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젖소를 키우겠다고

목장가족탄생기 Ep2

by 목장가족



“부모님 목장에는 소가 몇 마리야?”

“한 200마리?”

“헉! 그 정도면 한 달 매출이...”

“음... 1억 좀 안 된다고 들었어.”

“뭐? 1억?!”


2014년 서울의 한 식당, 남자친구와 대화 중이던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1억이라니! 2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던 20대의 나에겐 로또 당첨금처럼 비현실적인 금액이었다.


“아니 그럼 하루에 우유 몇 키로를 짜는 거야?”

“2.5톤? 사실 이 정도면... 전남에선 손에 꼽을 규모긴 해.”


와우. 나의 사랑이 배가 되는 순간이었다. 조금 수줍은 듯 속삭이며 말하는 데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겸손함까지! 완벽했다. 더 감동적인 것은 젊을 때 고생하시다 뒤늦게 낙농을 시작해 사업을 확장하신 부모님의 성공스토리였다. 남자친구는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함께 나중에 나이가 들면 목장 일을 물려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1억이면 당연히 가야지! 그럼 우린 목장 부부가 되는 건가? 후훗.’


젖소에게서 1억 원치의 우유를 뽑아내려면 수천 만원치 풀과 사료를 사 먹여야 한다는 경제원리를 간과한 채, 나는 혼자 김칫국을 들이켰다. 내 머릿속엔 장밋빛 미래만 가득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젖소, 아이를 키우는 삶이라니!


그 시절 대한민국은 슈퍼스타 이효리의 제주 귀촌으로 사회적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었다. 제주 한 달 살기 같은 것이 유행하고, 귀촌과 귀농이 곧 ‘힙함’으로 느껴지던 시기. 나의 관심은 목장보다 귀촌에 있었다. 강아지와 함께 넓은 들판 위를 뛰놀고, 렌틸콩을 재배하는 시골살이는 상상만 해도 ‘힙’ 그 자체였다. 이미 상상 속 내 모습은 이효리로 지배되어 있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성급히 결혼을 떠올리는 나와 달리, 매사에 신중한 남자친구는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편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이 그리는 미래에는 내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의 의심과 불안에도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의 관계가 2년을 넘기는 시점,

목장에서 온 한 소식으로 삶의 흐름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이제 나이 먹어가꼬 뻗치다야, 목장 때려 치울란다.”
“예? 저 나중에 목장일 물려 받으려 했어요.”
“니가야? 첨 듣는 소린디. 그럼 지금 오지 뭣하러 나중에 온다냐?”


남자친구를 통해 들은 사정은 이러했다. 목장에 고용된 외국인 부부가 비자 문제로 일을 그만두게 된 상황. 직원을 새로 구하기도 힘들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 부모님은 그냥 사업을 접을까 고민하시게 된 것이다.


남자친구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목장 일을 도와드리며, 언젠가 가정을 이룬다면 가업을 잇는 게 안정된 삶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혈기 왕성한 스물아홉에 당장 소똥냄새 풍기는 촌구석으로 가는 건, 청춘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아아, 청춘이냐 안정된 삶이냐. 도시의 화려한 야경만 쫓다가 더 찬란한 미래마저 잃게 될 상황이었다. 남자친구는 장고 끝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작년 아버지 부상 때 3주 해보니 할 만했잖아. 어차피 갈 거 지금 가자!’

하고 남은 생을 목장에 바치기로 결정해 버렸다.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내 마음이 변해버린다면, 젊은이 없는 시골에서 강제 독거남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결혼이 더 시급한 건, 당연히 남자친구 쪽이었다.


“우리 결혼하자!”


남자친구의 청혼을 신호탄으로 결혼 태세에 돌입했다. 우리는 350km의 장거리를 오가며 착실히 결혼을 준비했다. 남자친구는 서울로 올라와 한복과 드레스를 고르고, 나는 시골로 내려가 같이 셀프 웨딩사진을 찍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밖에 만날 수 없었지만, 결혼이란 환상에 가득 찬 나는 매일 행복에 취해있었다.


나의 예비 시어머니께서도 ‘아들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에 진심이신 듯 했다. 서울 지리에 익숙지 않은 어머님은 시누이까지 대동하여, 차 타고 열차 타고 지하철 환승까지. 종로 귀금속 거리까지 오셔서 1캐럿 다이아 반지를 맞춰주셨다.


‘쟤 잘못 코 껴서 촌 동네로 끌려가는 거 아냐?’ 의심하던 직장 사람들의 눈초리는 영롱하게 빛나는 내 1캐럿 다이아를 마주하고 ‘진짜 목장 사모님 되는구나!’ 하는 시선으로 변해갔다. 아끼던 후임을 젖소에게 뺏기게 된 상무님도 “김중배의 다이아가 그렇게 좋더냐!”를 외치시며 서운함을 드러내셨다.


내가 사람들에게 귀촌 소식을 전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시골에서 잘 살 수 있겠어?”였다. 많은 이들이 내 순간적 선택이 후회를 가져오진 않을까 우려했다. 나 역시 처음 마주하게 될 미래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패기로 똘똘 뭉친 20대의 사랑은 세상 그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지옥이라 할지라도.


2016년 햇빛이 뜨겁게 내리는 어느 여름날,

우린 결혼식을 올렸다.

목장에서의 내 인생 2막을 세상에 공표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