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가족탄생기 Ep3
잔잔한 호수가 흐르는 시골의 한적한 마을, 이국적 자태로 위용을 뽐내는 한 건물이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시키는 동그란 돔형 지붕에 과감한 초록과 주황색이 어우러져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곳. 그 이름하여 청풍원휴게소. 바로 우리의 피로연장이었다.
시골에서는 결혼식을 멀리서 하는 경우, 인근에서 동네 분들을 대접하는 ‘피로연’이라는 문화가 있었다. 피로연이라는 말에는 익숙해도, 휴게소에서 피로연을 한다는 건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청풍원이 젤 나서. 교통도 괜차나고, 밥도 잘 나온께”
어머님 말씀에 따르면, 이 동네 신혼부부는 모두 청풍원을 통해 배출되는 듯했다. 교통, 식사, 비주얼(궁전풍 외관)의 삼박자를 다 갖춘 이곳은 피로연뿐 아니라 경로잔치를 포함한 모든 마을 행사가 열리는 진정한 핫플레이스였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스물아홉의 나는 처음 접하는 시골의 문화가 무척 새롭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휴게소에서 피로연이라니, 그 중심에 내가 있다니! 나는 시골 어르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그날을 상상하며 은근한 기대에 부풀었다.
드디어 다가온 피로연 날. 어머님은 나를 ‘읍내’로 데려가셨다. 시골 사람들이 번화가를 ‘시’내라고 부르는 것은 들어 봤어도 ‘읍’내를 접한 건 또 처음이었다. 시청과 동사무소밖에 몰랐던 내가 군청과 읍 사무소가 있는 동네에서 살게 되는구나. 내가 정착할 곳을 국가에서 정한 ‘행정단위’로 인식하니 나의 앞날이 비로소 현실처럼 다가왔다.
농협은행과 오래된 분식집, 약국 등 저층 상가가 모여 있는 읍내에 한 미용실이 보였다. 나는 어머님이 예약해놓으신 단골 미용실로 따라 들어갔다. 아무리 시골의 작은 피로연이라 할지라도, 손님을 맞이하는데 헤어 세팅은 기본인 법이었다.
체리색 몰딩으로 꾸며진 미용실에는 기상천외한 헤어스타일의 서양인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나는 핫핑크 가운을 두르고 앉아, 뻘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 앞으로 까만 뽀글 머리의 어르신이 쑤욱 고개를 들이대며 들어오셨다.
“누구 며느리여? 오늘 뭔 잔치한당가?”
미용실의 유일한 젊은이인 나는 어르신들의 호기심 대상이 되었다. 사장님께서는
“으응~ 저짝 며느리 피로연.”
하시더니 열과 성을 다해 내 올림머리를 만지는 데 집중하셨다. 그런데 머리가 완성되어갈수록 서서히 내 얼굴은 굳어져 갔다. ‘아. 이것이 이 동네 트렌드인 건가.’ 옆통수를 따라 회오리 모양으로 장식된 긴 머리 가닥과 풍성하게 띄운 뒷머리 뽕은 휘황찬란 그 자체였다. 한술 더 떠 핑크색 레이스 한복까지 착용하니 완전 읍내 최고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준비를 마친 나는 당당한 자태로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휴게소 앞에는 무언가가 바람에 펄럭이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게 뭐지?’ 가까이 가보니 현수막이었다. 촌스러운 핑크색 배경에 파란색 글씨로 써진 ‘(축) ooo 장남 ooo의 결혼 피로연’이 오늘의 주인공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는 노란색 배경에 빨간 글씨로 ‘어서 오십시오 대회연장’이라고 쓰여있는 현판이 붙어있었고, 그 옆에는 노랑과 분홍색 꽃이 난무한 화환도 두세 개 세워져 있었다. 제법 축제장 같은 분위기였다.
피로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더욱 강렬한 핑크의 세계가 우릴 반기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나를 압도한 것은 자주색 식탁보와 장미가 장식된 핑크색 의자였다. 베르사유 풍의 인테리어는 루이 14세의 프랑스 궁전을 재현하려는 듯했으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북한 연회장에 가까웠다. 여기에 레이스 한복까지 입은 나는, 피로연보다는 북한 인민 축하 공연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나는 북한 예술 단원처럼 미소를 지은 채, 어머님과 함께 서서 하객분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의욕만 앞서 목소리 조절이 안 되는 나를 보며, 어머님은 눈인사로도 충분하다며 제지하셨다. 관심을 한몸에 받아 신난 파티의 주인공은 그제야 조금씩 진정되었다.
파티의 열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오셨다는 아버님, 어머님의 하객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모든 동네 분들이 모이신 듯 끝없는 행렬이 이어졌다. 아버님 친구분들께서는 나를 보고 “오매 이쁜 것!” “며느리가 이쁘구마잉?” 라며 내 용모에 대한 찬사도 아끼지 않으셨다. ‘오늘 내가 화장이 좀 잘 먹긴 했나?’ 생각하고 있는데 한 어르신께서 다가와 말씀하셨다.
“어우 이삐네! 난 말 했소. 그란 줄 아쇼잉.”
“네?”
“아아니. 시아버지가 아주 며느리 생각해가꼬. 이쁘다고 말하라고~ 말도 못해브러~”
나는 이내 깨달았다. 계속된 칭찬 세례의 배후에는 아버님이 계셨다는 사실을.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게 이런 것인가. 아버님은 비밀 작전이 당사자의 귀에 들어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어르신들과 행복한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
나의 남편이 될 사람도 10여 년 만에 뵙는 동네 분들과 서로 안부를 주고받느냐 정신없었다. 하객분들께서는 우리에게 잘 살라는 덕담과 축하 인사도 아끼지 않으셨다. 모두의 생김새가 다르듯, 살아온 문화가 다르고 사용하는 말투가 달라도 이웃의 경사를 축하해 주는 마음은 모두가 같은 듯했다. 타지에서 온 이방인을 마을의 식구로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곳이라면 한 번 정붙이고 살아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둘 인적이 빠지고, 마침내 연회장에는 우리 식구만 남았다. 손님을 치르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은 음식을 정신없이 쓸어 담았다. 유린기, 육편, 떡, 잡채 등 은빛 트레이에 전시되어 있던 출장 뷔페 음식들은 꽤 그럴 듯했다. 우린 허겁지겁 맛있게 먹으며 결국 인정했다.
“청풍원 맛집 맞네. 핫플 될 만하네!”
식사를 마치니 어느덧 착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데렐라의 파티가 12시 전에 끝나야 한다면, 낙농인들의 파티는 4시 전엔 끝나야 했다. 이제 파티는 끝났고, 목장으로 돌아갈 시간. 우리는 서둘러 차에 올라 목장을 향해 달렸다. ‘메에-’ 배고파 우는 송아지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