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며느리와 시골 시어머니

목장가족탄생기 Ep4

by 목장가족




내 나이 서른. 시골에서의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신혼에는 조금 특별한 시집살이가 함께했다.

그건 바로 도시 며느리와 시골 시어머니,

서로 다른 두 문명의 만남이었다.




나의 어머님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전형적인 ‘시골 어르신’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밭일로 굽은 허리, 구릿빛으로 탄 피부, 검게 염색한 파마머리. 이런 것들이 어머님에겐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다. 어머님의 타고난 흑발과 잡티 하나 없는 탱탱한 피부는 젊은 며느리보다도 더 윤기가 흘렀다. 수수한 내 모습과는 다르게 어머님의 손목 위엔 항상 두툼한 금 팔찌가, 손톱 위엔 알록달록한 젤 네일이 빛났다. 압도적 풍채를 풍기는 시어머니 앞에서 왜소한 며느리의 존재감은 한낱 그림자에 불과했다.




우리는 외모만큼이나 성향도 반대였다. 그것은 주로 손의 크기, 즉 씀씀이에서 드러났다. 손이 작고 소심한 나는 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어머님은 항상

“그거슬 누구 코에 붙인다냐?”

로 맞받아치시곤 했다.



사실 첫 대접을 받던 날, 나는 이미 어머님의 ‘큰 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상에는 배추김치, 백김치, 갓김치, 파김치,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겉절이까지, 김치만 7종류가 올라와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 김치를 담그시는 어머님의 푸짐함은 냉장고의 개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온 창고, 냉동창고도 모자라 냉장고 다섯 개까지 보유하신 어머님은 진정한 ‘쟁임’의 여왕이었다.


김치 뷔페를 방불케 하는 어머님의 상차림에는 육해공을 초월한 산해진미도 함께했다. 음식의 가짓수, 양, 맛 모두를 아우르는 어머님의 요리 실력에 나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늘 요리 앞에선 겸손한 모습을 보이셨다. 어머님의 말끝에는 꼭

“뭔 맛인지도 모르겄다.”

“그냥 대강해 본 거시여.”

가 따라붙었다.



그렇게, 항상 어머님의 요리는 ‘대강’으로부터 시작됐다.


“아야, 점심 대강 김밥이나 싸 먹을까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 김밥은, 왕 손 어머님의 무한리필 재료 덕분에 수십 줄로 불어났다. 우리는 ‘대강’ 점심을 때우려던 김밥으로 다음 날 점심까지, 그러니까 네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게 어머님식 ‘대강’이었다. ‘대강’ 유자청 한 번 만드는덴 김장용 양푼이, ‘대강’ 부치는 호떡에는 시멘트 포대를 연상시키는 20kg짜리 밀가루가 동원되곤 했다.


그래도 남편이 목장 일로 바쁠 때면, 어머님과의 이런 소꿉놀이가 지루한 시골 일상에 작은 활력소처럼 여겨졌다. 나는 동지를 맞아 어머님께 팥죽 만들기를 제안한 적도 있었다.


“어머님! 오늘 동지래요! 팥죽 만드실 수 있어요?

“모달게 뭐가 있다냐.”

“같이 한 번 해볼까요?”

“거 암것도 아녀. 대강 팥만 넣고 끓이믄 되제.”


정말 ‘대강’ 팥만 끓이면 팥죽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손바닥 위에 찹쌀 반죽을 굴려 가며 생각했다. ‘아 이번에도 ‘대강’에 속았구나.’ 120번째 새알을 만들며 나는 또 생각했다. ‘다시는 팥죽의 팥 자도 꺼내지 않으리.’

다행히 손목의 감각이 사라지기 전, 팥죽이 완성되었다. 어머님의 팥죽과 내가 만든 새알의 조화. 그 위에 잣, 단호박으로 데코를 해준 모습이 꽤 그럴듯했다. 이거 팔아도 되겠는데? 가게 이름은 시어머니 팥죽으로 해야 하나? 읍내에서 팥죽 장사하는 상상과 함께 우리의 첫 동지는 마무리되었다.




삶이 곧 주방이었던 어머님과 달리 나는 요리에 대해선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엄마 밥과 배달 음식에 의지해온 탓에, 요리에 대한 지식이 0에 수렴했다.


나는 계란말이 하나 만드는 데도,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 마냥 땀을 뻘뻘 흘렸다. 젓가락으로 알끈을 제거하겠다고 설치다 싱크대에 노른자까지 갖다 바쳐 버리는 것은 물론, 뒤집는 타이밍을 놓쳐 옆구리가 다 터진 계란말이를 겨우 완성해 내놨다.


스팸 하나 굽는데도 내 무지는 빛을 발했다. 딴에는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식용유 대신 참기름을 둘러 스팸을 구웠고, 어머님으로부터

“아따! 고 아까운 참기름을 거따 쓰냐.”

라고 혼나기 일쑤였다.


나는 설거지라도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삼겹살이 눌어붙은 불판을 철 수세미로 있는 힘껏 열심히 닦아내기도 했다. 코팅까지 벗겨질 정도로 깨끗하게.


“워어매. 환장하겄네.”


어머님은 요리 초짜 주제에 대담하기까지 한 나의 행동들에 결국 백기를 드셨다. 결국엔 내가 뭐만 하려 하면

“니가 뭘 하겄냐. 이리 줘야.”

하며 만류하시는 단계에 이르렀다. 직장이든 주방이든, 기대치가 바닥일수록 몸이 더 편해지는 건 공통 법칙인 듯했다. 나의 주방 업무는 자연스럽게 숟가락 놓기, 완성된 요리 옮기기로 전환되었다. 전혀 의도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어머님의 음식은 다 맛있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해물칼국수였다. 멸치로 진하게 우린 육수에, 키조개 관자와 애호박을 잔뜩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칼국수는 한 숟갈만 떠먹어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머님의 칼국수는 경기도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가족들과 오이도에 놀러 가 먹었던 바지락칼국수의 국물이 다시 입안에 번지는 듯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얻어먹는 것뿐인 나는 호들갑스러운 찬사로 밥값을 대신했다.


“어머님! 진짜 맛있어요. 오이도 칼국수보다 더 맛있어요!”

“오이야? 오이는 안 넣었는디 뭔소리여.”

“예? 아니요. 오이도요!”

“오이도가 뭣이대?”


대화는 안 통해도 맛은 통하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각자가 살아온 시간만큼 우리는 다른 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점차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다. 도시 며느리와 시골 시어머니, 이 양극단의 만남은 때로는 엉망진창으로, 때로는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마치 삐거덕거리면서도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