뒷걸음질 쳤고, 들어와서는 계속 흘깃 쳐다보며 경계했다. ‘첫 방문부터 소 뒷발에 치여 실려 가는 거 아냐?’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바짝 긴장한 상태로 젖꼭지를 닦았다. 그리고 최대한 젖소로부터 팔을 멀리하며 어정쩡한 자세로 착유기를 채웠다. 내 머릿속은 요란법석 난리 브루스를 추고 있었지만, 겉으론 평온을 유지하는 척했다.


“뭐 이 정도면 할 만한데요?”


허세에 찬 나의 목소리만큼은 프로낙농인과 다름이 없었다. 도시 여자애가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흡족한 눈빛이 느껴졌다. 후훗, 됐다! 이 정도면 아들의 배우자감으로 손색없음이 분명했다. 어머님은 나를 보며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쓰겄다.”


뭘 쓴다는 거지?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이 훗날 ‘이 정도면 쓸 만하네, 꽤 하네’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쓰겄다’라는 전라도 방언의 진짜 의미는 ‘합격’과 다름없다는 사실도.




소똥 냄새와 사투를 벌이며 처음으로 목장을 탐방한 그 날은, 훗날 내 목장 인생에서 첫 합격점을 받은 역사적인 날로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