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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Mar 27. 2023

노예에 세금을?

노예는 잉여 생산물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었다. 국가는 성벽과 도로 건설, 광산에서 노예가 필요했고 이들을 먹일 농산물을 생산하는 노예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고대국가는 영토 확장보다 노예 획득 전쟁을 많이 했고 패전 국가의 주민은 노예가 됐다.


고대 귀족들은 노예의 잉여 생산 덕분에 빈둥거릴 수 있었다. 아테네는 시민 1명당 평균 노예 3명을 가졌다. 그리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하고 외국과 전쟁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농업과 같은 일상에 종사할 시간이 없었다. 지배계급이 소유한 땅은 노예들이 경작했다. 나아가 노예들은 가정교사, 자산관리, 도시 예산관리 등 귀족들이 머리 쓰기 귀찮아하는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일부 귀족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노예를 장식품처럼 사용했다. 부자들은 아프리카 경호원, 아르메니아 요리사, 그리스 가정교사, 인도 집사 등 다양한 형태의 노예를 자랑했다. 귀부인은 아프리카 미동을 강아지처럼 치장하여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문명사회의 핵심은 노예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철학자도 있었다. 노예제도에 익숙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어나면서부터 합리적인 두뇌를 가지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수레를 끄는 동물처럼 노예라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했다. 또한 ‘주인과 노예’는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 같이 인간사회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했다.


로마에서도 노예는 생활의 일부였다. 노예를 부리는 데 도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노예는 주로 전쟁을 통해 조달했다. 초기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포로를 획득하여 노예로 팔았고 이들은 시장에서 거래됐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갈리아 지방 주민 전체 53,000명을 한 번에 판 경우도 있다. 로마군은 포로를 노예로 팔아 군비를 조달했다. 로마의 군사 원정에는 노예 상인이 따라다녔으며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에서 백만 명 이상의 노예를 팔아 돈을 벌었다. 


노예는 로마와 이탈리아 인구의 1/4 이상일 정도로 일반화됐다. 노예무역은 번성했으며 해적들은 나포한 배의 선원을 노예로 팔았다. 델로스(Delos)와 로도스(Rhodes) 섬에는 노예거래소가 있었으며 한꺼번에 만 명 이상의 노예를 처리할 수 있는 수용시설이 있었다.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 유럽은 상거래를 통해 노예를 조달했다. 당시 노예로 붙잡혀 팔려 오는 대표적 민족이 슬라브(Slav) 사람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라틴 계열의 모든 언어에서 노예(Slave)라는 말의 기원은 슬라브(Slav)에서 시작됐다. 이는 과거 얼마나 많은 슬라브 민족이 노예로 잡혀 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세금으로 보면 노예는 과세하기 좋은 상품이었다. 노예를 실은 선박이 항구에 도착하면 관세가 5% 부과됐으며 판매할 때에도 2~5%의 판매세가 부과됐다. 로마에서는 노예를 해방할 때에도 5%의 세금이 부과됐다. 비록 낮은 세율이지만 노예에게 인두세가 부과되기도 했다. 로마의 노예는 주인을 잘 만나면 해방될 수 있었다. 로마 귀족은 노예가 정성을 다하여 일정기간 봉사하면 이에 대한 보답으로 노예를 해방해 주었다.



참고 문헌

Against the Grain (James C. Scott, Yale University, 2017), Population control: Bondage and War, page 150-155, The State and Slavery, page 155-157.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he Early Republic, page 79-81,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 1982), The Early Republic, page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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