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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Mar 27. 2023

쌀이 주식인 이유는 세금?

우리는 왜 쌀을 주식으로 할까? 서양은 왜 밀을 먹는가? 인류가 먹을 수 있는 곡물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쌀과 밀을 주식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쌀과 밀에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쌀과 밀이 각각 동서양의 토질에 적합하기 때문일까? 쌀은 동양인 입맛에 맞고 밀은 서양의 정서에 맞아서일까? 우리가 쌀을 주식으로 먹는 이유가 세금 때문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고대 국가의 기원을 연구한 스콧(James C. Scott)은 인류의 편식이 세금 때문이라 주장한다. 그는 쌀, 보리, 밀을 주식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국가의 강제 때문이라고 한다. 스콧은 세리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명확 해진다고 했다. 국가가 세금으로 거두는 곡물은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어 야 한다.


첫째, 수확량을 한눈에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땅 위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쌀, 밀, 보리, 귀리 같은 곡물은 세금으로 거두기 좋은 곡식이다. 반면 땅속에서 자라는 감자, 고구마, 카사바는 수확할 때까지 생산량을 알 수 없다.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땅속 식물은 재배하기 쉽고 수확이 좋을 뿐 아니라 수확하지 않고 저장하여 세리의 눈을 피하기 쉽다.


둘째, 수확시기가 일정해야 한다. 그래야 추수할 때 관리를 파견하여 일괄적으로 징수하기 쉽다. 콩은 지상 식물로 운송과 보관에 장점이 있고 영양학적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조기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세금을 내 는 대신 미리 수확하여 털어먹기 좋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수확 시기가 일정한 밀과 쌀의 종자를 장려하면서 씨를 뿌리는 때와 추수의 시기에 국민 축제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천이라는 전통 의식이 있었다. 제천은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 지내는 축제로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삼한의 5월제, 10월제 등에서 볼 수 있다. 제천은 주로 추수 감사제 성격을 띤다. 하지만 삼한의 5월제에서 보듯이 씨를 뿌리는 시기를 통일하는 축제도 열렸다.


셋째, 보관과 분배가 용이해야 한다. 감자는 쉽게 썩어 세금으로 징수할 경제적 가치가 적다. 조세로 징수한 곡물은 최소 1~2년 보관하여 흉년과 기근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곡식은 도시 노동자와 군인들에게 분배하기가 편리하다. 감자나 고구마와 달리 쌀과 밀은 수량을 정하여 나누기 수월하다.


넷째, 운송 가치 또한 중요하다. 육상 운송은 거리가 늘어날수록 운송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곡물은 현실적으로 장거리 운송이 어렵기 때문에 국가는 운송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쌀, 보리, 밀을 선호했다. 


운송의 한계는 고대 국가의 실질적 지배 영역을 제한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강 유역인 이유도 토지가 비옥해 농업에 유리한 점도 있지만 수상 운송이 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육상 운송의 어려움 때문에 그리스와 로마는 지중해를 내해로 삼아 발전했고, 해상 운송이 어려운 중 국은 강에 운하를 건설하여 물류를 촉진했다.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 황제의 칙령은 운송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잘 정비된 도로를 통해 마차로 밀을 운송하여도 80km를 지날 때마다 밀의 가격이 두 배로 뛴다. 이는 해상운송 비용의 5배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 시민이 소비하는 밀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마차로 운송하지 않았다. 대신 시실리섬이나 이집트에서 해상 운송으로 조달했다.


국가는 화전민과 유목민에게 세금을 거두기 어려웠다. 이들은 매년 주거지가 바뀌기 때문이다. 무엇을 심었는지 알 수 없었고 수확기에 이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화전민이 쉽사리 곡식을 준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무력도 필요했고 먼 길을 돌아 곡물을 운송하는 부담도 있었다. 


유목민을 기반으로 하는 오스만 제국도 세금을 부과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목민은 매년 기후 변화에 따라 방목하기 좋은 초지를 찾아다니기에 이들을 찾아 과세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유목민에게 소와 말을 세금으로 걷는 것 또한 가축을 운송하고 계속 먹여야 한 다는 부담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운송 가능한 범위에서 경작되는 쌀, 밀, 보리는 국가의 입장에서 세금으로 완벽한 곡물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먹는 주식이 결정됐다.


쌀이 세금의 기초라는 사실은 조세(租稅)의 어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조(租)는 곡식을 의미하는 ‘벼 화(禾)’와 관청에 바친다는 뜻을 가진 조(且)로 이루어져 있다. 세(稅)는 곡식을 나타내는 ‘벼 화(禾)’와 ‘바꿀 태(兌)’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여기서 ‘태(兌)’는 ‘빼내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수확한 곡물 중에서 농부가 쓸 수 있는 몫을 떼고 나머지를 관청에 바치는 것이 조세이다. 세금의 어원에 대한 이러한 국가의 해석은 지극히 이상적이고 훌륭하다.


***

양(梁) 나라의 혜왕(惠王)은 부국강병을 위해 많은 백성을 원했다. 백성이 많아지면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기반이 넓어 국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세금이 없거나 적은 땅을 선택하여 이주했다.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나는 나랏일에 정성을 다하는데 왜 백성이 늘지 않는가?” 


맹자는 세금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후국 선비들이 귀순하면 3대까지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고 전쟁에 동원되지 않게 합니다. 진나라는 국경 안에 있는 구릉, 비탈진 곳, 언덕, 습지에 대해 10년 동안 세금을 거두지 않아 농부들이 새로운 땅을 개척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법률로 명시하면 1백만 명의 농민을 충분히 불러올 수 있습니다.” 현대 국가가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기업에 조세를 감면하듯이 춘추전국시대 맹자도 국가 발전의 기본으로 면세를 설파했다.


맹자의 일화는 당시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주거를 이전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모든 땅의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여기서 동서양의 군주들은 왜 맹자의 지혜를 실천하지 않았을까? 


백성은 납세의 기본이고 국력의 상징이었지만 면세로 백 성을 모으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세를 면제한다는 소문을 구전으로 전파하여 주변 나라에서 백성을 모으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백성이 모인다 하더라도 지독한 흉년이나 전쟁이 일어나면 왕은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된다. 이웃 나라에서 더 강력한 면세 정책을 취하면 지금까지 노력이 무용지물이 된다. 맹자의 말은 당연한 지혜처럼 보이지만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고 장기적 안목과 인내가 필요한 고육책이었다.


***

사람들이 정착한 마을에는 곡식, 의류, 가축, 철이 있다. 좋은 일만은 아니다. 유목민 입장에서 보면 약탈하기 좋은 보물 창고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들여 농사지을 필요가 없었고 먹거리가 필요하면 마을을 약탈해 모든 것을 해결했다. 국가는 약탈에 대비하여 성벽을 세웠고 유목민을 군사력으로 제압하거나 혹은 타협하여 비상식량을 제공해야 했다. 이 모든 비용은 과도한 세금을 말한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 질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과 가축이 모여 살면서 인류는 콜레라, 천연두, 홍역, 독감, 수두 같은 전염병에 더욱 노출됐다. 전염병은 인류 최고의 사망 원인으로 인류를 지속해서 괴롭혔다. 모여 사는 가축과 곡물도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농부들은 과도한 세금만이 아니라 밀집하여 살면 생기는 치명적인 역병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국가는 백성들이 국경 밖으로 도주하거나 인접 국가로 이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주민들이 스스로 정착하는 것은 국가에 최고의 선물이다. 동남아시아에는 농민이 이주함으로써 ‘발로 투표한다’는 말이 있다. 


지배자들의 강경책도 있었다. 태국은 농민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표시하는 문신을 새겼다. 문신은 특정인의 소속을 결정하고 발로 투표하는 주민을 묶어 두기 위한 강력한 조치였다. 이러한 이유로 오언 래티모어(Owen Lattimore)는 성(城)이 지어진 이유를 다르게 이야기한다. 중국이 만리장성을 건설한 것은 야만인의 침입을 막을 뿐 아니라 농민의 야반도주를 막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한편, 국가가 만리장성과 같은 성을 건설하고 관리한 이유에 대한 다른 설명으로는 국가가 무역을 통제하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성이 건설됐다는 것은 성안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 많이 있다는 의미이다. 농부는 수확한 식량, 가족과 가축을 지켜야 하지만 통치자에게는 세금을 납부하는 농부와 곡식 창고가 가장 중요했고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농부의 도주를 막기 위한 장벽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건설됐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왕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건설한 250km의 토성은 아모리족을 물리치기 위해 건설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앤 포터(Anne Porter)는 납세자인 농민을 가두기 위한 목적 또한 있었다고 한다. 로마제국 시기에도 많은 농민들이 세금을 피해 훈족 아틸라(Attila) 땅으로 넘어갔다. 농민을 가두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이러한 장벽은 농민과 노예의 도주가 고대국가에서 가장 큰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농노의 도주는 빈번했고 도주 노예를 잡아주는 현상금 사냥꾼 또한 득실댔다.

***


고대 국가는 과도한 세금 탓으로 망했을까? 스콧(James C. Scott)은 국가는 권력 기반이 되는 핵심 지역을 과도하게 착취하면서 무너진다고 했다. 운송의 한계가 국가의 한계를 정하는 기준이라는 점도 국가의 붕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국가는 생산성이 가장 높은 토지를 기반으로 가까운 거리에 곡물 창고, 사원, 왕궁 및 행정조직, 시장을 만들어 권력을 행사했다. 고대 국가가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작은 도시국가로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정된 토지 안에서 세금을 과도하게 걷으면 어떻게 될까?


곡물 수확은 매년 변수가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세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흉년에 동일한 세금을 요구하거나 전쟁 같은 위기 상황에서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면서 발생한다. 국가는 흉년에 백성에게 거둘 수 있는 세금의 양을 조절할 만큼 섬세한 통치능력이 부족했다. 농부들은 굶어 죽기 전 더 많은 세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여기에 역병이 돌거나 국가의 부역과 병역 요구가 늘어나면 도주하거나 폭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외부 침입, 내부 반란 같은 위기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사력을 동원한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왔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고대 국가는 왕궁과 가깝고 많은 인구와 높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 핵심 지역의 농민을 과도하게 착취했다. 세리의 탐욕 또한 통제하기 어려웠고 이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핍박에 시달린 농민은 도주하거나 폭동을 일으킨다. 결국 과도한 세금은 국가가 무너지는 이유이며 안타깝게도 이러한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이집트는 예외였다. 이집트가 피라미드 같은 유물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일강이 사막으로 둘러 쌓여 있어 농민들의 도주가 어렵다는 데 있다. 도주가 불가능한 농민은 피라미드 공사에 필요한 곡식과 노동을 계속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집트는 무리한 세금을 징수하기 쉬운 탓에 정치는 타락하고 국가는 발전 에너지를 잃었다. 화려했던 고대 문명의 이집트가 삼류 국가로 전락한 이유는 과도한 세금 때문이다.




참고 문헌


Against the Grain (James C. Scott, Yale University, 2017), Wetland and Sedentism, page 54, Grains Make States, page 128-137.

Against the Grain (James C. Scott, Yale University, 2017), Barbarian Geography, barbarian Ecology, page 228-236, Walls make states: protection and confinement, page 137-139.

Against the Grain (James C. Scott, Yale University, 2017), Politicide: Wars and Exploitation of the Core, page 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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